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선거에서의 '의지'와 '표상'

입력 2022-06-01 06:30:00 수정 2022-06-02 09:52:23

박상전 정치부장
박상전 정치부장

지역 주민이 직접 선출한 대표자를 통해 해당 지역의 행정과 사무를 자율적으로 처리하는 지방자치제도는 민주주의의 근간이다. 민의를 반영하는 이 제도는 중앙의 통제와 감시, 감독에 맞서, 지방이 자율성을 갖고 행정적 효율을 극대화하는 유일한 제도다.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4월25일 대한민국 최초의 지방선거가 시작됐다. 70년의 역사를 가졌으나 4년마다 돌아오는 지방선거가 이제 막 8회를 맞은 이유는 1962년 박정희 대통령이 5.16을 통해 정권을 잡음과 동시에 지방선거를 폐지했기 때문이다. 이후 전두환 대통령 집권 시절 1988년까지 지방선거는 시행되지 않았다.

아이러니컬하게도 한국 최초의 지방선거는 90% 이상의 높은 투표율을 기록했다. 한 통계에 따르면 당시 문맹률은 50%를 넘었다. 숫자를 모르는 사람들이 적지 않아 투표용지에 기호 1번은 작대기 하나, 2번은 작대기 두 개를 그려 넣는 식이었다. 대학 졸업자가 넘쳐나고 석박사 학위자 또한 즐비한 '문맹률 제로 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인으로선 역대 최저 수준인 이번 지방선거 투표율은 한번 곱씹어 봐야 할 문제점으로 생각된다.

특히 지방소멸 시대에 저조한 지역의 투표율은 그냥 넘길 문제는 아니다. 경북은 인구가 줄어 자연 소멸 위기에 처했고, 경제 빈곤과 생산 인력 유출로 대구도 제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다. 그런 곳에서 자신들의 역량을 되찾아 줄 선량을 뽑는 행보에 소극적이라면 이대로 변방으로 밀려나도 크게 할 말은 없어 보인다.

후보자들도 당락을 떠나 '지역을 대변하겠다'던 초심은 변치 말아야 한다. 당선자는 자만에 빠져서는 안 되고, 낙선자도 이번 실패를 발판 삼아 지역 발전을 위한 봉사 활동을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특히 당선자들이 명심해야 할 점은 언제까지 승자의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승리감에 도취해 4년을 허비하며 전리품 챙기는데만 골몰한다면 와신상담하고 있는 지금의 낙선자에게 왕좌를 언제든 뺏길 수 있다.

아루투어 쇼펜하우어는 그의 저서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에서 인간의 인지할 수 있는 수준을 '의지', 그 이상의 것을 '표상'으로 규정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이 사물의 본질을 인지해 내기는 불가능하다. 시각을 통해 보는 물체는 우리가 인지할 수 있는 수준의 가시광선을 통해서만 발현된 현상이어서 대상이 지닌 본질은 신체의 감각 기관만으로는 해석이 불가능하다. 자외선과 적외선으로 통해 보면 다르게 발현되는 물체지만 우리는 오로지 반사된 가시광선만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에서 당선자들은 자신을 찍어 준 표(의지)가 전부인 것으로 착각하면 안 된다. 보이진 않지만 반드시 존재하고 있는 침묵의 여론(표상)은 언제든 수면 위로 드러날 수 있고, 그것을 인지하거나 인정하지 않는다면 다음 낙선에 가장 주요한 이유가 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비난의 대상이지만 전두환 전 대통령은 자신을 반대하는 여론을 항상 의식했다. 민주당 지도부가 방문한 자리에서 그는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달빚정책이라도 내놓으면서 비판해야 한다"고 친정인 보수정당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선거 때마다 반공 의식으로 재미를 톡톡히 본 그였으나, '통일'이라는 대명제에선 국민적 여론에 승복한 자세를 견지하며 반대 여론을 기꺼이 수용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