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영 두류도서관 사서
'띵똥~' 도서관 예약도서 알림 문자가 왔다. 기다리던 그 책을 손에 넣었다. '팥빙수의 전설'이다.
몇 년 만에 어린이자료실에 근무하게 됐다. 아기자기하고 화려한 색감의 그림책, 여러 판형의 그림책은 늘 새롭고 신선한 느낌을 준다. 어린이자료실 사서로 일하면, 여러 그림책을 많이 접할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렜다.
먼저 관심을 사로잡은 책은 그림책 베스트셀러 중 하나인 팥빙수의 전설. 내용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제목이었지만, 늘 누군가가 빌려가서 쉽게 구할 수 없었다.
이 책은 전래 동화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를 모티브로 우리가 여름에 많이 먹는 팥빙수 이야기를 재미있게 그려냈다. 할머니에게서 과일을 빼앗아 먹은 하얀 호랑이가, 뜨거운 단팥죽을 뒤집어쓰는 바람에 녹아서 팥빙수가 되었다는 참신한 발상이 돋보인다.
문득 이 책을 도서관에서 '할배·할매와 도란도란 그림책 맛보기' 수업을 진행하는 어르신들에게 소개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수업은 70~80대 어르신들이 지역 어린이들과 만나 직접 책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다.
책을 본 어르신들은 그야말로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어르신들은 고향에서 내려오는 전설 이야기도 하면서,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대화의 꽃을 피웠다. 몇몇 어르신은 책의 저자인 이지은 작가의 다른 책이 있는지 궁금해 하셨기에, 작가의 신간인 '친구의 전설'을 소개했다. 이 책은 동네에서 성격 고약하기로 소문난 호랑이와 그 호랑이의 꼬리에 운명처럼 딱 붙어 버린 꼬리 꽃의 이야기다.
예상한 대로 '전설 시리즈'는 호응이 좋았다. 어르신들은 티격태격하던 꼬리 꽃과 호랑이의 관계가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것을 재밌어하셨다. 아마 어린이들이 느끼는 감정과는 많이 달랐으리라.
책이 가진 마성의 매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친구의 전설에 제대로 꽂힌 어르신들은 '할배·할매와 도란도란 그림책 맛보기' 수업의 주제 도서로 선정하기에 이르렀다. 맛깔 나는 책 소개에 어르신들의 옛날 추억까지 더해지자 더할 나위 없이 알찬 수업이 됐다. 어린이들과 같이 온 학부모들도 어르신들의 이야기에 "맞다! 그때 그랬다."라면서 공감하며, 함께 웃었다. 옛날이야기에 흥미를 느꼈는지, 다음 시간의 주제를 묻는 학부모도 있었다.
한 권의 그림책으로 삼대가 웃고, 대화하며,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나 역시 평생을 함께할 친구나 주변인들이 있는지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고, 그들이 나와 같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고마움을 느꼈다. 어린이와 어른 모두에게 진한 메시지를 던지는 전설 시리즈는 내게 짧지만 귀한 책으로 오래오래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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