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최초의 질문

입력 2022-04-28 10:17:24 수정 2022-04-30 10:09:49

올해 1월 미국 플로리다주 케이프커내버럴의 케네디 우주센터 39A 발사대에서 우주 인터넷망 구축용 스타링크 위성 49기를 탑재한 미 우주기업 스페이스X의 팰컨9 로켓이 포물선의 궤적을 그리며 우주로 날아오르고 있다. 플로리다 투데이 제공
올해 1월 미국 플로리다주 케이프커내버럴의 케네디 우주센터 39A 발사대에서 우주 인터넷망 구축용 스타링크 위성 49기를 탑재한 미 우주기업 스페이스X의 팰컨9 로켓이 포물선의 궤적을 그리며 우주로 날아오르고 있다. 플로리다 투데이 제공

지난해 7월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한국의 지위를 선진국으로 격상시켰다. 세계 최초로 개도국 출신으로 선진국의 반열에 오른 국가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진정한 선진국인가'라는 물음에는 선뜻 대답하기 어렵다.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돌파했다는 달콤한 경제지표에서 잠시 눈을 돌려보자. 기술 개발의 차원에서 본다면 우리나라를 선진국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모방과 추격을 생존 수단으로 삼고, 늘 누군가가 앞서간 길만 걸어온 탓이다. 한국 산업계는 항상 선진국의 로드맵에 맞춰 더 빨리, 더 나은 수준의 기술을 만드는 데 골몰해왔다. 로드맵 밖의 가능성은 자기 검열로 일찌감치 지워지고 말았다.

'축적의 시간'과 '축적의 길'로 한국의 기술 혁신 생태계에 새로운 키워드를 던진 이정동 서울대 교수가 신작 '최초의 질문'으로 돌아왔다. 이 책은 한국이 진정한 기술 선진국으로 나아갈 수 있는 혁신의 시발점을 모색한다.

저자는 "진정한 혁신은 도전적 질문에서 시작된다"며 "선진국이 출제한 문제를 잘 해결하는 문제 해결자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질문을 제시할 수 있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누군가가 제시하는 로드맵을 벗어나는 목표를 제시하거나 시장을 새롭게 정의해야 한다는 얘기다.

1969년 인텔 창업자 가운데 한 사람인 로버트 노이스는 일본에 출장을 갔다가 전자계산기를 생산하는 일본 중견기업 비지컴의 고지마 요시오 대표에게서 "저장, 논리 연산, 제어를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칩을 만들 수 있냐"는 질문을 받았다. '놀라운 첫 질문'이었다.

고지마는 전자계산기 생산원가 절감을 위해 주기판 칩 수를 줄일 방법이 없겠느냐는 취지로 물은 것이었지만, 노이스 입장에선 중앙처리장치(CPU)의 개념적 기초가 될 수 있는 도전적인 질문이었던 것. 인텔과 노이스는 이후 수없는 시행착오 끝에 2년 뒤인 1971년 최초의 범용 CPU를 만들었고, 이후 한 단계씩 CPU의 성능과 기능을 개선하면서 '인텔 제국의 시대'를 열 수 있었다.

2002년 전기차 플랫폼 회사 테슬라를 창업한 일론 머스크에게도 도전적인 질문 하나가 싹 텄다. "1단 로켓을 다시 쓰면 어떨까" 상업용 위성발사 비용의 대부분을 잡아먹는 1단 로켓을 재사용할 수 있다면 우주로 날아오르는 비용을 10분의 1로 줄일 수 있겠지만, 기술적 한계 탓에 아무도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았던 질문이다.

머스크는 이 최초의 질문 하나를 품고 스페이스X를 세웠다. 과학자와 기술자들을 끌어모으고 재사용 1단 로켓 개발에 나섰다. 2008년 9월 네 번째 시도 끝에 로켓 발사에 성공했고, 2015년에는 1단 로켓이 성공적으로 착륙하면서 로켓 재사용 시대를 열었다. 로켓 재사용이라는 기술혁신을 바탕으로 스페이스X는 오늘날 상업용 로켓 위탁발사 시장의 60%를 점유하는 회사로 우뚝 섰다.

최초의 질문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현실에 안주하는 집단은 파국을 맞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노키아의 몰락이다. 세계 휴대전화 시장 점유율 1위를 지키던 노키아는 과거 비용·위험부담이 크다는 이유로 스마트폰에 대한 최초의 질문을 저지했고, 결국 스마트폰이 등장한 뒤 쇠퇴의 길을 걸었다.

저자는 기술혁신이 ▷도전적인 '최초의 질문' 제기 ▷이에 대한 답을 찾아 작은 것에서부터 버전을 빠르게 높이는 '스몰베팅' ▷최적의 답을 위해 외부의 지식과 시각을 도입하는 '오픈 네트워킹' ▷시행착오의 경험을 쌓아 가는 '축적 시스템' ▷매 단계의 '철저한 실행'의 단계를 거쳐 완성된다고 말한다.

최초의 질문은 어느 누구에게도 답을 구할 수 없다. 앞선 이의 발자국이 보이지 않는 설원과도 같다. 과거 선진국의 발자국이 뚜렷이 찍혀 있는 눈밭을 걷던 한국은 어느덧 그 발자국이 안 보이는 지점에 도달했다. 이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아무도 하지 않은 최초의 질문을 던지는 수밖에 없다. 스스로 지도를 만들고 방향을 수정하면서 길을 만들어 가야 할 때다.

다만 혁신적인 개념과 기술을 만드는 것에는 수많은 시행착오가 따르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축적의 시간'이 필요하다. 또한 시행착오의 과정을 뒷받침해줄 참을성 있는 돈, '인내 자본'이 확보되지 않으면 개발의 결실을 볼 수 없다. 자본의 축적과 재투자를 진작하는 기업 제도, 혁신 활동을 뒷받침하는 금융시장, 시장 경쟁 제도를 만들 정부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