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최고 호황기입니다. 앞으로 경제는 더 나아질 겁니다.' 돌이켜 보면 이런 뉴스를 접한 적은 없었던 듯하다. 당시엔 모르다가 조금만 경기가 주춤하면 '그때가 좋았는데'라며 돌아보게 마련이다. 반대로 말하면 늘 경제는 불확실성의 두려움 속에 제 위치를 가늠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했다. 제아무리 뛰어난 세계적인 경제 기관들도 한 달 뒤에, 일 년 뒤에 세계 증시가 어떻게 바뀔지 예측해 내지 못했다. 그저 '지금 상황에 큰 변화가 없다면'을 전제로 과거 데이터를 가져다가 추측하는 데 그쳤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예측은 늘 빗나가게 마련이다.
우한 폐렴으로 시작한 코로나19 팬데믹은 지구촌 경제를 초토화시켰고, 당장 위기를 극복한다며 시장에 마구 풀어 낸 돈은 그 위력을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거대한 인플레이션 쓰나미로 세계를 위협한다. 팬데믹이 끝나면 주춤했던 경제가 살아나리라는 막연하고 희미한 기대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산산조각 났고, 중국의 봉쇄 조치는 꺼질 듯 위태롭던 회복의 불씨에 찬물을 끼얹었다.
위기 속에 인간은 제 능력을 넘어선 인내와 용기, 의지와 배려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찬탄할 만한 인간성의 발현도 끝이 보이는 위기일 때로 국한된다. 올해가 끝나면, 내년 중반만 지나면 식의 마침표가 예고될 때 참고 견뎌 보자는 의지의 표출이 가능하다. 희망의 끄나풀을 잡을 수 없는 기나긴 터널에서 인간은 한없이 미약해진다. 가까스로 위험에서 빠져나왔다 싶었을 때 다시 위기가 찾아오면 맥없이 무너지기도 한다.
바로 지금 인류는, 우리나라는 그런 시험대 위에 서 있다. 참았던 욕구와 불만이 터져 나온다. 계층 간, 성별 간, 세대 간 갈등이 지난 선거를 통해 간접적으로 드러났다면 이제는 행동들로 쏟아져 나올 것이다.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를 내건 화물연대의 파업은 시작에 불과하다. 기름값이 치솟고 감당할 수 없는 물가 인상이 이어질 때 인내의 고통은 집단끼리의 갈등으로 진화하고, 메울 수 없이 깊어진 갈등의 골은 타협 불가능한 분노로 변이한다. 우리 사회가 바로 그런 갈등과 분노의 변곡점에 놓여 있다.
특정 이념과 정당을 지지하는 이들은 순수하지도 순진하지도 않다. 다름을 인정하고 한 걸음씩 물러나 타협점을 찾으려는 노력 따위는 말랑말랑한 감정의 허영일 뿐이다. 네가 죽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식의 호전적인 약육강식의 본능이 지배하는 듯하다. 정당과 정치인들의 아귀다툼은 태생적인 뿌리를 갖고 있고, 그것이 그들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들을 지지하는 국민들조차 마치 가스라이팅된 듯이 그들의 행동 양식을 따르고 있다. 아니 오히려 훨씬 더 전투적이고 비타협적이다.
코로나 팬데믹이 끝나면,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면 평화롭고 풍요로운 미래가 펼쳐질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은 접어 두자. 세대, 계층, 정치적 지지 세력 간의 격차와 갈등은 더 커질 것이고, 지금껏 겪어 보지 못한 위기로 다가올 수 있다. 정권이 바뀌고, 대기업이 1천조 원을 투자한다고 달라질 문제는 아닌 듯하다. 지금 위기는 바다 아래서 크기를 가늠조차 할 수 없는 거대한 야수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듯한 느낌이다. 야수는 갈등과 반목, 냉소와 비아냥 그리고 불의와 독선을 먹이 삼아 지금껏 피땀 흘려 이룩한 대한민국을 집어삼킬 수도 있다. 두 눈 똑바로 뜨고 두 다리에 바짝 힘을 주지 않으면 다음은 없다. 희망을 품은 다음 세대가 있어야 다음 정권 따위도 존재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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