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세·실무 차관, 가교·창구 청장에 지역 활로 기대

입력 2022-05-05 16:08:28 수정 2022-05-05 21:16:00

尹정부 첫 차관급 인선은…윤석열 "장관 의견 가장 중시할 생각", 한덕수 "차관은 부처 장관들이 할 것"
정통 관료 출신 아닌 외부 인사들 차관 발탁 가능성
정호영 낙마 위기 속 고위 관료 명맥도 끊겨 소통 창구 우려 목소리
전문가들" 균형발전 관련 인사들 차관에 대폭 기용해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오른쪽)이 14일 서울 통의동 제20 대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고용노동부와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후보자를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후보자,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오른쪽)이 14일 서울 통의동 제20 대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고용노동부와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후보자를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후보자,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내각 중심의 국정 운영 의지를 피력하고 장관에 차관 인사 추천권을 최대한 보장하겠다고 밝히면서 '차기 정부의 각 부처 초대 차관을 누가 맡을지'를 놓고 세종 관가가 술렁이고 있다.

정통 관료 출신이 아닌 예상 밖 외부 인사가 기용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관가 일각에서는 새 정부 출범 직후 국정 운영 주도권을 맡기는 이른바 '왕차관'에 이어 장관 '복심' 역할을 맡게 될 '실세 차관'이 등장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새롭게 고개를 든다.

이에 지역 정치권에선 향후 있을 차관 인선에서 정부와 지역의 가교 역할을 하고 지역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대구경북(TK) 출신 인사 등용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TK의 압도적 지지에 대한 응답 차원인 동시에, 향후 안정적 국정 운영을 위한 탄탄한 지지기반 확보 측면에서도 충분한 정치적 당위성을 갖기 때문이다.

◆尹 "차관 인사에 장관 의견 최우선"

앞서 윤 당선인은 향후 정부 부처 차관 인사에 대해 장관의 의견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윤 당선인은 지난달 서울 통의동 인수위 기자회견장에서 "아직 차관 인사까지 생각을 안 했지만 검증은 다른 곳에서 하더라도 결국 함께 일할 사람들을 선발하는 문제는 장관의 의견을 가장 중시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부는 대통령과 총리, 장관, 차관 같은 주요 공직자가 함께 일하고 책임지는 구조 아니겠나. 궁극적으로는 대통령이 책임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인수위 관계자는 "권한을 주고 성과가 없으면 책임을 물리는 것"이라며 "총리에게 장관 제청권을 주고 장관에 차관 제청권을 주는 시스템"이라고 부연했다.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도 "차관들은 지명된 부처 장관 후보자들이 할 것"이라고 발언, 윤 당선인의 인사 철학을 뒷받침했다.

한 후보자는 지난달 인사청문회준비단으로 출근하며 "일단 차관은 어떤 사람을, 어떤 사람과 일할지 고르는 문제는 일단 어제 지명된 (장관)후보들이 할 것"이라고 했다.

장관에 인사권이 주어진 만큼 장관은 자신이 믿을 만한 인물을 차관 직책에 앉혀 조직 장악에 나설 가능성이 제기된다. 하마평이 도는 후보군과 달리 전혀 예상 밖 외부 인사가 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이에 초대 차관에는 1급 정통 관료 출신이 아니라 교수나 정치인 등이 발탁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외부에서 차관이 오면 1급 공직자들은 옷을 벗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한 경제부처 국장은 "5월 말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1급 인사가 있기 전에 기존의 차관들과 실장들이 다 사표를 낸다"면서 "사표가 수리되면 1급들은 절반 이상 교체되고 공직 사회에선 대거 교체 바람이 불게 된다. 특히 신임 차관 인사에 모든 관심이 쏠릴 것"이라고 전했다.

또한 새 정부를 이끌 정부 부처의 장관 후보자가 발표됐으나, 현재 진행 중인 국회 인사청문회 등을 거쳐 내각 진용이 갖춰지기까지는 앞으로 시간이 필요해 당분간 차관 중심의 국정 운영이 불가피할 수도 있다.

정부 출범 직후 신-구 정부의 '동거체제'가 예상보다 길어질 경우 각 부처의 신임 차관 임명부터 이뤄질 수 있어 이럴 경우 새 정부의 정책 기틀을 잡는 핵심적인 역할을 맡게 될 차관에 더욱 무게 중심이 쏠릴 것으로 보인다.

