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나는 내 눈으로 한국의 전선을 보았다. 나는 직접 관찰한 후에야 비로소 전투를 준비한다.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하여 패배로부터 승리로 나아가는 구심점을 만들 것이다."
1950년 6월 29일, 한강방어선을 순찰하던 극동군사령관 더글라스 맥아더는 북한군의 보급로와 후방을 차단할 기습공격 방안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석 달 후 9월 15일 새벽 2시 30분, 어둠이 채 걷히기도 전에 세기의 도박사 맥아더는 수많은 반대를 무릅쓰고 19척의 전함을 선두로 하여 인천항으로 들어섰다.
치열한 공중 폭격으로 불꽃 섬이 되어버린 월미도를 바라보면서 맥아더는 지휘함 마운트매킨리 앞에서 전쟁을 독려하였다. 전황의 변환점을 가져올 크로마이트작전(인천상륙작전)을 은밀히 기습적으로 수행하고 있었다. 지난 6월 맥없이 밀리고만 있던 현실을 응시하며 70세의 노장 맥아더 원수는 스스로 한국군과 국민에게 했던 약속을 실천하고 있었던 것이다.
맥아더는 2차대전 중 필리핀 전투에서도 자신의 약속을 끝까지 지켜냈다. 1941년 7월. 61세의 맥아더는 극동군사령관으로 임명된다. 그해 12월 7일, 일본군은 진주만을 선제공격하여 태평양함대를 침몰시키고 이어 필리핀의 제공권마저 장악해 버린다. 미국 통치하에 있던 필리핀을 전략적으로 태평양전선의 정점으로 판단한 일본군이 치밀한 작전계획을 세워 실행한 결과다.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두고 일본 제14군은 마닐라 북쪽 링기옌 만에 상륙한다. 정월 초에는 대접전이 일어날 것으로 예측한 맥아더는 필리핀 남부 바탄반도와 코레히도르섬으로 일단 후퇴하여 전열을 정비했다. 그러나 일본군의 극렬한 포화가 바탄반도에 집중되자 방어선이 위태로워졌다 .
그러자 2월, 미국 본토에서는 맥아더를 남태평양지역사령관으로 전보하고 호주로 이동할 것을 명령하지만 맥아더는 단호하게 거절한다.
"나는 주둔군과 함께 필리핀의 역경을 헤쳐 나갈 것이다."
역부족이었다. 맥아더는 3월 11일, 끝내 작은 어뢰보트에 몸을 싣고 호주로 탈출해야 했다. 그리고 2개월 후, 바탄방어선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만다. 필리핀에 주둔한 모든 미군과 필리핀군이 일본군에 항복하였고, 7만 6천여 명이 일본군의 포로가 되어 형용하기 어려우리만치 잔혹하게 다루어졌다.
일본군은 비록 전투에서 승리했지만 보급선이 한계에 이른 상황이라 실탄이 소모되지 않고, 운송 수단과 식량 배급이 요구되지 않는 포로 관리방안이 절실했다. 그 해법으로 장거리 행군을 강행키로 한다.
포로들은 바탄반도의 남쪽에서 북쪽까지 약 88㎞의 먼 거리를 행군해야만 했다. 거기서 열차를 타고 일부 구간을 이동한 뒤 카파스에 있는 오도넬 포로수용소까지 다시 40리 길을 행군해 갔다. 이른바 죽음의 바탄행군(BataanDeathMarch)이다.
항복 직전까지 치열하게 항전했던 포로들은 이미 체력이 한계에 이르렀기에 무리한 행군으로 갈증과 굶주림에 지쳐 죽어가는 인원이 헤아릴 수 없었고 연신 생기는 이탈자와 도망자는 사정없이 살해되었다. 일만여 명의 포로가 그렇게 숨져가는 지옥 같은 현실을 맥아더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듣고만 있어야 했다. 피가 거꾸로 솟는 분노의 감정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나는 비록 지금 여기에 와있지만 반드시 필리핀으로 돌아가리라."
필리핀 국민을 향한 약속의 연설을 끝낸 맥아더는 400만 갑의 성냥갑에 자신의 연설 문귀, "나는 돌아갈 것이다"를 새기고 필리핀 하늘 아래로 투하시켰다.
사실 맥아더에게 필리핀은 군총독을 지낸 아버지, 아더 맥아더도 인연이 있거니와 맥아더 자신이 초임 시절을 보낸 나라다. 거기다가 1935년 참모총장을 마치고 퇴역한 맥아더는 필리핀 군대를 창설했던 장본인이기도 하다. 맥아더에게 필리핀은 전략적인 측면 뿐만아니라 개인적인 감정의 거리가 남달랐기에 반드시 지켜내야 할 땅이었다.
1944년 10월, 맥아더는 기나긴 반격작전을 지휘하면서 마침내 태평양 전선의 일본 보급선을 단절하고 끝내 필리핀 국민과의 약속을 지켜낸다. 필리핀 중부의 섬, 레이테 만에 상륙한 맥아더는
"필리핀 국민 여러분! 나는 돌아왔습니다."라고 장엄하게 외쳤다.
맥아더는 필리핀 국민은 물론 우리나라 국민에 이르기까지 공개한 약속을 타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반드시 지키려 했다. 나는 맥아더의 장재(將材)를 논하려거나 그가 맞닥뜨린 전장의 성공과 실패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지도자의 위대함은 그 집단이나 구성원과의 약속을 반드시 지켜내는 데서 비롯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약속을 지키러왔다'는 전쟁 지휘관의 그 한마디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안위요 믿음이며 존경의 대상이 되게 한다. 약속은 신망을 낳는다. 크든 작든 약속이란 지켜지는데 그 본질이 있기 때문이다. 끈으로 맺어있듯이 말이 행동으로 이어지는 데에 약속의 참뜻이 있는 건 더 말할 나위도 없다. 특히 지도자의 약속은 실(實)이고 선(善)이다.
김정식/육군삼사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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