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윤하 시인
나는 금호강가의 아파트 13층에서 유월의 강을 바라보고 있다. 경관은 강을 사이에 두고 청도에서 넘어오는 일곱 겹의 산등성이와 고모령을 마주하는 절경이다. 이 아파트의 가치는 90%가 전망이다. 지인이 보름날 월주가 드리워질 때 방문해 창밖 풍경을 보더니 '시가 저절로 나오겠다'고 한다.
올해 유월은 오랜 가뭄으로 누렇게 타죽은 잡초들이 강가를 덮고 있다. 병아리 오줌만큼 비온 후 금계화와 망초꽃 수레국화들이 버티고 살아서 노랑 하양, 보랏빛으로 사랑스럽게 피어있다. 강의 수위는 점점 낮아져 고기들이 자주 물 위로 튀어 오른다. 하루빨리 장마가 오기를 기다린다. 물속에 잠긴 산 그림자 위로 흐르는 강물을 보며 기다림의 사유도 유장하게 흘러간다. 오늘 흘러야 내일도 잘 흘러갈 텐데….
장마가 오면 금호강이 황톳빛 용트림으로 굽이친다. 비가 많이 와서 햇살교가 잠길 때 햇살교에서 율하천교까지 강둑을 걸어보라. 몸체를 이탈한 영혼이 강물을 끌어안고 추는 춤을 경험할 것이다. 마치 나이아가라 폭포의 강물이 낙하 직전에 세상을 삼킬 듯이 추는 춤 같다. 묵은 삶을 뒤집는 거센 물의 춤을 보며 철학자가 되리라. 문학인은 깊은 사유의 소용돌이를 맞으리라. '오늘 하루 잘 흘러가는지, 나의 실체의 바닥은 무엇인지, 자연과 인생 중 무엇이 더 무거운지, 그리고 여덟 마리 고라니와 꿩의 부부는 잠긴 늪에서 잘 피신했는지' 이런 생각이 거세게 흐른다.
큰물 질 때 13층에서 보면 습지의 왕버들이 물에 잠겨 머리만 내놓은 채 안간힘을 쓰고 있다. 큰물이 지나가면 푹푹 팬 땅과 쓰레기 널브러진 산책로와 지푸라기 덮어쓴 나무들이 간신히 서 있는 처참한 광경을 마주한다.
이렇게 여름은 시작하나 미리 가을을 염려한다.
장마나 폭풍우의 큰물이 지나고 건기가 오면 낙엽 진 나목에 걸린 비닐과 지푸라기들은 겨우내 바람에 펄럭인다. 이들을 떼어내는 자원봉사 활동하면 좋겠다. 그리고 모터페러글라이드의 겨울 금호강 비행을 금지하면 좋겠다. 겨울 철새들이 굉음을 지르는 날개 큰 괴물이 무서워 일제히 날아오른다. 물 위에서 쉬는 백조무리에게 돌을 던지지 않으면 좋겠다. 철새 전망대에서 철새는 볼 수 없다. 지축을 울리는 트레킹차도 금지해야 한다. 습지의 고라니는 그 차에 쫓겨 호랑이를 본 듯 겅중겅중 도망 다닌다.
우리의 금호강을 우리가 아름답게 유지하자.
보성강남타운 앞강의 수심은 얕다. 그래서 잉어의 짝짓기 여행을 훤히 내려다볼 수 있다. 큰물이 나서 햇살교가 잠기는 날, 그리고 반쯤 언 강에 눈이 오는 날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절경이다.
이런 날은 집을 개방할 예정이다. 커피와 의자는 무료이나 관람료는 매우 비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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