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민의 나무오디세이] 내 이름은 아까시나무, 왜 ‘아카시아’라고 부를까

입력 2022-05-06 12:40:00 수정 2022-06-13 16:13:15

성주군 월항면 지방리 도로변에 있는 아까시나무는 수령이 100년 넘었다.
성주군 월항면 지방리 도로변에 있는 아까시나무는 수령이 100년 넘었다.

♩동구 밖 과수원길 아카시아꽃이 활짝 폈네

하이얀 꽃 이파리 눈송이처럼 날리네

향긋한 꽃 냄새가 실바람 타고 솔솔

둘이서 말이 없네 얼굴 마주 보며 쌩긋

아카시아꽃 하얗게 핀 먼 옛날의 과수원길~

우리에게 아련한 고향의 모습을 그대로 살려주는 동요 「과수원길」 가사에 '아카시아나무'는 '하이얀 꽃 이파리'와 등장해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뭇 봄꽃들의 잔치가 시들해지는 5월 도시 변두리나 야산에 나가면 산들바람 타고 진한 향기를 내뿜는 꽃을 주렁주렁 매단 나무가 바로 아까시나무다.

1990년대까지 아까시나무는 '아카시아나무'라고 불렀다. 이후 아까시나무로 새 이름을 만들어 표준어로 삼았지만 아직도 '아카시아'로 부르는 사람이 많아서 국립국어원의 표준대사전에도 '아카시아'를 찾으면 "아카시아(acacia) 「명사」 '아까시나무'를 일상적으로 이르는 말"로 나와 있고 아까시나무에서 채집한 꿀 이름도 '아까시꿀'이 아니라 '아카시아꿀'로 굳어버렸다.

◆왜 '아카시아나무'로 불렀나

아까시나무를 왜 '아카시아나무'로 부르게 됐을까? 미국이 고향인 아까시나무는 19세기 말에 우리나라에 도입됐고 일제강점기에 산림녹화와 목재, 땔감으로 이용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산에 심어질 때 일본말로 '니세아카시아(ニセアカシア)' 즉 '가짜아카시아'라는 이름으로 보급됐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긴 단어을 줄여 쓰다 보니 가짜라는 뜻의 '니세[贋]'를 떼버리고 '아카시아'라고 불러왔다. 문제는 아까시나무와 다른 진짜 아카시아가 존재하기 때문에 이름에 혼란을 초래했다.

아까시나무의 학명은 '로비니아 슈도아카시아(Robinia pseudoacacia)'다. 프랑스 원예가 로빈이 신대륙에서 아카시아와 비슷한 나무를 유럽으로 가져왔는데 스웨덴 식물학자 칼 폰 린네가 그의 이름을 따서 속명을 '로비니아'로 했다. 종속명은 아카시아를 닮았다는 뜻의 '슈도아카시아'라고 붙였다. 학명으로 풀어볼 때 '로빈 대령이 가져온 가짜 아카시아나무'이지만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학명에서 '가짜, 모조'라는 의미인 '슈도(pseudo)'를 빼버리고 그냥 '아카시아(acacia)'로 부르게 된 모양새다.

진짜 아카시아나무는 열대성 상록수로 TV 프로그램 '동물의 왕국'에 나오는 기린이 잎을 먹는 키가 큰 나무다.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아카시아'라는 다른 나무가 엄연히 있는데도 표준어가 바뀌기 전까지 아까시나무를 '아카시아'로 불렀다. 지금부터라도 아까시나무의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면 나무의 정체성을 살릴 수 있고 사람들도 헷갈리지 않을 것이다.

경북 상주시 공성면 옥산초등학교 교정에 있는 수령 100년이 넘은 아까시나무.

