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자리이동

입력 2022-06-09 10:15:04

김아가다 수필가(2021 시니어문학상 대상 수상자)

김아가다 시니어문학상 대상 수상자
김아가다 시니어문학상 대상 수상자

친구네 집에서 주말을 보내려고 왔다. 호숫가 언덕에 초록빛 융단이 깔린 아름다운 전원주택이다. 탐스러운 복숭아가 주렁주렁 달린 과수원 옆 조붓한 길을 걷다가 깜짝 놀라 걸음을 멈춘다. 머리가 쭈뼛하면서 흥얼거리던 노랫소리가 쑥 들어가고 딸꾹질이 났다.

길섶에 봉두난발을 한 무덤이 친구네 집 담장 하나를 두고 붙어 있다. 산자의 집 옆에 죽은 자의 무덤이라니. 잔디 한 포기 없는 맨땅, 봉분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기다란 풀이 원형탈모에 걸린 듯 듬성듬성하다. 무덤 옆에는 언제쯤 심었는지 향나무 한 그루가 허수아비처럼 망자의 집을 지키고 있다. 자손들이 일 년에 한 번 찾아오는 무덤은 마치 칼을 휘두르는 희광이의 모습 같아 오싹하다.

망자의 집을 돌보는 후손의 나이가 구십쯤 된다는데 무덤 주인은 아무래도 한 세기 전의 사람인 듯하다. 그런데도, 수문장 역할을 하는 무덤이 집 앞에 있어서 든든하다는 친구의 말에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나며들며 문안을 드린다고 한다. 아침에는 담장 밖을 내다보며 "안녕히 주무셨어요?", 외출에서 돌아오면 "잘 다녀왔습니다." 지하의 이웃과 늘 인사를 하면서 산단다.

사람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죽음이라는 단어를 싫어한다. '돌아갔다'나 '떠났다'고 에둘러 말한다. 하지만 종교인들은 사후세계를 확신한다. 불교는 극락과 윤회를, 기독교는 영생을 믿는다. 요즘 서구에서는 죽음을 '자리이동'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대세라고 한다. 죽음은 좌절과 공포이지만,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며 다만 자리이동일 뿐이라는 말에 공감한다.

죽었다고 슬피 울 일도 아니며 가슴에 묻어두고 아파할 일도 아니다. 산 자의 땅과 죽은 자의 집이 공존하는 현장에 들어와 보니 사람이 사는 곳일 뿐이다. 죽은 자를 떠나보내며 요단강 건너가 만나자고 하지 않던가. 육신의 껍데기는 비록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지만, 소멸이 아니라 생성이며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진리를 우리는 믿고 위안을 받는다.

정원에 자리를 깔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장미 넝쿨이 소담스러운 담장 너머 불과 몇 미터 되지 않는 거리에 죽은 자가 있고, 담장 안쪽에 산 자가 있다. 묏자리 풍수를 제대로 보았는지 정남향을 향한 저승의 그와 이승의 내가 담을 경계로 나란히 누웠다. 산다는 것은 무덤을 향해 한 발자국씩 다가가는 것이라고 했다.

지금 나는 죽은 자와 소통 중이다. 밤하늘에 별이 초롱초롱하다. 오늘따라 유달리 반짝이는 별 무리를 바라보면서 그리운 이들을 불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