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큐레이터다] <10·끝> 박민영 대구미술관 수집연구팀장

입력 2022-04-19 14:27:02 수정 2022-04-19 17:53:35

“지난해 ‘때와 땅’ 전시 큰 의미
대구 근대미술 저력 보여주고자해
기획자의 시각, 전시 만드는 데 가장 중요”

박민영 대구미술관 수집연구팀장이 전시 포스터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연정 기자
박민영 대구미술관 수집연구팀장이 전시 포스터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연정 기자

지난해 대구미술관이 개관 10주년을 맞아 특별 기획한 전시 '때와 땅'은 3개월여 간 2만1천여 명의 관람객이 찾을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이 전시는 대구 근대미술의 우수성을 객관적 자료를 통해 입증하고, 그 위상을 다시 한번 정립한 첫 전시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당대 작가들의 작품 뿐만 아니라 활동 단체, 사제관계와 교육에 대한 실체적 자료를 확보해 선보이며 대구 근대미술의 역사를 광범위하게 다뤘다.

당시 전시 기획을 주도한 이는 박민영 큐레이터(수집연구팀장). 18년간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근무하며 전시하고 축적해온 대구근대미술 관련 정보를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최근 대구미술관에서 만난 그는 "역사에 대한 가치는 끊임없이 누군가가 얘기를 만들고 알려야 의미가 부여된다. 그러한 작업이 큐레이터가 하는 일이라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때와 땅' 전시가 개인적, 지역적으로도 많은 의미를 지녔을 듯하다.

- 이전에는 그 정도로 대구의 근대미술을 정리한 전시가 없었다. 그간 연구해왔던 자료들을 정리하는 차원이었고, 새롭게 발견한 사실들을 더해 시민들에게 제대로 보여주겠다는 마음에서 기획했다.

당시 자료를 수집하는 데 많은 공을 들였다. 새롭게 발굴한 자료들을 살펴보니, 대구의 근대미술이 공동체 의식을 갖고있다는 특징을 발견할 수 있었다.

대구에 서양화를 도입한 이상정이 1923년 설립한 '벽동사' 취지문은 그간 얘기로만 전해지던 이상정의 활동 정신을 가늠케하는 자료였다. 그는 근대미술을 연 인물이기도 하지만, 대구 근대미술이 뭘 지향했는가를 대변해주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그림이 개인적인 작업임에도,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고 지역사회의 인재를 키우는 분위기를 형성했다. 이는 1950년대까지 이어졌는데, 전쟁을 피해 대구로 온 예술가들이 시민들을 위해 예술 강좌를 열었다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다. 당시 지식인층, 문인들이 중심이 돼 어려운 시절임에도 문화적 정서를 나누는 데 소홀하지 않았다.

결국 대구 문화의 저력에는 이러한 인본주의적 생각이 바탕에 깔려있고, 오래전부터 이어져왔음을 전시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 어려운 시기를 거치며 화가들이 무엇을 지향했는지, 무엇을 꿈꿨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대구 근대미술에 대해 관심 가진 계기와, 관련 전시를 기획하며 느낀 것은.

- 대구 미술을 제대로 볼 필요성을 느끼고, 하나씩 다뤄보자는 생각으로 2008년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대구미술 다시보기' 시리즈 전시를 추진했다. 당시 예산이 부족했지만 할 건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당시 1920년대 결성된 교남시서화연구회와 영과회, 1930년대 향토회, 1950~60년대 대구의 사진논쟁 등 연도별로 조금씩, 연구과제라 생각하고 해나갔다.

기억에 남는 일도 있다. 대구 대표 근대화가인 박명조 작가의 작품을 빌리러 아들집에 방문한 적이 있다. 이런저런 스크랩들을 꺼내 보여주는데, 가치 있는 오래된 자료들이 쏟아져나왔다. 1923년 미술전람회 리플렛과 당시 진행한 프로그램 등의 기록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당시 열린 전시에 참여한 작가와 팔린 작품, 일본 작가들과의 교류 등에 대한 기록도 발견했다. 모두 역사적 현장을 밝히는 사료들이었다. 그간 구술로만 떠내려오던 얘기들을 객관적인 자료로 확인하고, 구체화할 수 있게된 셈이다. '대구미술 다시보기' 전시 이후부터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진 것 같다.

