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칼럼] 지방자치 망치는 정당공천제

입력 2022-05-29 18:53:52 수정 2022-05-30 07:07:24

지난달 26일 오후 국민의힘 대구시당에서 주호영 대구시당 공천관리위원장이 대구지역 8개 구·군에 대한 지방선거 후보 및 경선 대상자를 발표한 뒤 공천배제된 예비후보 측 지지자들이 주 위원장에게 항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6일 오후 국민의힘 대구시당에서 주호영 대구시당 공천관리위원장이 대구지역 8개 구·군에 대한 지방선거 후보 및 경선 대상자를 발표한 뒤 공천배제된 예비후보 측 지지자들이 주 위원장에게 항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해용 논설실장
김해용 논설실장

6월 1일이면 대한민국의 4년 지방자치를 책임질 인물들이 결정된다. 지방선거가 풀뿌리 민주주의 축제라고 했지만 솔직히 공감하기 어렵다. 그 비효율성과 고비용성 때문이다. 특히 특정 정당에 대한 편중이 지나친 대구경북이 더 그렇다. 올해는 가히 역대급이다.

정책도, 인물도, 경쟁도 안 보인다. 3무(無) 선거다. 대구경북에서 이번에 투표 없이 당선되는 이가 무려 75명이다. 선출되지 않는 선출직. 논리 모순이고 언어도단이다. 찬반 의사라도 표시하고 싶지만 선거법이 허락하지 않는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 중 한 명을 고르자니 공부 많이 해야 한다. 선거 공보물의 빽빽한 글귀 보는 것도 일이다.

어떤 면에서 정당공천제는 유권자 친화적 제도인 듯 보인다. 적어도 공당(公黨)의 검증을 거쳤을 테니 인물에 대한 필터링은 어느 정도 됐을 것 아닌가.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현실은 이와 거리가 멀다. 허울뿐인 정당 공천이지 상당 부분 국회의원들의 사천(私薦)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국회의원들은 지방자치를 중앙 정치에 예속시켰다. 지방선거 공천을 받고픈 정치 지망생들이 국회의원 발밑에 엎드린다. 쏠쏠한 공천 헌금 창구인 데다 지역구 관리에 이보다 더 충성스러운 이들도 없다. 정당공천제를 통해 국회의원들은 자기 지역구에 먹이사슬을 구축하고 스스로 정점(頂點)에 앉는다. 지방선거 정당공천제 폐지 여론은 대부분 70%를 웃돈다. 여론 압박 속에 국회의원들은 지방선거 정당 공천 폐지 법안을 여러 차례 발의하는 시늉만 해 놓고 회기 내내 미적거리는 수법을 통해 자동 폐기시켜 왔다. 상습적이다.

국회의원에게 줄 잘 대어 자리를 차지한 지방 권력들이 가진 권한은 보통 시민이 알고 있는 것보다 크다. 지방 행정과 예산 편성 및 집행, 조례·규칙 제정은 드러난 권한일 뿐이다. 어떤 인물을 뽑느냐에 따라 해당 지방의 명운이 바뀐다. 어떨 때에는 사고나 안 치면 다행이다. 지자체장·지방의원들이 연루된 뇌물 사건, 이권 개입, 청탁, 외유 등이 자고 나면 터지는 현실이 이를 여실히 보여 준다.

이번 선거에서 국민의힘 홍준표 대구시장 후보와 이철우 경북도지사 후보는 선거대책위원회를 아예 꾸리지 않았다. 사실상 끝난 승부여서 그럴 것이다. 한편으로는 선대위를 꾸리는 순간 거기에 꼬인 사람들이 나중에 선거 공로에 따른 자기 몫 요구를 할 것이라는 점을 두 후보 모두 체득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했으리라 본다. 실제로 이제 선거가 끝나는 순간부터 대부분의 당선자들은 선거 공신(功臣)들로부터 심적 '빚'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 지방자치 정원에는 민본(民本)보다 이권이라는 이름의 잡초가 더 무성하다. 지방자치 출범 초기 경험과 교육, 훈련이 부족해서 그런 것으로 여겨졌지만 시간이 쌓여도 문제점은 해소되기보다 확대되는 양상이다. 혹자는 우리나라 지방자치를 망치는 '3적'으로 정당 공천, 비효율, 무관심을 꼽았다. 지당한 소리다.

항간에 지방분권 개헌을 해야 한다는 소리가 높다. 하지만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의 지방분권 개헌은 지방 토호들의 잔칫상을 더 풍성하게 만들 가능성이 있다. 적폐는 지방에도 있고 그 최종 보스는 해당 지역구의 국회의원들이다. 지방자치의 퇴행을 막는 유효한 조치는 정당공천제 폐지다. 적어도 기초지자체장·기초의원 정당 공천은 반드시 없어져야 하며 이번 선거가 끝나는 대로 여론이 모여야 한다. 구렁이 담 넘어가듯 넘길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