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일 칼럼] 윤석열 정부, 새롭게 출발할 때다

입력 2022-07-24 14:09:23 수정 2022-07-24 15:27:03

노동일 경희대 교수

노동일 경희대 교수
노동일 경희대 교수

"나는 사기꾼이 아닙니다."(I'm not a crook) 1973년 11월 17일(현지 시간)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이 기자들 앞에서 한 발언이다. 워터게이트 사건 등 논란을 해명하기 위한 자리였다. 국민의 관심이 온통 대통령의 입에 쏠려 있는 상황에서 닉슨은 문제의 다섯 단어를 뱉어 버렸다. 닉슨이 여러 해명을 내놓았음에도 국민은 '사기꾼' 발언에만 주목했다. 빌 맥고완은 '세계를 움직이는 리더는 어떻게 공감을 얻는가'에서 "사기꾼이라는 단어는 대통령의 입에서 절대 나와서는 안 되는 부정적인 언어였다"며 이를 치명적인 커뮤니케이션 실수로 지적하고 있다. 수십 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닉슨의 유산으로 이 발언을 꼽는 경우가 있을 정도이다. 반면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긍정적 언어 사용으로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1984년 대선 토론에서 상대인 월터 먼데일 후보가 레이건이 고령임을 지적했을 때 "나는 상대방이 젊고 경험이 부족하다는 점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겠다"는 말로 일축해 버린 것이다.

정치인, 특히 대통령의 언어는 그만큼 중요하다. 본인은 물론 정권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하는 것도 대통령의 정치적 커뮤니케이션 능력에 달렸다. 아무리 좋은 목표와 비전, 철학과 정책도 국민의 지지와 동의를 얻지 못하면 성공적인 국정 운영이 불가능하다. 민주주의 국가 지도자에게 설득과 소통 능력이 가장 중요한 자질로 거론되는 이유이다. 윤석열 정부의 지지율이 하락세를 보이면서 '위기'라는 말이 나오는 배경에는 이러한 커뮤니케이션 능력 부족이 자리하고 있다고 본다. 윤석열 대통령의 경우 그런 역량을 갖출 기회가 거의 없었고, 그를 지지한 국민이 몰랐던 것도 아니다. 검찰총장 사퇴 후 곧바로 선거전에 휩쓸렸고 대통령이 되기까지 스스로 정치인이라는 자각을 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선거 기간 여러 논란도 그런 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윤 대통령부터 국민이 대통령다움을 느낄 수 있는 언어와 태도를 갖추어야 한다. 장·차관 등 고위공직자들도 마찬가지다. 전문가의 도움도 받고 연습을 거듭할 필요가 있다. 우선 부정적 언어부터 고쳐야 한다. 선거는 상대평가지만 대통령의 국정 운영은 절대평가 대상이다. 전 정부나 야당의 잘못을 아무리 지적해도 현 정부가 잘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는 없다. 국민에 대한 설명은 공직자의 당연한 의무라는 인식도 필수적이다.

윤 대통령의 부정 평가 요인 중 첫째는 대개 인사 문제가 꼽힌다. 이 문제 역시 결국 근원은 설명과 소통 부족이다. 과거 정권에서 인사 문제가 지적될 때마다 인사권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는 반박이 있었다. 국민이 대한민국의 주권자라는 원리가 맞다면 대통령의 인사권도 국민에게 위임받은 권력이다. 국민은 왜 이런 사람을 쓰는지, 어떤 결과를 기대하는지 친절한 설명을 듣고 싶어 한다. '과거에는 어땠는데' '이렇게 훌륭한 사람 봤어요' 식의 발언은 공직자로서 국민에게 무례한 태도로 부정적 인식을 가중시킬 뿐이다. 기자회견을 할 때도 기자가 아니라 국민을 상대로 발언하는 것임을 의식적으로 환기해야 한다. 여론조사에 신경 쓰지 않는다는 말도 국민의 생각을 무시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 여론 지형이 근본적으로 불리한 현실을 잘 알지만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이를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국민의 우려와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더 노력하겠다"는 정무적 발언이 필요한 대목이다. 국정 시스템 재점검과 정무 기능 보강 등 인적 쇄신도 검토해야 한다.

다음 달 17일이면 윤 대통령 취임 100일을 맞는다. 얼마든지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시간이다. 청와대 개방과 대통령실 이전, 이른바 도어스테핑 등 과거와의 단절은 두드러졌지만 새로운 국정 운영 시스템이 완전히 자리 잡지는 못했다. 지난 22일 있었던 국정 과제 워크숍에서 윤 대통령은 장·차관들의 적극적인 소통을 강조하며 "국민은 바로 보여 달라고 하는데 우리는 준비 중이라며 보여 주지 못했다"는 말과 함께 "저만 잘하면 되겠다"는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잘못이 있다면 솔직하게 인정하고 고치면 된다. 위기가 기회일 수도 있다. 잘못을 잘못으로, 위기를 위기로 인정하지 않는 게 가장 치명적인 잘못이요 위기 요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