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말, 종교로부터 뿌리 내려 지역 민족계몽에 앞장선 두 학교
종로초, 10년째 미래학교 운영… 두뇌기반 학습능률검사 등 최신 교육 실시
효성초, 수녀님이 직접 인성교육… 미군 학교 교류 등 선도적 영어 교육 진행
교육은 '백년지대계'다. 대구 근대교육의 씨앗은 한 세기 전에 뿌려졌다. 학교들은 지역에 깊게 뿌리내렸다. 한국의 근·현대사를 함께하며 많은 졸업생을 배출했고, 지금도 미래 인재를 육성하고 있다. 오랜 역사의 학교들은 또 다른 백 년을 준비하고 있다. 이들 초·중·고 학교들을 대구와 경북으로 나눠 연속 시리즈로 조명한다.
〈1편〉 대구 근대교육의 초석, 종로초·효성초
오래된 학교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공존한다. 열강의 침입과 비극으로 얼룩진 일제, 이후 참혹한 전쟁을 거쳐 군사정권의 독재 속에서 민주주의를 꽃피우기까지, 격동의 역사 속에서 학교들은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배움터를 지켰다.
그 가운데 대구에서 가장 오래된 종로초등학교와 효성초등학교는 19세기 말 각각 기독교와 천주교를 발판으로 문을 열었다. 지역 근대교육의 초석을 다지며, 민족 계몽을 위해 헌신해왔다. 종교라는 뿌리에서 탄생한 두 학교의 탄생과 성장, 현재의 모습을 살펴봤다.
◆ 교회 안 초가집에서 탄생한 배움터
종로초의 개교 당시 상황을 살펴보면, 대구에 개신교가 들어온 과정을 자연스레 알 수 있다. 대구 개신교 역사의 첫 장은 1893년 전도여행 중 대구를 방문한 베어드(barid·배위량) 목사가 내륙 선교기지 장소로 대구를 택하면서 펼쳐진다. 이후 1897년 11월 베어드 목사의 손아래 처남인 아담스(Adams·안의와) 목사가 대구 선교기지에 부임하며 지역 최초로 개신교 예배가 시작됐다.
아담스 목사는 당시 조선에 배움의 혜택을 얻지 못한 청소년들이 안타까워 1900년 11월 교회 내 초가집에 남학교인 '야소교 대남소학교'(대남학교)를 설립했다. 이후 2대 목사인 부루언(Bruen·부해리) 목사가 1902년 5월 교회 안에 여학생들을 위한 신명소학교를 세워 여성을 위한 근대교육을 시작했다. 교인들의 자발적인 헌금과 선교사들의 후원금 덕분에 학교가 운영될 수 있었다.
1926년 4월 남녀공학으로 바뀌면서 '희도보통학교'로 이름이 바꿨다. 희도학교는 당시 남성 위주의 유교 중심 조선 사회에서 여성 교육을 실시하고, 유교 경전 중심 공부에서 벗어나 노작(공작, 원예, 요리 등 작업 중심의 과목)을 가르치는 등 근대교육의 역할을 했다.
◆ 기억의 한 조각으로 남은 그 시절 그 모습
희도학교는 여러 이름을 거치며 교회에서 운영하다가 해방 이후 운영난으로 대구시에 이관돼 공립학교인 지금의 종로초(1955년)가 됐다. 공립학교가 되며 종교적 색채는 옅어졌지만, 오랜 시간 번화가에 자리 잡으며, 역사적 의미는 더욱 진해졌다.
종로초 66회 졸업생 서상만(61) 씨의 학창 시절 추억에서도 근대 대구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상만 씨 기억 속엔 당시 대구소방서가 학교 운동장 가운데 설치한 '망루'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다. 전화가 귀해 불이 나도 신고가 어려웠기에 소방관이 망루 위에 올라가 불이 난 곳을 살폈다.
상만 씨는 "학생들은 망루 위에 못 올라가게 해 밑에서 구경만 했는데 정오마다 점심 시간을 알리는 사이렌이 울리는 게 좋아 친구들과 박수를 치곤 했다"고 회상했다.
망루와 더불어 지금은 상만 씨의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대안수용소' 또한, 그 시절 상황을 잘 담고 있다. 1970년대 말까지 종로초 인근엔 집 없는 피란민들을 위한 수용소인 '대안수용소'가 있었는데, 이곳에 사는 학생들이 한 반에 몇 명씩 있었다. 늘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이들에겐 매달 내야 하는 육성회비가 큰 부담이었다.
◆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배우는 아이들
종로(鐘路)초는 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종과 관련이 많다. 종로초 현관 앞 오른쪽엔 1971년 건립된 종각이 있는데, 개교기념일 등 특별한 날에 타종식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20일에도 종로초 전교회장단과 강혜경 종로초 교장은 문화재청이 지정한 '문화재지킴이의 날'을 이틀 앞두고 그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타종식을 열었다.
전교회장 6학년 원유리 학생은 "아주 오래된 종인데도 소리가 변치 않고 아름다운 게 신기하다"며 "앞으로도 특별한 행사 때마다 종을 치는 전통이 계속 이어지면 좋겠다"고 했다.