한국의 근대미술의 평가절하돼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한다. 일본 유학이 꼬리표가 되어 논란의 주인공이 되기도하고, 시기적으로 어려웠던 때라 여러모로 의식해야할 것들이 많은 탓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역사적 논란에 가려져 제대로 된 분석을 놓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당시에는 대부분 일본으로 유학 가 서양의 화풍을 배우고 유입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한 시대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볼 필요가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전시는.

- 대구문화예술회관 큐레이터로 일하던 2004년, 1970년대 대구현대미술제를 재조명하는 전시를 열었다. 일을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은 때였는데, 막상 전시를 추진하려고보니 지역 미술계 내부에 호불호가 갈렸다. 아무래도 대구현대미술제 당시 기성세력과는 다른 실험적, 혁신적 활동이 많았기 때문인 듯하다. 대구현대미술제를 왜 다시 조명하느냐는 얘기부터 역사성과 그에 대한 가치를 부여하는 데 대해 대놓고 반감을 갖는 분들도 있었다.

그래서 상당히 고민스러웠고, 전시를 진행하는 데 두려움도 있었다. 당시 문예회관 관장님이 하고싶은대로 해보라고 힘을 실어주셨다. 지역 원로 작가 등을 직접 만나 인터뷰하고 얘기를 엮었다. 70년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연대별로 모아 정리하고 전시했다. 퍼포먼스 등의 작업도 했다.

사실 그 전시를 시작할 땐 그만한 가치가 있냐는 의문에서 시작했다. 확신 없이 시작한 셈인데, 전시를 준비하면서 확신이 생겼다. 그래서 객관적 자료들을 모아 사실을 증명해보여야겠다는 목표도 생긴 것 같다. 그 때 기획자의 입장과 시각이 전시를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소장품 기획전 '나를 만나는 계절'을 전시 중이다. 소장품 기획전 기획, 연출 시 어떤 점을 염두에 두는지.

- 지금 전시는 김정윤 큐레이터가 주도했다. 소장품을 수집할 때 사실 미래의 전시를 염두에 두고 수집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지역적 정체성을 품고 있는지, 동시대 미술담론을 담고 있는지 등 여러 포인트에 요점을 두고 수집한다.

모은 소장품들을 전시하기 위해 엮는건 또다른 문제다. 새로운 소장품들만 모아서 소개할 수도, 시기별로 모아서 전시할 수도 있다.

소장품 기획전을 자주 한 적은 없다. 이번 전시는 그간 대중에게 많이 보여주지 않은 작품 위주로, 각 테마에 맞춰 구성해본 것이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개개인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계기가 늘면서 인간에 대한 고찰을 담았다.

다소 막연한 주제였지만, 탄생부터 사회적 관계로 나아가는 인간의 삶을 사계절에 비유했다. 작품에 대해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새로운 해석을 불어넣어, 작품이 담은 깊은 얘기들을 선보이고 싶다. 물론 소스가 풍부해야 좋은 전시가 나온다. 그래서 소장품 수집이 중요하다.

▶대구미술관의 소장품 관련 수준을 객관적으로 평가한다면.

- 대구미술관은 대중적 인지도가 있는 전시를 많이 열어왔고, 소장품 수집도 그때그때 잘해온 것 같다. 가치 있고, 꽤 시세 있는 작품들도 있다. 특히 해외 소장품은 시의적절하게 잘 수집한 것 같다.

반면 소장품에 있어 지역성이 약하다는 얘기도 있다. 그래서 지역적 정체성을 잡아나가는 수집을 통해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대구미술관을 찾는 관람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 전시를 왜 만들었을까에 대해 생각해봤으면 한다. 기획자의 시각에서 그들이 무엇을 바라보고있는지 파악하고 전시를 본다면 좋을 것 같다. 또한 그 시각을 벗어나 자신만의 시각을 갖는다면 생각이 더 풍부해질 수 있겠다.

▶앞으로의 계획은.

- 지나고보니 이러한 작업들이 모두 대구 문화를 조금씩 채워가는 일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대구 미술 연구가 덜 이뤄졌고, 과거는 물론 지금의 작가에 대한 연구가 필요한 때다.

특히 연구 모임 등 다양한 세대가 함께하는 장이 만들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새로운 시각을 가진 연구자가 유입되고 선행 연구를 자연스럽게 이어받을 수 있는 장이랄까. 누구든 자유롭게 연구하는 환경이 됐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