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달군 '개구리소년 흉기 알고 있다'?…경찰 "재수사 나설 것"

입력 2022-06-14 16:08:17 수정 2022-06-14 20:34:45

지난 1일 온라인 카페 게시판에 '개구리소년 흉기 알고 있다'는 글 올라와
지역 고등학생들 버니어캘리퍼스 공구 사용해 아이들 살해했다고 주장
경찰 "신빙성 떨어져, 당시 모두 수사했던 내용", 유족도 "증거 불충분해"

2014년 9월 26일 대구 달서구 용산동 와룡산에서 개구리소년들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이 발견된 현장에서 경찰이 조호연(당시 12세,성서초5년)어머니(왼쪽)에게 옷과 신발을 보여주며 사실확인을 하고 있다. 매일신문 DB
2014년 9월 26일 대구 달서구 용산동 와룡산에서 개구리소년들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이 발견된 현장에서 경찰이 조호연(당시 12세,성서초5년)어머니(왼쪽)에게 옷과 신발을 보여주며 사실확인을 하고 있다. 매일신문 DB

대구 초등학생 5명이 집을 나갔다 사라진 뒤 10년 만에 유골로 발견되면서 장기 미제사건으로 남은 일명 '개구리소년' 사건과 관련해 최근 범인과 흉기를 추론한 주장이 제기되면서 눈길을 끌고 있다.

경찰은 과거 수사 당시 검토했거나 혐의없음으로 결론 내려진 사안이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새롭게 수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전문가들도 신뢰할 만한 주장은 아니지만 과학적인 방법으로 검증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나는 사건의 흉기를 알고 있다'…온라인 게시글 화제

지난 1일 온라인 네이트 판에
지난 1일 온라인 네이트 판에 '나는 개구리소년 사건의 흉기를 알고 있다'는 제목의 글이 올라와 눈길을 끈다. 원글 작성자 A씨는 개구리소년 사건 범인이 당시 주변 공업고등학교에 다니던 불량배로, 공업용 도구인 '버니어캘리퍼스'로 범행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다른 누리꾼 B씨는 '묘사가 너무 상세하고 목격자 관점에서 서술했다'며 A씨가 실제 목격자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네이트 판

지난 1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나는 개구리소년 사건의 흉기를 알고 있다'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작성자는 주변 고등학교 학생들이 아이들을 살해했다며 이들은 '버니어캘리퍼스'라는 공구를 사용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작성자 A씨는 "지난 2011년 개구리 소년 사건을 재조명한 방송에서 피해자 두개골의 손상 흔적을 본 순간 범행도구가 버니어캘리퍼스임을 알아챘다"며 "그동안 자꾸 용접 망치 같은 걸로 때린 거라고 하는데 망치로 두개골에 파인 자국만 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버니어캘리퍼스는 두 개의 금속다리로 길이를 정밀 측정하는 공구다. 그는 "망치처럼 생겼지만 망치만큼 강하지 않은 그게 버니어캘리퍼스"라며 "버니어캘리퍼스는 안쪽 길이를 측정하는 각진 쪽이 있고 바깥쪽 길이를 측정하는 약간 둥글게 된 쪽이 있다"고 설명했다.

버니어캘리퍼스. 클립아트코리아
버니어캘리퍼스. 클립아트코리아

"대체 누가 그 산에 버니어캘리퍼스를 들고 올라갈까"라고 의문을 제기한 A씨는 지역 고등학생 무리가 버니어캘리퍼스를 들고 산에 있었으리라 추정했다.

그는 "물론 중학생도 섞여 있었을지도 모른다. 당시에 일진이라 불리는 문제 아이들이 산에서 본드를 불었다"며 "공업이나 기술 쪽 고등학교 학생들은 신입생 때 버니어캘리퍼스를 가지고 다녔다. 바로 가방 속에 있던 그 철제 버니어캘리퍼스로 같은 곳만 때린 거다"고 말했다.

이어 "환각 상태고 집단으로 달려들어서 아이들을 살해한 것이다. 자기들끼리 다 같이 모여서 죽을 때까지 누구도 발설하지 말자고 약속 또는 협박을 했을 것이다"고 설명했다.

1991년 11월 18일 대구 성서지역 학생들이 실종 어린이들의 단서를 찾기 위해 와룡산 기슭을 오르며 수색하고 있다. 매일신문 DB
1991년 11월 18일 대구 성서지역 학생들이 실종 어린이들의 단서를 찾기 위해 와룡산 기슭을 오르며 수색하고 있다. 매일신문 DB

◆경찰, 유족 "당시 수사에 확인했던 것, 신빙성 떨어져…"

오랜 세월 장기 미제 사건으로 남은 개구리소년 사건의 사인과 흉기에 관한 의혹과 추측은 그동안 숱하게 제기돼 왔다.

아이들이 사라진 지 5년째였던 지난 1996년에도 실종된 아이 '김종식' 군의 아버지인 김철규 씨가 아이들을 모두 살해한 후 집에 암매장했다는 주장이 나와 유족들이 고초를 겪었다. 당시 수사 상황과 유언비어가 만연했던 시대상은 2011년 개봉한 '아이들'이란 영화에서 자세히 묘사된다.

