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교체하고도 'TK 공직사회' 찬바람 계속될 우려

입력 2022-04-07 17:30:54 수정 2022-04-08 16:13:51

안철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이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통의동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공동기자회견장에서 정부조직개편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안철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이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통의동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공동기자회견장에서 정부조직개편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 초대 내각 하마평에서 차기 정권 최대 지지 기반인 대구경북(TK) 출신 인사는 변죽만 울릴 뿐 '내정' 소식이 들리는 예는 하나 뿐이다.

이 때문에 문재인 정부 5년간 "노골적인 TK 배제"라는 지적이 나왔을 정도로 찬바람을 맞은 지역 출신 고위 공직 사회가 또다시 '혹독한 시간'을 보내는 것 아니냐는 넋두리가 나온다.

각 부처 고위직이 '정치 바람'을 타는 것이 보통이지만, 현 정부 임기 내 'TK 패싱' 인사 형태가 고착화 돼 TK 출신의 일부 유능한 고위 인사들이 '탈(脫) 공직' 하며 끌어줄 선배도, 밀어줄 후배도 사라져가는데다 행정 각부에서 '새싹'을 발탁해줄 국무위원에도 지역 출신이 이름을 올리지 못하는 형국이 펼쳐질 조짐이어서다.

◆文정부 5년, 부처·공공기관에서 사라진 TK

"3월 기준 전체 장차관급 인사 127명 중 TK 출신은 13명(대구 5, 경북 8)으로 10.2%에 불과하며, 김 장관이 퇴임하면 9.4%로 10%도 안 되는 상황이다. 심지어 국무위원 중 TK 출신은 조명래 환경부 장관이 유일하다."

2019년 3월 14일. 윤재옥 당시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국회의원(대구 달서구을)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행정안전부 업무보고에서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부처 개각 인사를 질타하며 한 말이다.

이보다 앞선 2018년 10월 22일 추경호 의원(대구 달성군)은 "문재인 대통령은 대통령 후보 시절이었던 지난해 3월 26일 대구시의회에서 TK 비전을 발표하면서 '함께 가겠다'고 약속했지만 예산·인사 등 국정 운영 곳곳에서 'TK 홀대'가 불거지고 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는 말로 문 대통령의 인사권 행사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했다.

지역 간 통합과 화합을 강조하며 출범한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고부터 이때까지 단행한 221개 공공기관 기관장 인사에서 TK 배제, 특정지역 편중 현상이 심각하게 나타나서다.

당시 추 의원이 공공기관 337곳(공기업 35곳, 준정부기관 93곳, 기타 공공기관 209곳)으로부터 받은 기관장 현황 자료에 따르면 문 대통령이 임명한 공공기관장 221명 중 서울·경기 등 수도권 출신이 56명(25.3%)으로 가장 많았다.

광주호남 출신이 46명(20.8%), 대전충청 출신이 43명(19.5%)으로 그 뒤를 이었다. 세 권역 출신만 합해도 145명인데, 이는 전체 임명 기관장의 66%에 달했다.

TK는 28명(12.7%)으로 강원과 제주를 제외하면 가장 적었다. 심지어 이 중 한 자리는 경북대병원장이었다.

사실 문재인 정부는 시작부터 인사 원칙에 'TK 배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았다.

집권 1기 100일 동안 임명한 장차관 인사 114명 중 TK출신은 11명에 그쳤고(본지 2017년 8월 16일 자 1·5면 보도) 그해 경찰 인사에서도 치안정감 이상 7명 중 TK 출신은 전멸하고 국세청 1급 이상에서도 TK 출신은 자리가 없었다.

반면 초대 내각 장차관급 인사 114명 가운데 더불어민주당의 '텃밭'인 호남은 31명, 문 대통령의 정치적 기반인 부산·울산·경남(PK)은 28명이었다.

이러한 흐름이 5년 내내 이어진 탓에 노무현 정부 시절 고위 공직자였던 TK 출신 한 인사는 "후배 공직자들이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도 이렇게 인사에 찬바람이 불지는 않았다'고 한다"며 "언론 보도를 찾아보니 김대중 정권 시절이었던 2000년 1월 100대 요직에 호남 출신이 37%, TK·PK를 합한 영남 출신이 25%에 육박했다. 2004년 7월 노무현 정부 2기 개각 때도 영남 35%, 호남이 27%였다"고 말했다.

이어 "그저 관운으로 생각하기에는 너무 얄궂은 인사"라고 힐난했다.

