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종이의 집’ 한국판…호불호 나뉘는 이유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종이의 집' 한국판 리메이크가 공개됐다. 반응은 양갈래로 나뉜다. 한국적인 색채로 재해석이 잘 되었다는 평가가 있는 반면, 그저 카피에 머물렀다는 아쉬움도 나온다. 과연 이 리메이크가 가진 성취와 한계는 뭘까.
◆'종이의 집' 한국판, 무엇이 다를까
지난 6월 24일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 파트1'(이하 종이의 집)이 공개됐다. 26일 기준 글로벌 OTT 순위사이트인 플릭스패트롤에서 '종이의 집'은 TV쇼 부문 글로벌 3위를 기록했다. 이틀 전 넷플릭스에서 서비스를 시작한 '엄브렐러 아카데미 시즌3'가 전체 1위이고 '미스터 빈'으로 유명한 로완 앳킨슨 주연의 코미디 '인간 vs 벌'이 2위, 그리고 '종이의 집' 한국판이 3위를 차지했다.
서비스를 시작한 후 곧바로 나온 성적으로 보면 높은 편이다. 하지만 '종이의 집' 한국판에 대한 국내의 반응은 극과 극으로 나뉘고 있다. 워낙 유명한 원작을 리메이크한 것이라 상위 순위권에 랭크되어 있지만, 리메이크가 성공적이라고 평가하긴 어렵다는 것이다. 반면, 정반대로 살바도르 달리 가면 대신 하회탈을 쓰고, '남북통일' 상황이라는 새로운 근미래의 세계관을 가져온 점이 신선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양극단의 평가를 만들어낸 걸까.
먼저 원작의 묘미가 무엇인가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스페인 원작으로 시즌5까지 제작된 '종이의 집'은 교수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도쿄, 베를린, 모스크바 등등의 가명으로 불리는 범죄자들이 스페인 조폐국을 터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애초에는 그저 조폐국 돈을 터는 강도처럼 보였지만, 도망치지 않고 오히려 문을 닫아 걸고 시간을 끄는 이들은 다른 꿍꿍이를 갖고 있다. 즉 아예 추적이 불가능한 돈을 찍어내서 다른 루트로의 탈출을 계획하고 있던 것. 조폐국 바깥에서 이 모든 범죄를 진두지휘하는 교수와, 이들을 진압하고 협상하려는 경감, 그리고 인질로 잡힌 이들이 벌이는 치열한 심리전이 그 핵심적인 재미다.
'종이의 집' 한국판도 이런 기본 설정은 크게 달라진 게 없다. 가명으로 만들어낸 캐릭터 이름까지도 동일하고, 정체를 숨긴 채 접근한 교수(유지태)와 선우진(김윤진) 경감 사이에 만들어지는 미묘한 관계도 거의 같다. 조폐국 안에서 인질범과 인질들 사이에 벌어지는 사건들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차별점이 있다. 그건 다름 아닌 부제로 적혀 있는 '공동경제구역'이라는 단어에서 찾아진다. 남북한의 분단이 허물어지고 통일을 앞두고 먼저 공동경제의 틀을 만들기 위해 남북한 공통의 새 화폐를 찍어낸다는 게 그 주요 설정이다.
단 하나의 설정을 바꿔 놓은 것이지만, 이건 왜 이 넷플릭스의 히트작 리메이크가 굳이 '한국판'으로 만들어져야 하는가에 대한 이유를 말해준다. 시작부터 북한출신 도쿄(전종서)가 북조선 아미로 BTS의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며 등장하는 장면부터 예사롭지 않다. 도쿄는 그 곳에서 진짜 군사 훈련을 받은 아미였다는 진술로 자신의 캐릭터를 설명한다. 군사 훈련으로 남다른 전투력을 가진 북한 출신 인물들이 남한 사람들과 뒤섞여 있는 상황. '종이의 집' 한국판이 원작과는 다른 또 다른 내분과 갈등을 예고하는 지점이다.
◆물리적 통일과 화학적 통일 사이
한반도가 통일을 앞두고 있다는 이 설정은 말 그대로 물리적인 통일을 의미한다. 진정한 통일을 향해 가기 위해서는 정치, 경제, 문화 등등 넘어야 할 산이 산재해 있다. 그것을 이루기 위한 방법으로 교수는 이런 대안을 내놓는다. "우리는 왜 분단국가에 살고 있을까? 왜 70년 넘게 통일을 못하고 있는 걸까? 정치, 문화, 경제 문제가 복잡하지 이걸 해결해 보려고 고안된 기존의 나선형 모델(정치공동체, 경제공동체, 문화공동체)은 한계가 분명히 있어. 내 주장은 이거야. 남과 북 모두가 하나의 꿈을 꾼다면 통일은 순식간에 이뤄진다. 그럼 어떤 꿈을 꿔야할까? 한반도의 평화? 문화적 공감대? 욕망이야 욕망. 남과 북 모두가 부유해질 수 있다는 욕망." 그렇다면 이러한 통일에 대한 교수의 대안은 과연 효력을 발휘할까.