2002년 유골 발굴 당시에는 탄피가 함께 발견되면서 인근에 있는 육군 50사단의 총기 오발 사고로 인한 사망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비교적 최근인 지난해에는 주변 지리가 밝은 교사가 범인일 것이라는 댓글이 SNS로 퍼지면서 주목받았다.

올해 제기된 A씨의 주장에도 설득력이 있다는 누리꾼들의 의견이 이어지고 있지만 대구 경찰은 게시글의 신빙성은 떨어진다고 분석했다. A씨가 지목한 버니어캘리퍼스는 개구리소년 수사 당시에도 조사 대상이었으며 언급된 인근 공업고등학교들은 사건 발생 당시 개교조차 하지 않았다.

당시 인근 비행 청소년을 상대로 한 조사도 대대적으로 이뤄졌지만 혐의없음으로 결론을 내렸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다만 "게시글 내용에 대해선 추가 조사를 진행을 해보겠다"고 밝혔다.

대구경찰청 관계자는 "유골 발견 당시에도 많은 제보를 받았는데 그중에 버니어캘리퍼스도 지목됐다. 그 당시 수사본부가 범행에 사용된 도구가 아니라고 판단하고 종결했다"며 "수사본부는 인근 학교와 자퇴생을 포함해 불량 청소년 900여명을 상대로 한 수사도 마쳤다"고 말했다.

개구리소년 유가족 측도 게시글의 신뢰성에 의문을 표했다. 당시에는 전문가가 아니라면 버니어캘리퍼스를 쉽게 구할 수도 없었다는 정황도 덧붙였다.

우종우 개구리소년 유가족 대표는 "버니어캘리퍼스는 기계 전문가들이 사용하는 걸로 알고 있다. 내 생각에 해당 기구로 머리를 찍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본다. 그 당시 버니어캘리퍼스가 흔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글의 신빙성은 떨어진다고 본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도 "경찰이 신경을 써주면 감사하겠다. 하루빨리 일이 해결됐으면 좋겠다. 계속 관심을 가져줘서 감사하다. 관심이 이어지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고 전했다.

지난 2019년 대구지방경찰청에서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개구리 소년 실종사건에 대한 수사 상황 보고가 진행되고 있다.매일신문DB
지난 2019년 대구지방경찰청에서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개구리 소년 실종사건에 대한 수사 상황 보고가 진행되고 있다.매일신문DB

◆논란 빚은 '저체온사' 주장도 고개, 전문가 "경찰 수사 철저히 해야"

아이들의 실종을 둘러싸고 여러 의문이 나오는 가운데 최근 들어 '저체온사' 주장도 다시 고개를 들었다. 당시 대구경찰청 강력과장으로 수사를 지휘했던 김영규 전 총경은 버니어캘리퍼스로 지역 고등학생이 범행했다는 주장을 강력히 부인하며 "타살이 아닌 자연사"라는 입장을 반복했다.

매일신문 취재진과 만난 김 전 총경은 "그날 아이들이 와룡산에 탄두를 주으러 갔다가 오후 2시쯤 내린 비로 집에 올 수가 없었다"며 "비를 피하려고 모여있다가 사고를 겪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주장했다.

김 전 총경은 피해자 중 한 명의 두개골에는 체육복 상의가 둘러싸여 있었고 또 다른 한 명은 하퇴부에 체육복이 매듭지어 있었다는 점을 근거로 삼았다. 추위를 견디기 위해 상의를 얼굴에 뒤집어쓰거나 발목을 묶었다는 주장이다.

그는 "유골 발견 후 현장을 살펴보니 발견 장소가 비를 비하기 좋은 장소였다"며 "무엇보다 이런 살인 사건은 있을 수가 없다. 누가 아이 5명을 살해하고 묻겠느냐. 땅에 돌이 많아 땅을 파기도 어렵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지금까지 나온 가설이 대체로 설득력이 부족하다면서도 경찰이 다시 한번 살펴볼 필요는 있다고 지적했다.

김중곤 계명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하나의 가설로 검토해볼 순 있겠지만 가설일 뿐이지 근거가 충분하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경찰이 당시 수사기록과 대조해 글쓴이의 주장에 모순점은 없는지, 버니어캘리퍼스가 실제로 그 정도의 상처를 낼 수 있는 물건인지 검증해보는 과학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 교수는 용의자가 다수일 거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동의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범인이 다수라면 오랜 시간 범행을 숨기기엔 한계가 있었을 거란 추측이다.

김 교수는 "가해자가 여러 명일 가능성도 있겠지만 모든 가해자가 현재까지 범행을 완벽히 숨기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그중에 분명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허술하게 대처하면서 범행이 드러나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족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경찰 수사를 통해 가설에 대한 결론을 빨리 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신성원 대구한의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큰 사건이나 이해하기 어려운 사건이 발생하면 음모론은 꼭 나온다. 해당 게시글 역시 일반적인 음모론의 일종이라고 본다. 글에 버니어캘리퍼스 등 단정짓는 내용이 많은데 신빙성은 부족하다"며 "음모론은 이미 공개된 내용에다 마치 본인이 새로 발견할 것처럼 의견을 덧붙이는데 피해자나 유족한테 2차 피해를 입힐 수 있다. 경찰 수사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