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엄청’ 유행한다는 말

입력 2022-07-15 12:08:32 수정 2022-07-18 09:33:11

이선욱 시인, 대구문학관 상주작가

이선욱 시인, 대구문학관 상주작가
이선욱 시인, 대구문학관 상주작가

"이게 요즘 엄청 유행하는 건데요."

전에는 어디 물건을 사러 갔을 때나 이런 말을 종종 듣곤 했다. 그런데 요즘은 물건을 사러 갈 때보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이 말을 더 자주 듣는 것 같다. 가령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같이 어딘가를 걸어가다가도, 또 무슨 중요한 회의를 하다가 들을 때도 있다. 그러고 보면 요즘은 유행하는 게, 그것도 '엄청' 유행하는 게 유달리 많은 것 같기는 하다.

사실 그런 유행은 지금보다 더 늘어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요즘은 나이가 많든 적든 각자 관심사가 다를 수밖에 없는 시대니까. 휴대전화만 있으면 그런 관심사쯤이야 언제 어디서나 확인할 수 있는 시대니까. 다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면 그건 이런 유행을 언급할 때마다 쓰는, 이 '엄청'이라는 말이다.

가만히 살펴보면 이렇게 엄청나다고 강조하는 유행에는 공통점이 있다. 무슨 연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대개 이런 유행은 처음 들어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물론 요즘처럼 각자의 관심사가 세분화된 시대라면 그럴 수 있다. 서로 관심사가 다르면 각자 체감하는 유행도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 문제는 그게 관심사가 같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발생한다는 점이다. 같은 세대나 성별, 직업, 아니 심지어 같은 성격이나 취향을 가진 사람들 간에도 이런 유행은 흔히 흥미로운 뉴스처럼 통용되곤 한다.

새로운 소식이나 유행이 이목을 끄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 대상이 그냥 유행도 아니고, '엄청'난 유행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단순히 내가 그런 유행을 몰랐다는 사실에만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관심사가 세분화된 시대라면 더 그렇다. 이때 유행이란 전보다 더 개개인과 밀접한, 즉 과거보다 상대적으로 규모는 작지만 더욱 결집된 공동체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엄청'의 무게가 다를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그처럼 작은 공동체에서 일어난 엄청난 유행이란 생각해보면 그 공동체의 성격을 넘어, 때로 공동체 그 자체를 뜻하는 말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그런 유행을 처음 들어봤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건 이미 내가 그 공동체에 속해있지 않다는 것을 뜻한다. 그처럼 작은 공동체의 일원으로조차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 그건 본질적으로 대단히 불안한 일일 수밖에 없다.

물론 우리가 그런 불안을 느끼는 순간은 매우 짧다. 처음 들어보는 엄청난 유행을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다시 그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까닭이다. 그렇다고 그게 우리가 그런 불안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뜻도 아니다. 적어도 앞으로의 새로운 유행을 막을 방도가 없는 한은 그렇다. 그렇다면 최소한 불안을 덜 수 있는 방도는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그러려면 이 '엄청' 유행한다는 말부터 다시 생각해봐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아닌 게 아니라, 정작 나부터도 이 말을 버릇처럼 쓸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면 요즘 유행하고 있는 건 '엄청' 유행한다는 말, 이 말 자체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