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 교수
제8회 지방선거가 끝났다. 더불어민주당의 참패라지만 오히려 그동안 기울어도 너무나 기울었던 운동장이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추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수도권을 놓고 보면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를 주고받았고, 기초자치단체장은 국민의힘이 우세를 보였지만, 의회는 95% 이상 압도적 다수를 차지했던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거의 5대 5 균형을 이뤘기 때문이다.
다만 중원이라는 충청권과 강원에서의 결과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심판 성격이 강했다고 볼 수 있다. 향후 4년간은 어느 당의 독주도 불가능할 것이라는 점에서 바람직한 결과라 여겨진다.
결과보다 더 주목해야 할 것은 26세 여성 비대위원장 박지현의 등장과 아름다운 퇴장이다. 과거에도 많은 여성 정치인이 있었지만 아무런 정치적 경력이나 배경 없이 170여 석을 가진 거대 정당의 대표급에 오른 적은 없었다. 그리고 박지현은 비대위 기간 내내 항상 한국 정치의 중심에 있었다.
성 착취 범죄인 'n번방 사건'을 공론화한 추적단 '불꽃' 활동가 출신인 박지현이 지난 1월 27일 이재명 대선 후보 선대위에 '디지털 성범죄 근절 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합류했을 때만 해도 그를 주목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런 그를 누가 대선 패배 후 비대위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공동위원장으로 발탁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2030 여성의 표를 얻기 위해 디지털 성범죄 추적의 성과를 가진 그를 영입해 소위 '얼굴마담'으로 활용하려 했다는 것이 민주당 지도부의 의도였겠지만 결과는 전혀 달랐다.
그는 스스로 판단을 통해 민주당의 문제를 비판하고 진심 어린 사과와 과감한 혁신을 요구했다. 때로 삐걱거리는 소리로 들리기도 했지만 대체로 박지현의 메시지는 '상식'에 가까웠기에 당내에서 쏟아진 그에 대한 비판과 갈등은 오히려 '비상식적'으로 보였고, 특정 정치인에 대한 맹종과 맹신이었으며, 부도덕한 행위를 일방적으로 비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박지현의 판단이나 행태가 모두 옳았다는 것은 아니다. '안희정 부친상에 조문한 인사들의 멱살이라도 잡아야 하나'라고 했을 때는 죄는 미워도 사람까지 미워해서는 안 되는 것 아니냐는 입장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민주당 소속 자치단체장의 성범죄로 치러진 보궐선거에서 참패한 후에도 끊임없이 등장하는 민주당의 성 관련 비위나 추행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강력한 징계 요구, 조국과 정경심 내외 사과 요구, 부동산 정책 실패와 대선 패배 책임자들에 대한 불출마 요구, 소수 광기 어린 팬덤 정치에 대한 비판, 그리고 86세대의 퇴출 요구로 이어진 사과와 혁신 메시지는 지극히 상식적이었다. 그러나 민주당은 그의 주장을 일축하거나 내부 갈등을 일으켰고, 결국 지방선거에서 패배했다.
과거에는 민주화 운동으로 투옥된 것이 정치고시라 하여 정계에 입문하는 지름길이었다. 민주화 이후에는 일류 대학을 나와 사법시험을 통해 판검사나 변호사를 하다 대선 캠프를 거쳐 공천을 받거나, 방송에서 시사평론가나 여성 앵커로 활동하다가 대변인을 거쳐 공천을 받는 것이 정계 입문의 일반적 과정이었다. 박지현은 스스로 정치의 중심에 섰다는 점에서 다르다.
박지현 현상이 갑자기 툭 튀어나온 것은 아니다. 새누리당 시절 박근혜 비대위는 20대 손수조와 이준석을 발탁했다. 이후 지난 대선에서는 30대 청년 이준석이 국민의힘 대표로 선거를 이끌었다. 모두 기성 정치인이 발탁했지만 이후 정계에서의 경로는 개인의 능력과 기회, 운이 작용했다. 박지현이 두드러진 것은 무엇보다 민주당의 비상식과 내로남불, 합리성을 상실한 의사결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박지현 하나로 한국 정치가 바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우상 숭배의 광신도 집단과 같았던 170석의 민주당 속에서도 그의 상식적 메시지와 행태가 강한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등장도 새 시대를 열어가는 청년 정치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일 수 있다. 처음엔 우습게 들렸던 시험을 통한 입후보 자격 인정도 시대 변화를 알리는 전조가 아닐까.
달이 차면 기우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소명을 다한 정치인들은 스스로 판단해 더 이상 추한 모습을 보이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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