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전승절

입력 2022-07-28 19:28:15

김태진 논설위원
김태진 논설위원

1953년 5월 29일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는 특별한 기념행사가 열렸다. 1453년 오스만제국의 콘스탄티노플 함락을 기념한 500주년 전승 행사였다. 정부가 마련한 열흘간의 기념행사는 오페라, 패션쇼 등으로 채워졌다. 그리고 올해도 569번째 전승 행사는 이어졌다. '길이길이 빛내리'라는 다짐은 교가 가사에서나 보는 건 줄 알았더니 승리한 전투를 기념하는 행사가 아직도 이어진다.

1천58년 역사의 비잔틴제국을 멸망시킨 이 전투를 역사학자들은 중세의 막이 내린 전환점으로 해석한다. 그런데 그보다 콘스탄티노플 함락 과정의 특이한 작전이 단골로 소개된다. 오스만제국의 술탄 메흐메드 2세는 삼중벽으로 둘러싸인 콘스탄티노플을 무너뜨리기 위해 악전고투했는데 결국 그는 수십 척의 배를 들어 산을 넘는다. 승리로 가는 최대 난제였던 골든혼(Golden Horn)으로 진입했던 것이다.

드라마나 만화 같은 스토리를 품고 있는 승리의 날, 전승절은 그러나 대개 침략의 성공보다 성공적인 방어를 자축하는 행사다. '외세의 침략에도 굴하지 않고 똘똘 뭉쳐 이겨 냈으니 지금의 우리는 또 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명확하기 때문이다. 2천900만 명이 죽고도 이겨 낸 러시아의 '2차 세계대전 종전기념일'(5월 9일), 1937년부터 8년 동안 이어진 전쟁에서 1천500만 명의 사망자를 내고도 일본으로부터 항복을 받은 중국의 '대일전승일'(9월 3일)이 대표적이다.

패배를 매년 기억해 오는 나라도 있다. 세계 최강 전력의 미국이다. 일본에 진주만 공습을 당했던 1941년 12월 7일을 기념한다. 심지어 1941년 일본군의 공습으로 수장된 애리조나호를 그대로 두고 그곳에 USS 애리조나 메모리얼을 세웠다. 그날의 패배를 잊지 않고, 다시 그런 치욕을 겪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북한의 전승절은 6·25전쟁 정전협정 조인식이 있던 7월 27일이다. 선제공격으로 남침해 거둔 반쪽짜리 결과물일 텐데 '조국해방전쟁 승리기념일'이라 기념한다. 올해는 핵실험 준비를 마치고 시기만 조율하고 있다는 관측도 있었다. 6·25전쟁 참전자들이 참석한 전국노병대회에서는 "이 땅에서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말이 나왔다. 기습 남침의 실패를 반복하지 말자는 다짐처럼 읽혀 소름이 돋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