통일을 향해 나가는 물리적인 결합이 이뤄지고 있지만 분단 상황은 조폐국을 터는 교수 일당들이나 또 그 일당과 상대하는 경찰들, 그리고 심지어 조폐국 안에 붙잡혀 있는 인질들 사이에서도 존재한다. 그들을 가르는 남한 출신과 북한 출신이라는 다른 삶의 배경들이 같은 집단 안에서도 갈등을 야기하는 것. 예를 들어 일당들 중 조폐국 내부에서 리더를 맡게 된 베를린(박해수)은 북한 수용소에서 수십 년 수감생활을 했던 인물로 그의 이런 경험치는 인질 관리 방식에도 그대로 영향을 미친다. 조폐국을 터는 이 일을 위해서는 자신들에게 유리한 여론이 중요하다 생각하는 교수는 그 누구 한 사람 다치는 일이 없고 무엇보다 인질들도 자신들의 협력자가 되게 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베를린은 생각이 다르다. 이상과 현실은 다르며, 현실에서는 공포가 사람들을 통제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이처럼 남과 북이 물리적으로 결합되어 있긴 하지만 살아온 배경이 달라 부딪치고 갈등하는 상황들은 경찰 내부에서 인질들의 생명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 어떻게든 협상을 하려는 선우진 경감과 조기 진압을 외치는 북한 특수요원 출신 차무혁(김성오) 사이에도 등장한다. 또 인질로 잡힌 남한 출신 조폐국 국장(박명훈)이 제 살길만 찾는 개인주의적 성향을 보이자, 다른 인질들의 생명이 위험하다며 반발하는 북한 출신 부국장과의 갈등이 벌어진다. 이처럼 '종이의 집'은 그 외피는 원작을 거의 그대로 따왔지만, 그 안에 남북한이라는 아직은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는 경계지대를 넣어 색다른 관전 포인트를 만들어낸다.
◆공적 편 가르기와 사적 친밀관계 사이
그렇다면 이 물리적인 결합은 어떻게 화학적인 결합으로 바뀔 수 있을까. '종이의 집' 한국판이 흥미로운 지점은 바로 이 변화가 사적인 친밀한 관계 속에서 가능하다는 걸 그려내고 있는 점이다. 교수와 선우진 경감은 공적인(?) 위치에서 조폐국 털이범과 경찰이고, 그래서 대결하는 위치에 서 있지만 두 사람은 차츰 가까워진다. 물론 그건 교수가 선우진 경감을 이용하기 위해 접근한 것이지만, 차츰 가까워지면서 교수는 어느 순간 저도 모르게 선우진 경감을 진정으로 걱정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이런 일은 조폐국 안에서 털이범과 인질 사이에서도 벌어진다. 공포에 의한 강한 통제를 부르짖는 베를린 같은 인물도 있지만 인간적인 정이 많은 덴버(김지훈) 같은 인물도 있다. 덴버와 조폐국 직원인 미선(이주빈)의 관계는 겉으로는 인질범과 인질의 관계지만 인간적으로 도움을 주며 가까워지는 관계로 변한다.
그래서 '종이의 집' 한국판은 남북한 통일이라는 새로운 설정을 가져와, 그걸 통해 진정한 관계는 어떻게 가능한가를 질문한다. 즉, 통일이 어려운 건 갈등까지 포함하는 인간적인 관계의 경험들이 먼저 이뤄지지 않고 그저 정치적이거나 경제적인 안건으로서만 통일에 대한 이야기들이 이용되고 있어서다. 그러면서 이 한반도라는 국지적인 상황의 이야기는 공적인 편 가르기가 글로벌한 일상이 되어버린 삶에 대한 보편적인 질문으로 변주된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치르는 전쟁이나,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 치열하게 싸우는 그러한 대결들 속에서 그저 선언에 머무는 물리적 결합이 아닌 진정한 화학적 결합이 '인간적인 교류' 안에서 가능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물론 워낙 유명한 원작과 비교해 호불호가 나뉠 수밖에 없는 리메이크다. 누군가는 원작을 그저 카피했다고 할 정도로 유사성에 집중할 수 있고, 누군가는 과하게 한국적인 이야기로 변주했다는 비판이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또 바로 그것이 차별점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어느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다른 만족도를 느낄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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