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경 영남신학대 기독교 영성학 교수
내가 사는 경산의 봄은 아름답다. 들과 길가엔 온갖 꽃들이 피고 진다. 먼 산엔 겨울옷 갈아입는 나무들의 모습이 장관이다. 많은 이가 봄이 어서 지나갈까 마음 졸이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우리 마음에는 아름다움을 아름답게 볼 수 있는 눈이 있어 행복하다.
그런데 연일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뉴스, 신문 지면에 박혀 있는 세상사는 세기말 같은 느낌이다. 러시아가 자행한 우크라이나 전쟁과 학살, 풍요의 극치를 달리는 한국 사회의 온갖 비극적 사건, 정치권의 오만무도(傲慢無道)함. 한 하늘 아래, 다른 두 세계가 존재하는 것만 같다. 세계를 바라보는 눈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우리가 제대로 된 길을 걸어가고 있는지 의문이다.
연암 박지원 선생의 글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스무 해 넘게 장님으로 산 한 청년이 있었다. 얼마나 답답했겠는가. 그런 그가 어느 날 길을 가다 갑자기 눈을 뜨게 됐다. 기쁨에 들뜬 채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렇지만 자기 집을 찾을 수 없었다. 골목엔 갈림길도 많고, 대문도 똑같아 도무지 자기 집을 찾을 수가 없어 그 청년은 그만 그 자리에 서서 울고 말았다. 그 때 지나가던 현자의 조언에 따라 도로 눈을 감고, 지팡이를 더듬자, 그제서야 자기 집을 찾을 수 있었다. 눈을 떴다고 해서 모든 것이 보이는 것도, 찾던 길을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어떨 때는 오히려 육신의 눈을 감을 때, 마음의 눈이 열려 보다 명징하게 보일 때가 있다. 마음의 빛이 사라지고, 마음의 눈이 굳게 닫히면 망상을 좇다 인생을 망칠 수 있다.
우리가 잘 아는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은 1980년대 대표적인 소설이다. 에코의 이름에 걸맞게 우리말 번역도 여러 권이 있을 정도다. 이 책은 이탈리아 북부 멜크(현 오스트리아) 수도원에서 일어난 연쇄 살인을 추적하면서 '진리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과 답을 찾아가는 작품이다. 이 책에서 늙은 수도사 호르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2권 희극 편을 수도원 장서관에 숨겨놓고, 그 책에 접근하는 수도사들을 한 명씩 살해한다.
그 늙은 수도사 호르헤는 왜 이 책에 접근하는 젊은 수도사들을 차례로 죽일 수밖에 없었을까. 그는 인간의 '웃음이 신의 권능을 부정한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의 책에는 '웃음이 우리의 삶을 바람직하게 한다'고 돼 있었다. 그는 자신이 믿는 그 진리가 한 부분이라도 훼손돼서는 안되기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책에 접근하는 수도사들을 모조리 살해한 것이다. 이 책은 진리에 대한 과신과 맹신이 얼마나 위험한지, 마음에 무엇을 품으며, 무엇을 믿느냐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준다. 사람은 그 마음에 품은 것이 밖으로 나오게 돼 있고, 믿음이 행동으로 옮겨지게 돼 있다.
우리는 모두 각자 마음의 눈에 따라 세상을 바라본다. 그래서 저기에 무엇이 놓여 있는가 보다 그것을 어떻게 보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모두가 봄을 노래하지만, 우리가 그저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인다고, 자연에 순응한다고 기쁨이 찾아오지는 않는다. 자연에 따른다고 무조건 옳은 것도 아니고, 그것이 아름다움도 아니다. 자연의 아름다움은 우리 안에 있는 자연의 목소리를 듣는 데 불과하다.
우리가 갈구하는 좋음도 기쁨도 결국엔 우리 자신의 깊은 내면에서 나온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좋음은 인간의 창조적 자기 초월을 통해 일어나는 내면의 현상일 뿐이다. 우리 안에서 우리를 초월하는 하나님의 형상이 이 세상을 '좋음'과 '아름다움'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내면의 빛이신 그분에게 눈을 떠야 하는 것이다.
"선생님, 내가 다시 볼 수 있게 하여 주십시오."(마가복음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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