종로초는 과거뿐만 아니라 미래를 향해서도 힘차게 전진하고 있다. 근처의 경상감영공원과 대구근대박물관 등 역사적 장소를 활용해 학급 단위로 다양한 프로젝트 수업을 실시하며 학생들에게 전통과 역사의 가치를 일깨워주고 있다. 더불어 창의융합형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미래학교를 10년째 운영해오고 있다.
5학년 학생 대상으로 두뇌기반 학습능률검사를 실시해 인지·정서·행동 측면을 분석하고, 그 결과에 따라 다양한 학생 맞춤형 컨설팅을 지원하는 등 최신 교육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강혜경 종로초 교장은 "전통이 미래로 이어지기 위해선 미래에 대비한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이에 맞는 교육과정을 설계해 도입해야 한다"며 "탐구 중심의 학생 주도적 교육을 더강화해 학생들이 마음껏 역량을 펼칠 수 있는 인재로 자라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 대구 지역 '첫' 초등학교, '첫' 여성 교육기관
효성초는 천주교 대구대교구가 설립한 대구지역 최초의 초등학교다. 프랑스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신부였던 아실 폴 로베르(김보록)는 1890년 대구의 신나무골과 새방골에 숨어 선교활동을 하던 중 불량배에게 습격을 당하게 된다. 이후 관청에 의해 대구로 호송된 것이 계기가 돼 1891년에 대구에 정착한 그는 30년 동안 천주교회 발전을 위해 헌신했다.
1898년 10월, 김보록 신부는 현재 대구 중구 계산성당 안 한문서당인 '해성재'를 개설했다. 이곳이 바로 효성초의 전신이다. 이듬해 국채보상운동 관서지부장(평양)을 맡기도 했던 안중근 의사도 해성재에 초빙돼 강연을 한 적이 있다고 전해진다. 을사조약 체결 등으로 국운이 기울어지는 상황을 국민들에게 제대로 인식시키기 위해 여러 계몽운동을 했다.
이후 1908년 4월 해성재를 해체하고 '성립학교(聖立學校)'를 세워 대구 교육의 원조 역할을 했다. 1910년 국가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여성에게도 교육의 기회를 줘야 한다는 뜻이 모여 대구 최초의 여성 교육기관으로서 성립학교 여성부를 병설했다.
이후 여학교로 독립하는 등 여러 과정을 거치다 1966년 해성재의 정신을 이어받고자 남학생도 받기 시작해 남녀공학이 됐다. 오랜 세월 계산성당 곁에 있던 효성초는 부지가 점점 협소해지자 1993년 달서구 송현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 수녀의 수호를 받는 학교, 사랑 받는 아이들
천주교가 세운 사립학교인만큼 효성초는 종교적 특색이 묻어 나는 다양한 활동들이 이뤄지고 있다.
그중 가장 특색 있는 것은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에서 소임발령을 받고 파견된 세 명의 수녀가 각자 역할을 맡아 학생들을 돌보고 있다는 점이다. 한 명은 보건교사로 근무 중이며 나머지 두 명의 수녀는 효성초만의 특별한 인성수업을 담당하고 있다.
학년별로 매주 1번씩 창의 체험활동을 한다. 전교생을 대상으로 한 인성수업으로, 각 학년에 맞게 다양한 주제로 진행한다. 딱딱한 교재 없이 수녀와 학생, 그리고 학생끼리 소통하는 방식으로 수업이 이뤄진다.
서 데레사(38) 수녀가 담당하는 1, 2학년 수업은 학생들이 유치원에서 초등학교로 바뀐 교육환경에 잘 적응하고 긍정적인 자아를 형성하게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성 안나(42) 수녀의 3~6학년 수업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등 현재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수업 소재로 가져와 아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한다.
안나 수녀는 "현실에서 일어나는 여러 사건들을 개인주의에서 벗어나 자신과 집단의 입장에서 공감할 수 있도록 가르치고, 이를 통해 언젠가 직면할 수 있는 실패와 좌절 속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회복탄력성을 기르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했다.
◆ 미래의 글로벌 리더로 자라나길… 영어 교육을 선도하다
효성초는 미래 인재 양성을 위한 글로벌 교육의 일환으로 다양한 교육 활동을 펼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영어 교육이 우수하다. 현재 영어 수업은 15명 이내 소규모 수준별 수업으로 이뤄진다. 원어민 교사 4명과 현지 영어 교사 4명 등 8명의 전문 영어 강사들이 놀이부터 토론 활동까지 학년별 특성에 맞는 영어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캠프워커와 캠프조지 등 대구 내 미군기지와의 교류도 활발하다. 1954년 효성국민학교 시절 학급 수가 증가하며 교실을 증축해야 했는데, 이때 미군에서 자재를 원조 받아 2층에 교실 8개를 지을 수 있었다. 캠프워커와 캠프조지에 있는 미국인 학교들과 서로의 학교를 방문, 같이 수업을 받는 등 다양한 교류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2018년 효성초를 졸업 후 현재 제주국제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김수현(16) 양은 "미군 학교에 방문했을 때 봤던 그곳 학생들은 수업 중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말했고 태도도 굉장히 적극적이었는데, 이러한 모습들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고 했다.
예상영 효성초 영어영재학급 담당 교사는 "2020년부터는 코로나19 때문에 미군 학교와 교류가 주춤했었으나 올해 2학기부터는 본격적으로 교육활동 교류를 재개할 예정"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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