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씨앗 같던 소녀가 단단한 나무로 성장하기까지… '랩걸'
화가이자 식물학자가 바라본 식물의 치열한 생존기… '식물학자의 노트'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면 의미가 됩니다. 시인 김춘수는 그의 시 '꽃'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노래했습니다. 무심히 지나치는 작은 풀꽃에도 이름이 있고, 그들의 일생에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보노라면 작은 식물 하나에도 자연의 위대함과 경이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식물을 과학적 대상으로 연구하는 식물학자의 책 두 권을 소개합니다. 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넘어 자신에 대한 성찰과 이웃과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까지 느낄 수 있는 독서 경험이 될 것입니다.

◆ 나무가 가르쳐주는 삶의 과학
'랩 걸'(호프 자런 지음)의 저자는 한 번의 유의미한 결과를 얻기 위해 백 번 실패하는 모습, 기다림과 끈기로 버티는 평범한 연구실의 24시간을 세밀화(細密畫)처럼 그려냅니다. 여성이기에 겪는 편견과 장벽 때문에 힘든 상황도 많습니다. 전문성과 객관성, 합리성으로 대표되는 과학의 세계에서조차 성별을 이유로 성과를 인정받지 못하거나 노력의 가치가 폄하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이토록 실험실에서 노력하는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식물을 향한 무한한 사랑입니다. 호프 자런은 과학자 특유의 시선으로 씨앗이 한 그루의 나무가 되는 과정은 물론, 나무들이 모여 울창한 숲을 이룰 수 있는 비밀도 들려줍니다. 식물이 지니고 있는 저마다의 생존 방식에 대해서 서술한 내용들에서는 생명에 대한 경이를 느낄 수 있습니다. 떡갈나무에게는 떡갈나무의 방법이 있고, 칡과 쇠뜨기에게는 그들만의 삶이 있다고 다정다감하게 이야기합니다. 다른 이의 방법이 아닌 자신의 방법으로 살고, 숲을 이루는 과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역설하는 작가의 목소리는 무감각하게 자연을 소비하고 파괴하며 잊었던 생명성을 일깨웁니다.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마저 솔직하게 털어놓습니다. 그녀를 괴롭혀온 조울증과, 출산으로 인해 자신의 실험실에서 쫓겨났을 때의 절망, 아이에게 좋은 엄마가 될 수 없으리라는 불안을 고백합니다. 또, 그런 그녀를 따뜻하게 보듬고 다시 실험실로 향하게 하는 것은 자신이 세상에 꼭 필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믿음과 가족 및 동료와의 신뢰, 아이와의 조심스러운 교감도 들려줍니다. 과장되지 않은 목소리로 자신이 겪은 일을 보여주며 세상의 차별과 편견에 맞서 싸우는 사람의 징검다리가 되겠다는 호프 자런의 목소리는 매우 감동적입니다.

◆ 변화를 향한 한 소녀의 일기장
식물학자이면서 영국왕립원예협회의 식물세밀화 전시회 수상 작가인 신혜우의 '식물학자의 노트'(신혜우 지음)는 식물 세밀화가 등장하는 자연 에세이입니다. 씨앗부터 기공, 뿌리, 줄기, 꽃, 열매까지 각각의 역할과 의미를 살피는 한편, 연약한 줄기의 애기장대, 물 위에서 사는 개구리밥부터 곰팡이와 공생하는 난초, 5천 년 이상 살고 있다고 추정되는 므두셀라 나무까지, 식물이 자신의 생존을 스스로 지키기 위해 얼마나 치열하고 담대하게 살아가는지를 아름다운 그림과 함께 전합니다.
처음 뿌리내린 곳에 반드시 적응하기 위해, 끝까지 살아남아 자신의 종을 퍼뜨리기 위해 한평생을 바치는 식물의 투쟁은 놀랍고 신비롭습니다. 그 모습은 흡사 우리 인간의 모습을 보는 듯해 애잔함마저 느끼게 합니다. 각자 고유한 생존 방식으로 용감하게 삶을 헤쳐나가는 식물의 모습에서 위로와 지혜를 얻을 뿐만 아니라, 예전에는 무심히 지나치며 눈여겨보지 않았던 솔방울 하나하나까지 소중하고 의미 있게 느껴지도록 합니다.
책엔 화가로서의 모습뿐만 아니라 충실한 연구자인 식물학자로서의 면모도 가감 없이 녹아 있습니다. 지구상에서 국화와 더불어 가장 많은 종수를 자랑하는 난초는 우리나라의 멸종위기식물 1급으로 지정된 아홉 종 중 여섯 종을 차지합니다. 자연에서 공생하며 번성하는 개체이지만, 인간의 손길이 닿으면 운명을 장담할 수 없는 것이죠. 난초의 위기는 사람들의 무분별한 채취가 가장 큰 원인이지만, 환경적인 변화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작가는 "멸종위기식물을 지키는 것도 사람이지만, 식물들이 멸종위기에 놓이게 된 것도 결국 사람 때문"이라고 하면서 식물 종들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주된 이유가 직·간접적인 인간의 활동임을 강조합니다.
인간에게 산소와 물을 공급하고, 식량 자원이자 동물 사료의 재료가 되는 식물에게 인간은 과연 어떤 존재일까요? 책을 통해 식물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생명 있는 것 하나하나를 소중하게 여기기를 바라는 저자의 바람이 느껴집니다.
대구시교육청 학부모독서문화지원교사모임 (김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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