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놓인 공간, 가상일까 실제일까…봉산문화회관 ‘리얼리티 테스트’

입력 2022-06-24 13:41:47 수정 2022-06-27 06:18:41

7월 10일까지 봉산문화회관 4전시실…신기운 작가

신기운 작가의
신기운 작가의 '리얼리티 테스트-의자가 없다'가 열리고 있는 봉산문화회관 4전시실. 봉산문화회관 제공

전시장에 들어섰는데, 벽면 어디에도 작품이 걸려있지 않다. 전시장 중간에 덩그러니 놓인 의자 하나와 오큘러스(가상현실 기기), 모니터 등 영상미디어 기계만 존재한다. 벽면을 가득 채우는 대형 영상작품도 작가가 만든 가상의 공간일 뿐 작품의 실체가 없다.

의자에 앉아 가만히 벽면의 영상작품을 바라보면 황량한 사막, 수평선이 보이는 바다, 커다란 나무 아래, 햇빛이 내리쬐는 부엌 등의 풍경이 실제처럼 구현된다.

사방이 가상의 풍경으로 둘러싸이는 오큘러스도 마찬가지다. 가상공간임을 알지만,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가상의 한가운데 놓여진 상태에서 가상과 실체의 경계는 흐릿해진다.

대구 중구 봉산문화회관 4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신기운 작가의 '리얼리티 테스트-의자가 없다' 전시는 '지금 공간이 가상현실인지, 실제 존재하는 공간인지 구분하기 어렵지 않은가'라는 의문에서 시작한다.

전시 제목인 리얼리티 테스트는 믿지 못할 장면을 봤을 때 스스로 꼬집어보는 것처럼 꿈인지 현실인지 자각을 위해 하는 행동을 말한다. 작가는 이미 가상 속 실재하지 않는 것의 가치를 의심하지 않는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일종의 리얼리티 테스트를 던져준다.

가상 속에서 실제와 같은 체험을 하는 관람객들은 자유로움을 느끼면서도, 가상의 세계가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대안적 유토피아이자 인간의 역할을 축소하는 불안의 공간임을 생각하게 된다.

신기운, 리얼리티 테스트_의자가 없다, 가상 환경추출 영상, 1:1 영상, 8분, 2022.
신기운, 리얼리티 테스트_의자가 없다, 가상 환경추출 영상, 1:1 영상, 8분, 2022.

신 작가는 기존 예술의 경계를 넘어서려는 기술적인 방법들을 채택해왔다. 이번에 선보인 영상들도 그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풍경들을 가상공간에 게임 엔진 기술을 통해 새롭게 되살리는 실험이다.

그는 "우리가 CG라고 통칭하는 기술이 현대미술의 영역, 영상과 설치 작업에서는 어떤 시도를 가능하게 한 것일지 고민하고 있다"며 "가상공간에 전시장도 구현함으로써 실제 전시보다 더 오래, 공간의 제한을 넘어 더 많은 감상이 가능한 방법도 시도해봤다"고 했다.

조동오 봉산문화회관 큐레이터는 "작가는 예술을 '감각적인 시각 자극을 통한 뇌 속의 변화'로 정의하고, 그 실천을 위한 방식으로 새로운 기술을 탐미하고 있다"며 "기존 예술에 대한 인식과 가치에 의문을 던지는 작업을 통해 감각의 스펙트럼을 넓히며 지속 가능한 예술을 지향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신 작가는 서울대 조소과, 동 대학원 조소과를 졸업했으며 현재 영남대 트랜스아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국내외에서 개인전 14회, 단체전 60여 회를 가졌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대구미술관, 부산시립미술관 등에 그의 작품이 소장돼 있다. 전시는 7월 10일까지. 053-661-3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