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주의·이데올로기로 사회가 너무 양분…소속감에 지나치게 얽매인 탓"
8번째 남종화 전시회 준비…차근차근 글씨와 그림, 십군자 등 모으고 있어
차에는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의미…전통차 강의는 다도 아닌 고전 해석 중심
생애 마지막 전시회를 준비하는 한 스님이 있다. 삼이(三耳) 원학(70) 스님. 종교인 이전에 국내 남종화(南宗畵)의 대가이자, 글씨와 차(茶) 등에도 상당한 식견을 가진 예술가다. 지난해 '고희'(古稀·만 69세)에 맞춰 전시회를 열고 도록(圖錄)도 만들려고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세상 일이다. 그러나 급한 게 있으랴. 고희전은 놓쳤지만 시나브로 글씨와 그림, 십군자 등을 모으고 있는 원로 스님의 열정은 뜨거웠다. 경산시 와촌면 음양1리에 있는 삼화사(三華寺)에서 그를 만났다.
▶남종화(南宗畵)의 맥을 잇고 있는데, 남종화는 어떤 그림인가.
-동양 회화는 북종화(北宗畵)와 남종화로 나눌 수 있다. 북종화는 사실적 그림, 예로 실제 풍경을 그대로 그림으로 옮겨온 거다. 반면 남종화는 사의적(寫意的)이다. 경치의 사실을 묘사하기보다 의미를 옮겨온다.
남종화의 시조인 왕유는 "그림 속에 시가 있어야 하고, 시 속에 그림이 있어야 한다"고 설파했다. 그것이 남종화의 정신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추사 김정희 선생이 대표적인 남종화의 거목이다. 추사 선생이 제주도에서 유배 생활을 할 때 그를 존경하던 '이상직'이라는 역관이 항상 중국에 갔다 오면 지필묵을 사서 건넸다. 추사 선생이 그에 대한 보답으로 선물한 것이 '세한도'다. 세한도 내 소나무는 추사 선생이 자신이 어려울 때 도와준 것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한 것이다.
▶남종화를 시작한 계기가 있다면?
-14살 때부터 붓을 잡고 혼자서 글씨쓰는 게 재미있었다. 1971년 해인사 승가대학을 졸업할 때 노 스님이 진로를 묻길래 서예 공부를 계속 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노 스님은 당시 인연이 있던 청남 오재봉 선생에게 나를 추천했고, 이후 청남 선생 문하생으로 들어가 10년동안 열심히 공부했다.
청남 선생은 당시 의재 허백련 선생, 효당 최범술 선생과 서로 의형제를 맺고 있었던 사이였다. 청남 선생의 서가에 걸려 있는 의재 선생의 그림에 매료됐고 직접 그리고 싶다는 마음이 확 들었다. 이후 남종화에 천착했다. 남종화의 기본 습득 과정은 일반적으로 서예→사군자→십군자→화조를 배운 뒤 산수화를 배운다. 대구에서 의재 선생에게 십군자를 사사받은 목산 라지강 선생에게 십군자를 배웠고, 서울 낙원동에서 우계 선생을 만나 마지막 관문인 산수화를 배웠다. 당시 그림을 배울 때 정말 즐거웠다.

▶지금껏 개인전을 7차례나 열었다. 평소 개인전 준비는 어떻게 하나?
-그림은 기교만 있어서는 안 되고 깊이가 있어야 한다. 평소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지금도 젊었을 때처럼 공부한다. 개인적으로 끊임없이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리면서 나를 단련한다. 혼자 있어도 너무 바쁘다. 초창기 개인전을 할 때는 내가 최고라는 착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개인전을 열면 열수록 부끄러운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내가 지향하는 예술세계가 이 정도에 왔다고 깨닫는 것보다 이걸 통해서 더 보완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전통차 강의를 오랫동안 해오고 있는데, 강의의 핵심은 무엇인가?
-한재 이목 선생이 지은 현존 국내 최고(最故)의 차 서적인 '다부'(茶賦)에는 '차를 마신다는 것은 천지에 순수한 기운을 먹고/ 해와 달의 은은한 빛을 차 속에서 마신다'는 구절이 있다. 이것이 다부 정신으로, 인간과 자연이 만날 수 있는 매개는 차를 통해서 만날 때 가장 순수하다는 의미이다.
보통 다도(茶道)를 한다고 하면 예법을 가르친다는 것이다. 예법은 2, 3년 정도 배우면 어느 정도 익힐 수 있다. 하지만 차의 철학적 의미를 알려면 선조들의 차 정신을 알아야 한다. 우리 강의는 차에 대한 고전을 가르치고 있다. 다부 뿐 아니라 초의선사의 동다송(東茶頌) 등을 가르친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꾸준히 참여하는 수강생들이 많다. 그 중에는 목사도 있을 정도로 종교를 초월한다.
▶우리나라는 곳곳에 커피숍이 널려 있고 전세계에서 커피도 많이 마시기로 손가락 안에 든다. 이런 상황에서 전통차가 주는 의미가 있을까?
-차의 종류는 굉장히 많다. 우리나라에 생산되는 쑥차, 오미자차 등은 대표적인 토산차인데, 엄밀히 말해 모두 건강기능식품이다. 커피도 건강기능식품인 동시에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교류하는 하나의 매개이다. 다만 커피는 그 속에 철학적 깊이가 있지는 않다.
보이차라고 하면 녹차 등과 같은 개념으로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보이차는 중국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자연과 인간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에 대한 지혜의 철학이 담겨 있다. 차 정신의 기본 모델은 당나라 육우가 펴낸 '다경'에 잘 나와있다. 육우가 지은 '차 다(茶)'자는 풀 밑에 인간, 인간 밑에 나무가 있는 형태다. 인간이 자연을 닮아간다는 것이고, 결국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의미가 있다.
▶차 정신이 우리 사회에 주는 메시지가 있다면?
-요즘 우리 사회가 너무 양분화돼 있다. 이는 개개인들이 자신의 소속감에 지나치게 얽매여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정신은 백의의 정신인데, 노란색이 묻은 걸 보고 원래 노랗다라고 주장하는 경향이 강하다. 지역주의와 이데올로기로 너무 분열돼 있는데, 차 정신을 통해 조화롭게 사는 지혜를 배울 수 있다.
▶앞으로의 목표나 계획이 있다면 이야기해달라.
-좋은 그림이나 글씨를 최대한 많이 모아서 생애 마감되기 전에 전시회를 열고 도록도 만드는 것이 목표다. 전시할 그림이 70여 점은 돼야 한다고 생각해 열심히 그리고 모으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전에는 중국을 1년에 평균 4, 5차례 방문해 차와 관련된 여행을 했다. 운남성과 주변을 주로 많이 갔는데 2년 넘게 못 가서 답답하다. 코로나19가 빨리 숙져서 중국 차 여행을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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