◆尹 정권에서도 끝나지 않을 '겨울'

TK 출신 공직자들에게는 '혹독한 계절'이었던 문재인 정부도 그 끝을 향해 가고 있지만, 이들은 '추운 겨울'이 끝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푸념한다.

지난 5년 TK 출신 고위 관료가 사라져, 바뀐 정권에서도 숨통이 트일 거라고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현 정권에서 고위 공직에 있는 TK 출신 한 인사는 "문재인 정권에서 너무 많은 후배가 죽었다. 그동안 커온 후배가 있어야 바뀐 정권에서 끌어주고, 밀어주고 할텐데 공직사회에 그런 재원이 보이지 않는다"면서 아쉬움을 표했다.

실제로 지역 현안과 밀접한 주요 정부 부처에서 TK 출신 고위 관료가 공직을 떠나거나 본부를 비운 상황이다.

산업통상자원부만 해도 올 초 대구 출신 김정일 신통상질서전략실장(차관보급)이 퇴직하고 민간 기업 임원행을 택했다. 또 다른 대구 출신으로 산업혁신성장실장과 산업기술융합정책관, 주미대사관 공사참사관 등 주요 보직을 거친 장영진 기획조정실장도 올 들어 명예퇴직했다.

행정안전부에서는 포항 출신의 윤종진 안전정책실장이 지난해 말 본부를 떠나 전북혁신도시에 있는 지방자치인재개발원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문경 출신의 김학홍 행안부 민방위심의관도 올 초부터 대통령 소속 자치분권위원회 자치분권기획단장으로 파견돼 본부를 비웠다.

특히 과거 TK 출신이 종횡무진 했던 행안부 지방재정경제실은 김현기 전 지방자치분권실장을 끝으로 지역 출신 명맥이 끊긴 상황이다.

전통적으로 TK 출신이 강세를 보여온 기획재정부에서도 분위기가 바뀌었다. 나라 곳간 열쇠를 쥔 기재부 예산실에서는 부처 행정의 주축인 과장급에서도 지역 인물을 찾기 어려워졌다.

한 고위 공직자는 "처음에는 '의도적 TK 배제인지는 다가오는 인사를 보면 알지 않겠느냐'고 했고, 다음에는 '진짜 TK 인사를 배제한다면 고향을 탓하기보다 우리 스스로 지역 안배가 되게끔 실력을 길러야 한다'고 마음을 바꿨다. 그래도 되지 않으니 스러지는 것"이라며 "이 상황이면 향후 10년 후에는 어느 정권이 들어서도 장차관급에 오를 만한 지역 출신의 유능한 인물이 없을 수도 있다"고 했다.

◆TK에서 '윤석열호' 1기 승선자는 1명 뿐?

이 같은 상황에서 국무위원 등 윗자리에서라도 국정 운영 방향을 잡고 추진해 나가는데 지역의 목소리를 대변해줄 인사가 쉬이 눈에 띄지 않는다.

현재 조각(組閣)에 거론되는 인사는 30여 명이다. 이 중 TK 출신은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현택환 서울대 교수(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권익환 전 서울남부지검장(법무부 장관), 이종섭 전 합참차장(국방부 장관), 이만희 국민의힘 의원(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이관섭 한국무역협회 부회장(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고용노동부 장관 이상 거론) 등 7명이다.

이들 모두 해당 분야 업무 전문성, 정권 창출 기여도 등에서 발탁되기 충분한 인사이지만, 정가에서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기획조정분과 간사를 맡은 추 의원 만이 입각에 가장 근접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역 정치권에서는 윤 당선인이 지방선거를 앞두고 거대 야당 더불어민주당이 퍼부을 인사 검증 소나기는 피하고 보자는 심산으로 주요 부처 장관 후보자 지명 과정에서 역차별이 작동할 수 있다는 불안감도 있다.

지역 정치권 관계자는 "정치적 수 계산에 밀려 정권 교체 기여한 만큼의 몫을 제대로 찾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있는 게 사실"이라고 전했다.

TK 출신 공직자도 "국무총리 인선 때도 TK 출신이 거론도 안 됐는데 이러한 분위기가 장관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는 시각이 다수"라며 "고향에서 보수정당에 75%씩 지지해주면 뭐하느냐는 아쉬움이 크다. 보수정권이 들어서더라도 TK에 신경을 써줘야 공직 사회에도 훈풍이 불고, 정부와 지역의 가교가 될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