지역 정치권 관계자는 "장관 후보자가 '실세 정치인'일 경우 향후 주요 현안마다 정치적 판단과 고려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진다"며 "장관은 큰 줄기의 정무적 판단을 하고, 차관이 실무선에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내 대안과 협상안을 제시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시장이나 도지사도 같은 유력 정치인일 경우 현안 조율에 있어 장관과의 기싸움으로 인해 실마리가 풀리지 않을 수도 있다"며 "이런 상황에선 차관이 개입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일종의 '차관 정치'가 될 수도 있는 것"이라고 했다.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조기 건설 등 지역 대형 현안들을 추진하기 위해선 조만간 있을 정부 부처 차관 인선 과정에서 지역 이해도 높은 소통 창구 확보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사진은 정부세종청사 전경. 정부청사 관리본부 홈페이지 갈무리.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조기 건설 등 지역 대형 현안들을 추진하기 위해선 조만간 있을 정부 부처 차관 인선 과정에서 지역 이해도 높은 소통 창구 확보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사진은 정부세종청사 전경. 정부청사 관리본부 홈페이지 갈무리.

◆지역 소통 창구 더 좁아질까 우려 목소리도

이런 가운데 김인철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3일 자진 사퇴한 이후 더불어민주당 측은 지역 출신인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의 자녀 의대 편입 특혜 및 아들 병역 의혹, 경북대 병원장 재직 당시 행적 등을 고리로 사퇴 압박을 이어가고 있다.

정호영 후보자의 낙마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지역 정치권에서는 대안으로 차관급 인선에서의 지역 출신 인사 등용에 대한 요구가 커지는 분위기다.

특히 지난 5년간 주요 정부 부처에서 TK 출신 고위 관료가 공직을 떠나거나 본부를 비운 상황이다 보니 지역 소통 창구 확보가 더욱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실제 산업통상자원부에선 올 초 대구 출신 김정일 신통상질서전략실장(차관보급)이 퇴직한 뒤 민간 기업 임원행을 택했고, 대구 출신인 산업혁신성장실장과 산업기술융합정책관, 주미대사관 공사참사관 등 주요 보직을 거친 장영진 기획조정실장도 올 들어 명예퇴직했다.

행정안전부에서는 포항 출신의 윤종진 안전정책실장이 지난해 말 본부를 떠나 전북혁신도시에 있는 지방자치인재개발원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문경 출신의 김학홍 행안부 민방위심의관도 올 초부터 대통령 소속 자치분권위원회 자치분권기획단장으로 파견돼 본부를 비웠다.

특히 과거 TK 출신이 종횡무진 했던 행안부 지방재정경제실은 김현기 전 지방자치분권실장을 끝으로 지역 출신 명맥이 끊긴 상황이다.

윤 당선인의 대선 득표율은 TK에서 전국 최고치(대구 75.14%, 경북 72.76%)를 기록했음에도 지역 정치권에선 지난 5년간 예산·국책사업 등에 지역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는 창구가 없던 상황이 차기 정부에서도 계속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앞서 지난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당시 장·차관 인사 114명 중 TK 출신은 11명에 불과했고, 이듬해 8월 2기 중폭 개각과 2019년 3월 개각 명단에서는 TK 출신이 전무했다.

반면 문 대통령 고향인 부산·울산·경남(28명)과 최대 지지 지역이었던 호남 출신(31명)이 59명으로 절반이 넘었다.

지역 정치권 관계자는 "앞서 윤석열 정부의 초대 국무총리 인선 과정에서도 TK 출신 인사들이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면서 "새 정부 내각 차관 인선에서 TK 출신이 약진하지 못하면 지역 관가와 중앙 부처의 소통이 막힌 현 상황을 타개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지역균형발전 관련 지역 인사들 대폭 발탁해야"

이에 대해 김용찬 대구가톨릭대 교수(대한정치학회 회장)는 "정치인 출신 장관들은 주로 판단과 결정을 하고 실무적이거나 구체적인 방안과 현안 조율은 차관이나 실국장급에서 많이 내다보니 차관 영향력이 더욱 커질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김 교수는 "관료 출신이 차관으로 내부 승진하거나 대통령이 차관을 임명을 하게 되면 장관의 독단을 막을 수 있는 견제와 균형을 할 수 있는데, 장관이 차관 인사권을 쥐게 되면 견제와 균형이 사라질 수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차관 인선 과정에서 지역균형발전과 관련된 인사들을 대폭 기용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 교수는 "장관 인선에선 '지역 안배 배제' 기조로 갔다면 차관급에는 인사의 폭을 더욱 넓혀야 한다. 지역에서 오래 활동하고 지역 현안을 꿰뚫고 있는 인사들을 많이 발탁해야 균형이 맞다"며 "지역균형발전과 지방분권과 관련된 각종 위원회에 활동한 인사들을 대폭 기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4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브리핑룸에서 농림축산식품부 장관과 고용노동부 장관 인선안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후보자,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 윤 당선인.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4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브리핑룸에서 농림축산식품부 장관과 고용노동부 장관 인선안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후보자,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 윤 당선인.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