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근 지음/ 부키 펴냄
"페스트 환자가 되는 건 피곤한 일이다. 그러나 페스트 환자가 되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는 건 더욱더 피곤한 일이다."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의 한 구절이다. 인류는 전염병과의 오래되고 질긴 악연 속에서 감염자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온갖 대책을 고민해왔다. 눈에 보이지 않으며, 빠른 속도로 퍼져나가는 적을 마주한 인류의 정신에는 커다란 공포가 새겨질 수밖에 없었다. 공포는 새로운 보건 의료 시스템 등 기술 발전을 앞당기는 마중물이 됐다. 감염을 최소화하기 위해 생활양식이 바뀌기도 했다. 전염병의 창궐은 곧 인류사의 변곡점을 의미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전염병의 영향은 거시적인 차원에서만 바라볼 문제는 아니다. 팬데믹은 한 인간의 뇌와 마음에도 변화를 만든다. 이를 살피고 분석해내는 것은 심리학, 뇌 과학, 신경 과학의 영역에 해당한다.
코로나19 팬데믹 선언 후 2년여가 지난 2022년 4월, 우리나라는 사회적 거리두기와 사적모임 인원 및 시간제한이 전면 해제되는 등 방역지침이 완화됐다. 그동안 우리 국민 3명 중 1명이 코로나에 걸렸다. 직접 감염되진 않았더라도 팬데믹이 일상에 미친 심리적 영향은 매우 크다. 코로나19와의 싸움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지만, 전 세계인이 강제로 참여하게 된 '사상 최대의 사회적 고립 실험'은 아직 현재 진행형이다.
훗날 역사 교과서에 반드시 실릴 순간을 사는 우리 앞에는 여전히 의문과 우려가 산재하다. '과연 코로나19에 걸리면 정말 우리 뇌가 손상될까', '완치 후 후유증은 얼마나 오래갈까', '팬데믹 기간에 태어난 신생아들, 마스크 쓴 얼굴이 익숙하고 비대면 수업을 받으며 자란 아이들의 인지 발달은 괜찮을까', '팬데믹 때문에 저하된 뇌 기능을 회복할 수 있는 과학적 방법은 무엇일까'.
하버드대에서 심리학 박사 학위를 받고 현재 충북대에서 인지심리학을 가르치고 있는 정수근 교수는 이런 궁금증을 풀기 위해 수많은 연구를 직접 찾아보고 그 결과와 데이터를 정리했다. 신간 '팬데믹 브레인'은 이러한 연구 결과들을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다듬은 책이다.
저자는 코로나19에 걸린 경험이 있다면 뇌와 인지 기능에 손상을 입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강조한다. 영국의 건강 빅 데이터 보유 기구인 바이오뱅크(UK Biobank)가 400여 명을 대상으로 코로나19 감염 전후의 뇌 영상을 비교한 결과 신경 세포체가 밀집돼 있는 회백질의 두께가 얇아져 있었다. 다른 연구에서도 코로나19 사망자의 뇌를 검사해보니, 치매 등 퇴행성 뇌질환을 앓은 사람의 뇌처럼 여기저기 손상을 입었음이 확인됐다.
코로나19에 걸리지 않았다면 이러한 타격을 피할 수 있을까. 저자는 걸린 적이 없어도 팬데믹 시대를 살아가는 것만으로 뇌 손상과 인지 기능 저하를 피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거리두기와 자가격리, 이동제한과 지역봉쇄 등이 초래한 사회적 고립이 뇌와 인지 기능에 손상을 입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의 대표적 증상은 '브레인 포그'(Brain Fog)다. 두통과 피로, 기억력 감퇴 등으로 머릿속에 안개가 가득 낀 것처럼 멍해지며 집중력이 떨어지는 증상을 이른다. 장기적으로 볼 때 코로나로 인한 뇌 손상은 다른 뇌 질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희망은 없을까. 책은 우리 뇌가 경험과 환경에 따라 얼마든지 변화하고 달라질 수 있다며 힘을 준다. 예컨대 치료 목적으로 뇌의 절반을 제거해도 남은 절반의 뇌가 제거된 뇌의 기능을 이어받아 수행한다. 덕분에 환자는 절반의 뇌만으로도 얼마든지 정상생활을 할 수 있다.
"나이가 들면 뇌 영역의 크기가 줄고 인지 기능도 쇠퇴하지만 이를 보완키 위해 더 많은 뇌 영역이 활성화한다. 연구자들은 이런 뇌의 가소성 덕분에 팬데믹 종식 후 인지 기능이 어느 정도 회복될 것으로 예측한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저하된 뇌 기능을 되찾고 지친 심신을 깨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저자는 "우리 뇌와 인지 기능은 새로운 경험과 자극에 노출될수록 더 발달한다"며 "생소한 동선으로 출퇴근하거나 낯선 점심 메뉴에 도전하는 것, 새로운 장르의 음악을 즐기거나 새 취미를 찾는 것처럼 일상에서 소소한 변화를 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이와 함께 유산소 운동을 꾸준히 하면 뇌 영역의 부피가 커지고 뇌 영역 간 연결성도 좋아진다. 여기다 충분한 수면과 스킨십은 스트레스 수치를 줄여주고 면역력과 백신 효과를 높인다. 260쪽, 1만6천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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