◆다양한 쓰임새 귀화식물

아까시나무가 이 땅에 본격적으로 뿌리를 내린 시기는 6·25 전쟁이 끝난 후다. 전쟁으로 헐벗은 산하의 산림녹화를 위해 대량으로 심어져 사방조림(砂防造林) 사업의 성공에 큰 역할을 했다. 나무의 새싹이 잘 트고 추위나 소금기에도 견디는 힘이 강한 콩과 식물로 황폐해진 민둥산에서도 뿌리를 잘 내렸고 가지를 잘라 버려도 금세 자랄 만큼 강인한 생명력을 자랑하며 아무데서나 무럭무럭 자랐다. 2~3년만 지나면 땔감으로 베어 쓸 수 있고 또 달콤한 꽃향기와 꿀을 선물했다.

요즘에야 가스나 전기로 요리와 난방를 하지만 땔감이 귀하던 시절에는 아까시나무의 화력이 좋아 농가에서 요긴하게 쓰였다. 이런 까닭에 한때 우리나라에 심은 전체나무의 10%를 차지할 정도였으니 여름이 오기 전에 야산이나 하천 제방, 마을 부근의 언덕에서 어린이 주먹보다 더 큼지막한 우윳빛 꽃송이에 달콤한 향기로 벌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유혹하는 바람에 친근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허기가 들 때 지천에 있는 꽃을 한 움큼 씹으면 달짝지근한 맛과 향이 입안에 가득 채워졌다.

아까시나무는 꽃가루는 적지만 꿀이 풍부해 훌륭한 밀원(蜜源)식물이다. 꽃에서 나오는 꿀은 향기롭고 부드러우며 엷은 색을 띠고 있지만 투명에 가깝고 과당이 훨씬 풍부해 인기가 높다.

아까시꽃이 실바람에 일렁이면 양봉업자들은 꽃이 피는 시기에 맞춰 남쪽에서부터 휴전선 부근 북쪽까지 벌통을 싣고 이동하며 꿀을 모은다. 국내 꿀 생산량의 70% 가량을 아까시나무에 의존한다.

양봉특구인 칠곡군에는 예전부터 곳곳에 아까시나무가 울창했다. 신동재 부근에는 양봉농가들이 가져다 놓은 벌통 수백 개가 즐비했다. 올해 양봉농가들은 벌들이 급격하게 줄어들어 고민이다. 겨울을 나고 보니 벌들이 집단으로 사라지는 현상이 전국적으로 발생하고 있지만 원인을 아직 규명하지 못 해 더욱더 애가 탄다고 한다.

꽃아까시나무

◆눈엣가시 아까시나무

양봉하는 사람을 제외하면 우리나라 어른들은 아까시나무를 크게 반기지 않는다.

콩과식물인 아까시나무 뿌리에는 공기 중의 질소를 이용할 수 있는 뿌리혹박테리아가 공생한다. 그래서 다른 나무가 잘 자라지 못하는 메마른 민둥산에도 살아갈 수 있다. 헐벗은 산이 많던 시절에 산림녹화를 위해 선택된 나무가 아까시나무일 뿐이다. 그때가 공교롭게도 일제강점기라서 '못된 의도로 심었다'는 억측을 낳았다. 토종나무를 죽인다는 이야기도 잘못 알려진 속설이다. 대체로 20~30년 왕성하게 자라면 급격하게 성장이 둔화하고 주변 나무에 자리를 내준다.

아까시나무를 싫어하는 또 다른 이유는 조상의 산소를 침범하는 행실 탓이다. 조상 숭배사상이 강한 어른들의 정서로 볼 때 용납 못 할 일이다. 청명·한식이나 벌초 때 아까시나무를 제거하려고 고독성 제초제를 치는 경우가 많다. 햇빛을 좋아해서 널찍한 공간이 성장에 안성맞춤이다 보니 확 트인 산소 주변으로 자꾸 영역을 확장하게 된다. 산소를 돌보는 후손들은 묘를 지키기 위해 나무를 자꾸 베 내고, 나무는 생존을 위해 악착같이 많은 뿌리를 사방으로 뻗어 가히 '전쟁'을 치른다.

