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갓길 택시서 "이것들이 다 내 제자요 나보다 훌륭한 친구들이지" 자랑하셨죠
스승이신 예민해 교수님께서는 2019년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저의 석사, 박사 지도 교수님이셨고, 무엇을 하든 네가 원하는 걸 하면 된다고 항상 격려해 주시던 분입니다.
예방의학 전공의 과정을 시작하면서 처음 인사를 드리러 갔을 때 "전공의 과정을 거치면 누구나 전문의 자격을 따서 나갈 수는 있다. 하지만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각자의 지식수준은 천차만별이 되니 알아서 열심히 하도록 해"라고 하신 말씀이 하도 인상적이어서 저도 이따금씩 후배들에게, 제자들에게 그 말을 하곤 했었습니다.
선생님은 제자들에게도, 다른 누구에게도 꾸밈이 없이 언제나 소탈하셔서 엄하면서도 편하게 느껴지셨던 분이셨습니다. 그 분께 처음 지금은 소맥이라고 부르는 소주 폭탄주를 박자에 맞추어 마시는 법을 배웠네요. 제가 어느 정도 나이가 들고 난 후에도 흥이 나시면 "어이 강군" 혹은 "야 윤식아"라고 이름을 불러 주셔서 참으로 살갑게 느껴졌던 순간들도 많았습니다.
어느 해엔가 의국 모임 때 약주를 드시고 많이 취하셔서 몇 사람이 함께 택시를 타고 댁까지 모셔다드리는데 "이것들이 다 내 제자요. 나보다 훨씬 훌륭한 친구들이지"라고 기사님께 번지수 안 맞는 자랑을 하셔서 민망하면서도 뿌듯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교실 선배 교수님, 진주에서 일하시는 동문 선배님과 함께 문상을 하려고 차를 타고 가면서, 아마 선생님은 "나 잘 살고 간다. 고마웠다."라고 하셨을 거라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장례식장에 도착했더니 부고에 공지한 대로 조의금도 받지 않고 방명록도 없었습니다. 선생님께 마지막 인사를 드리고 나니 둘째 아드님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마지막 가는 길에 인사하러 오는 사람들한테 내가 밥 한 끼 살 거니까 조의금 받지 마라"고 하셨다구요.
빈소를 나서는데 탁자 위에 인쇄된 종이가 놓여 있습니다. '상주들이 문상 인사를 글로 한 건가 보다' 하고 보았더니, 선생님께서 생전에 미리 남겨 두신 인사 말씀입니다. 살아계실 때 하시던 말투 그대로인 인사를 읽다 보니 마음이 뭉클해졌습니다. 남기신 인사말은 이렇습니다. 이 글을 쓰다 보니 다시 마음 한 켠이 울컥해지네요.
"저 예민해는 일천구백삼심 육년에 이 땅에 와서 긴 세월을 살았지만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모두 털어 버리고 태어났던 그 곳으로 찾아 가려 합니다. 저를 너그럽고 다정히 대해 주시며 아껴주신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올리겠습니다. 원망과 오해가 있으셨던 분들에게는 제가 너무 미숙하였음을 고백합니다.
부디 잊어 주십시오. 여러분들께서는 좀 더 따뜻하게 사시다가 운명의 뜻에 따라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지금보다 더 사랑하며 살고 싶습니다. 별나고 거칠었던 저를 잘 감싸 주셔서 큰 탈없이 떠나게 되어 행복합니다.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 이천십구년 사월 이십이일 예민해 드림"
선생님, 선생님이 계셔서 언제나 든든하고 감사했습니다. 마지막까지 저희에게 이렇게 큰 선물과 가르침을 주고 가셔서 고맙습니다. 이제 편히 쉬십시오. 가르쳐주신 대로 저희도 잘 살다가 때가 되면 다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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