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유족지원' 경찰‧소방공무원에 역할 떠넘긴 꼴?

입력 2022-05-12 16:46:16 수정 2022-05-12 22:17:24

7월 정책 시행 앞두고 실효성 논란
경찰·소방의 센터 연계 요청 없으면 사실상 '무용지물'

지난 2020년 7월 대구 금호강 강창교 난간에 자살 및 추락 사고 예방을 위한 시스템이 설치돼 CCTV가 가동되고 있는 모습.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매일신문 DB
지난 2020년 7월 대구 금호강 강창교 난간에 자살 및 추락 사고 예방을 위한 시스템이 설치돼 CCTV가 가동되고 있는 모습.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매일신문 DB

오는 7월 대구에서 시행되는 자살 유족 관리 지원사업이 시작 전부터 실효성 논란을 빚고 있다.

유족이 지원 대상에 선정되려면 우선 경찰과 소방 당국이 해당 기관에 출동 요청을 해야 한다. 그러나 가뜩이나 현장 업무 처리에 바쁜 경찰이나 소방관이 유족까지 챙길 여력이 없어 유명무실한 제도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자살유족 원스톱서비스 지원사업'은 자살 고위험군에 해당하는 유족에게 심리‧정서적 지원과 사후 법률‧행정 및 주거비 지원을 해주는 국가 보조금 사업이다.

지난 2019년 광주, 인천, 강원 일부 지역을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확대 시행 중이다. 오는 7월부터는 대구를 포함한 서울, 세종, 충남, 충북, 제주가 사업을 시작한다.

자살 사건이 발생하면 사건 현장에서 경찰관이나 소방 공무원이 시·도의 자살예방센터 또는 각 구·군 정신건강복지센터에 출동 요청을 한다. 센터 측은 사건 초기 현장에서 유족과 만나 심리적 안정과 행정적 지원을 제공한다.

그러나 유족들이 지원 대상자로 선정되려면 경찰과 소방 당국의 출동 요청과 협조가 필수다. 이는 급박하게 돌아가는 현장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방식으로 경찰과 소방의 업무만 과중해진다는 불만이 제기된다.

대구에서 근무하는 A경감은 "자살 사건이 발생하면 사흘 안에 사망 경위를 조사하고 유족에게 신변을 인도하는 등 급박하게 돌아간다"면서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이 출동 요청을 하고 유족을 인도할만한 여력이 없고 즉각 개입하기도 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소방 당국도 난색을 표하기는 마찬가지다. 구조·구급 현장에 출동하는 B소방장은 "자살 의심 사건 현장에서 소생 가능성이 있는 경우 촌각을 다툴 정도로 정신없이 움직인다"면서 "유족 지원 사업이 현장에 제대로 안착하려면 적극적인 홍보와 교육이 필요하다"고 했다.

사후에 유족을 지원사업 대상자로 등록할 수도 있지만 이마저도 경찰의 몫이다. 유족이 사업 대상자로 선정되려면, 유족이 경찰서를 찾아간 뒤 경찰이 정신건강복지센터측에 사업 대상자를 인계해야 한다.

결국 경찰과 소방관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유족들이 지원 사각지대에 놓일 가능성이 크다. 자살 시도자나 유족을 정신건강복지센터에 연계하는 업무가 아직 의무화되지 않은 점도 제도 정착에 장애물로 꼽힌다.

이와 관련, 대구시는 사업 시행을 앞두고 경찰, 소방과 정신응급대응협의체를 통해 협조체계를 강화할 계획이다.

대구시 관계자는 "자살 사건의 경우 경찰이나 소방 공무원이 아닌 행정기관이 일일이 알고 대응하기가 어렵다"면서 "경찰과 소방 공무원을 대상으로 사업을 홍보하고 전담 인력 교육을 진행할 예정이다. 현재 주기적으로 경찰‧소방 측과 업무 간담회를 통해 협력 체계를 강화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