아까시나무는 높이가 25m 정도까지 자란다. 가는 줄기에는 쌍으로 자라는 가시가 있다. 손으로 누르면 잘 떨어지는데 이는 턱잎(껍질)이 변해서 가시가 된 것이다. 잎은 회화나무 잎과 닮은 홀수깃꼴겹잎이다. 어린 시절 가위바위보로 이긴 사람이 작은 잎을 하나씩 따서 모든 잎을 먼저 떼어내면 이기는 놀이를 누구나 한 번쯤 즐겼던 적이 있을 것이다.

◆100년 노거수 지방리 아까시나무

아까시나무의 수명은 길어야 70~80년이다. 자라는 속도가 빠른 나무는 뿌리가 깊게 내리지 않아 수령이 50년 정도 되면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해 강한 비바람에 쉽게 쓰러진다. 오래된 나무를 흔하게 볼 수 없는 까닭이다.

경북 상주시 공성면 옥산초등학교 교정에 있는 수령 100년이 넘은 아까시나무.

경북에는 한 세기를 거뜬하게 버틴 아까시나무가 지금도 싱싱하게 살고 있다. 성주군 월항면 지방리 한적한 도로 옆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는 아까시나무가 자란다. 표석에 보호수로 지정된 1991년의 수령이 90년으로 적혀 있는 걸로 미뤄볼 때 지금 나이는 120년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높이는 16m, 사람 가슴높이 둘레가 3.6m 정도, 둥치 둘레가 6m에 이르는 거목이다.

또 다른 나무는 상주시 공성면 평천리 옥산초등학교 교정에 있는 아까시나무로 높이 20m에 달하며 향기 진한 꽃을 피운다. 보호수로 지정된 2005년에 나무의 수령이 100년이니 한 세기를 넘게 생명을 지탱해 온 노거수다. 2015년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이 서울 광릉숲에서 일제강점기에 심은 130여 그루의 거대한 아까시나무 군락을 찾아내기 전까지 경북의 두 나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아까시나무로 인정받았다.

♪고향 땅이 여기서 얼마나 되나

푸른 하늘 끝닿은 저기가 거긴가

아카시아 흰 꽃이 바람에 날리니

고향에도 지금쯤 뻐꾹새 울겠네

「과수원길」보다 더 오래된 동요 「고향땅」에도 '아카시아 흰 꽃이' 바람에 날리는 고향 풍경이 나온다. 그 당시에는 '아카시아 흰 꽃'이 바람에 날렸지만 지금은 아까시나무 흰 꽃이 바람에 날린다.

꽃아까시나무

요즘 붉은 꽃이 피는 원예종 꽃아까시나무가 인기다. '아까시나무' 가문이라 번식력이 뛰어나고 몇 년 후엔 나무가 여기저기에서 마구 자랄 수 있기 때문에 나중에 나무를 제거하는 수고를 하지 않으려면 심을 장소를 신중히 선택해야 한다. 꽃이 희든 붉든 아까시나무의 성질은 한결같다.

결이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이름을 제대로 불러줘야 하는 이유는 공자의 정명(正名)사상에서 찾을 수 있다. "정치를 하신다면 무엇을 맨 먼저 하시겠습니까?"라는 제자 자로(子路)의 물음에 공자는 "반드시 이름을 바로 하겠노라!(必也正名乎·필야정명호)"고 말했다. 『논어』의 「자로」 편에 정명의 당위성을 논리정연하게 설명했다.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이치에 맞지 않고, 말이 이치에 맞지 않으면 일을 성취할 수 없고, 일을 성취할 수 없으면 예악이 흥성하지 못하며, 예악이 흥성하지 못하면 형벌이 실정과 어긋나게 되며, 형벌이 실정과 어긋나면 백성들이 손발을 둘 곳이 없게 된다. 그러므로 군자의 말에는 구차함이 없어야 한다.(名不正則言不順, 言不順則事不成, 事不成則禮樂不興, 禮樂不興則刑罰不中, 刑罰不中則民無所措手足. 君子於其言無所苟而已矣)"

아까시나무 이름을 제대로 불러야 하는 이유를 김춘수의 시 「꽃」에서도 찾을 수 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이종민 선임기자 chungham@i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