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
감사원이 전현희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의 상습 지각 의혹에 대한 감찰과 위원회 감사를 시작했다고 한다. 한상혁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에 대한 감사도 진행 중이란다. 감사원은 정치적 의도는 없다고 강변하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을까.
정권교체기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것이 인사를 둘러싼 신·구 정권 간의 갈등이다. 임기 만료를 앞둔 정권이 정부 부처나 공공기관, 공기업의 임원 자리에 인사권을 행사하면 새로 임기를 시작하는 집권자는 상당 기간 가치와 이념을 달리하는 사람들과 함께 일해야 하는 딜레마 상황에 빠진다. 이를 벗어나려니 이런저런 압력을 가해 사퇴시키려 하고 임기가 있는 자리를 내놓아야 하는 당사자들은 반발하기 마련이다.
그 과정은 때로 불법적이거나 합법을 가장한 탈법행위일 수 있다. 그게 무엇이든 당사자의 의사에 반해 사퇴를 요구한다는 점은 같다. 문재인 정부 초기, 공영방송인 KBS의 사장을 교체하기 위해 이사들을 반강제로 사퇴시키는 과정에서 명지대 강규형 교수가 사퇴를 거부했다. 그러자 강 교수에게 터무니없는 누명을 씌워 강제 해직시키고 자신들이 원하는 사장을 내세웠다. 이후 어려움 속에 외로운 법적 투쟁을 계속한 강 교수는 결국 대법원에서 승소했다. 이 과정에서 국민의 혈세는 낭비되고 당사자인 강 교수는 비록 누명을 벗었지만 결국 상처뿐인 영광이었다.
정권교체기의 신·구 정권 간 인사 갈등은 멀쩡한 사람을 죄인으로 만들기도 한다. 각 부처 장관이나 인사권을 가진 기관장들은 하루라도 빨리 전 정부 인사들을 교체하라는 압력을 받는다. 문재인 정부 초기, 환경부 산하 기관의 인사를 주도했던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블랙리스트 작성 혐의로 대법원에서 3년형을 확정받고 복역하고 있는 것이 단적인 예다. 당시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대다수 부처에서 유사한 일이 벌어졌고 정권이 교체되면서 억지로 사퇴를 강요받았던 인사들에 대한 보도가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인사 갈등은 더욱 심각해졌다. 문재인 정부가 마지막까지 인사권을 행사해 많은 진보 좌파 인사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지적한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은 정부기관장으로 새 정부의 대통령이나 집권 세력과는 이념이나 가치관이 전혀 다르다. 이들만이 아니라 공기업이나 공공기관, 국책 연구기관이나 기타 공공 조직에 수없이 많은 전 정부 낙하산 인사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다. 그들이 내세우는 표면적 이유는 임기가 보장되어 있다는 것인데, 그렇더라도 철학이 다른 정부에서 비전과 전략이 전혀 다른 정책을 담당하겠다고 자리를 지키는 것은 구차하고 치사하다. 그저 임기 말까지 월급이나 받겠다는 심사로밖에 이해할 수 없다. 솔직히 말해 그들이 그 자리에 가게 된 유일한 이유는 문재인의 사람이기 때문 아닌가.
사정이 이렇다 보니 대다수 부처에서 문재인 정부 초기에 똑같은 이유로 퇴직을 강요하는 역할을 맡았던 인사들에 대한 고소·고발이 난무하고 검경은 수사를 서두르고 있다. 또다시 얼마나 많은 전직 장관이 사법처리되고 감옥에 갈지 알 수 없다. 지금 전 정부에 의해 임용된 인사들을 교체하려고 의기양양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사람들도 다음 정권에서 같은 운명에 처할 것이 뻔하다. 이래서야 능력 있고 품격 높은 인사들이 국정을 맡으려 나서겠는가.
차제에 신·구 정권 간 대타협을 통해 반복되는 인사권 갈등의 악순환을 끊어내야 한다. 그래서 제안한다. 민주주의는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관용을 전제로 한다. 문재인 정부에서 정무적으로 임명된 모든 인사는 임기와 관계없이 일괄 사퇴하고, 윤석열 정부는 진행 중인 모든 인사 강요 의혹, 즉 블랙리스트 의혹 사건의 수사를 전면 중단하고 기소하지 말자. 이를 통해 정권교체기 정부와 공공기관 인사를 둘러싼 불필요한 갈등과 송사를 없애고 정권교체 시 전 정권에서 정치적으로 임명된 모든 인사는 일괄 사직하는 아름다운 전통을 세우자. 더 이상 정치를 사법적 판단에 맡기지 말고 협치를 통해 국력을 낭비하지 말자는 말이다.
국민은 인사권을 둘러싼 신·구 정권 간의 갈등을 지긋지긋하게 생각한다. 서로 상대를 비난만 하는 여야 정치인들은 각자 자신은 선이고 상대방은 악이라 주장하지만, 국민의 눈엔 둘 다 똑같다. 이번 기회에 대타협을 이룬다면 그나마 국민의 신뢰를 조금이라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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