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나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은 적정함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을 한다. 세상사 뭐든 과유불급의 이치가 통한다. 몸에 좋은 약도 지나치면 독이 되고 가물 때 비도 꼭 필요한 만큼 와야 한다. 규제야말로 그렇다. 규제나 규범은 서로 다른 사람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공동사회의 질서로서, 또 안전판으로서 필수선(必須善)일지 모른다.
그런데 정부 규제가 넘치거나 과하면 문제가 생긴다. 과해서 막히면 경제와 사회에 경색이 온다. 최근 한국경영자총협회에서 발표한 자료를 보니 지난해 협회에서 정부에 건의한 규제개혁 과제 중 수용률이 10%에도 미치지 못했다고 한다. 코로나19 여파로 저하된 기업 활력 강화를 위해 현장에서 발굴한 63건의 규제개혁 과제를 발굴해 국무조정실 등 정부에 건의했는데 수용된 과제가 5건뿐이었다는 것이다.
정부도 각 부처, 부서에서 검토해 보니 수용하기 어려운 점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은연중에 '원칙적 금지, 예외적 허용'이라는 잣대로 들이댄 건 아닌지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겹규제에 답답해하는 IT 기업들이 골든타임을 놓친다며 해외에서 살길을 찾거나 제발 '규제샌드박스'에 넣어 달라고 애원한다는 언론 보도도 있었다. 해외로 나간 우리 기업들의 U턴을 돕기 위한 규제 혁파도 시급한 과제다. 최근 미국 헤리티지재단이 발표한 '2022 경제자유지수'에서 한국은 177개국 가운데 19위를 차지해 지난해보다 몇 단계 상승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투자 자유도와 금융시장의 자유도에서 상대적으로 취약하다고 토를 달았다고 하니 등수가 올랐다고 자족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글로벌 무역 대국 10위 안에 드는 대한민국이 왜 경제적 자유도에서 싱가포르처럼 1위를 할 수 없는 것인가?
정부는 곧 규제 그 자체다. 정부가 시장에서 심판자 역할을 해야 하니 일을 많이 할수록 규제는 늘어나기 마련이다. 행정사무를 줄이자고 호령을 하지만 새로운 영역과 일은 늘어났고, 기존의 규제를 없애는 속도 이상으로 새로운 규제가 만들어진다. 필자가 공직에 있을 때 경험을 되돌아보면 그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이 이런저런 이유로 하나씩 만들어지는 규제를 자기 손으로 풀기는 쉽지 않다. 계속 외부와 소통하며 되는 쪽으로 논리를 연구하지 않으면 획기적인 규제 혁파가 일어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보이는 규제는 그나마 다행이다. 보이지 않는 규제도 부지기수다. 삼불관(三不管)이라고 아무도 관할하지 않거나 관여하지 않으려는 것도 보이지 않는 규제 중 하나다. 특히 지역 일선으로 갈수록 규제개혁과 투자 유치에 대해 소극적인 사례가 왕왕 발생한다. 이런 공무원들은 자기가 책임질 일은 절대로 제 손으로 하지 않으려 한다. 적극 행정을 하라지만 내일 일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누가 위험을 무릅쓰려 하겠는가? 그러니 특혜 시비와 민원 발생을 주장하거나 부서 간에 핑퐁을 해서 차일피일 회피하게 된다. 일부에서는 책상머리 규제로 탁월한(?) 규제 생산력을 보이는 곳도 있는 것 같다. 죽어나는 건 신생 기업이나 지역의 뿌리 기업들이다.
여기에는 반기업적 정서나 인식도 한몫 거든다. 우리나라 공무원의 반기업 정서가 높다는 연구 결과를 본 일이 있다. 기업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중국보다 5배, 일본보다 3배, 미국의 4배라고 하는 말도 있다.
정부가 출범할 때면 '규제개혁을 하겠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겠다'는 약속이 쏟아진다. 그런데 말기에 들어서면 그동안 쌓인 겹규제 좀 풀어 달라는 아우성으로 난리다. 이런 패턴이 거의 어긋난 적 없는 도돌이표 현상을 지금도 보고 있다.
최근 윤석열 정부 인수위에서 미래 먹거리 육성을 위해 법·정책에서 금지한 행위가 아니면 모두 허용하는 '네거티브 규제' 방식을 도입하겠다는 의지를 밝혀 기대를 건다. 이번만큼은 도돌이표 없는 규제 혁파의 기제와 인식 변화가 자리 잡기를 기대한다. 현행 규제자유특구 제도는 신청 전후의 절차가 너무 복잡하고 실적도 그리 많지 않고 규제샌드박스는 그 자체로 진입 장벽이 되고 있는 건 아닌지 살펴보아야 한다. 답답한 사람들에게 규제가 불필요한 이유를 입증해 오라는 식으로 하면 규제 혁파는 절대로 해결될 수 없다. 경북도도 규제 혁신 마스터플랜을 만들고 규제 혁파를 위해 규제신고센터와 규제닥터를 운영한다고 했는데 실효성 있게 하려면 지속적인 자기 점검과 규제 혁파만을 성과로 삼는 공무원들과 조직의 조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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