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라 크래스너스타인 지음/ 김희정 옮김/ 열린책들 펴냄
이 책의 내용은 두 가지의 큰 줄기로 나눌 수 있다. '샌드라 팽커스트'의 삶에 대한 이야기와 그가 창업한 'STC 특수 청소 서비스 전문 회사'가 하는 일에 관한 것이다.
샌드라 팽커스트. 그는 트라우마가 쌓이고 쌓인 거친 삶을 살다 갔다. 2021년 7월 그는 호주 멜버른에서 숨졌다. 샌드라는 어릴 적 한 부모에게 입양됐지만 '사랑받는 아이'와는 거리가 멀었다. 양부모는 아들을 낳은 뒤 샌드라에게 "너를 입양한 건 실수였다"는 말을 심심찮게 내뱉었다. 알코올 중독자였던 양아버지는 일을 나갔다가 돌아오면 샌드라를 향해 손찌검을 하고 발길질을 했다.
이후 그는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했고 한때 입에 풀칠하기 위해 성매매를 하기도 했다. 길거리에서 호객행위를 하다 경찰로부터 몽둥이로 두들겨 맞는 일도 허다했다.
유년시절 부모로부터 받은 학대와 사회에서 성소수자로서 겪은 폭력 등은 오히려 샌드라에게 포용력을 길러줬다. 그는 밑바닥에서의 경험을 통해 인간에게 따뜻한 유대감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깨닫는다. 그리고 또 다른 밑바닥 인생을 찾아 청소하는 일을 시작한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STC 특수 청소 서비스 전문 회사'다.
▷반려동물 묵은 짐 청소 ▷극도로 불결한 집 및 폐가 위생 청소 ▷살인·자살·사망 후 청소 ▷사망에 의한 상속 주택 청소 ▷곰팡이·홍수·화재로 인한 손상 복구 ▷메타암페타민 밀조 시설 제거 및 청소 등. 재앙이 휩쓸고 간 자리를 전문적으로 처리하는 업체다. 이런 특수 청소 일이 뭔가 음울하고 괴짜 취향의 일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여느 직업 못지 않게 전문성이 필요하다. 특히 샌드라의 탁월한 공감력이 빛을 발한다.
그는 집에 스며들어 있는 악취를 없애고 괴상한 포르노물과 사진과 편지를 버리며, 비누와 칫솔에 붙은 그들의 DNA까지 없애지만 사람을 지우는 실수는 하지 않는다. 또한 반려동물로 삼은 죽은 쥐를 내다버릴까 예민해진 고객을 안심시키고, 40년 동안 치우지 않은 집의 주인과 수다를 떨며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오래된 청구서를 정리한다. 침구, 텔레비전, 가구 등 물려받을 유족이 없어 남아있는 물건은 따로 보관해 두었다가 필요한 곳에 무료로 설치해 주기도 한다.
웬만한 사람은 '멘탈 붕괴'로 이어질 만한 이런 일들을 샌드라는 태연하게 처리한다. 그 만큼 누구 못지 않은 힘든 삶을 살면서 한층 단단해지고 따뜻해졌기에 가능한 것이다.
지은이는 샌드라의 청소 현장과 샌드라의 인생 역정을 번갈아 조명한 뒤 이렇게 말한다. "트라우마의 반대가 트라우마의 부재는 아니다. 트라우마의 반대는 질서와 균형이다. 그것은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중략) 빛이 가득 들어오는 그 집에서도 샌드라의 과거 최악의 기억은 여전히 이 구석 저 구석을 배회한다. 하지만 그런 기억은 이제 대부분의 공간을 메우고 있는 좋은 기억과 새로운 계획, 살아온 삶, 살고 있는 삶에 자리를 내주지 않을 수가 없다."
지은이는 좋은 기억과 나쁜 기억을 함께 지워버린 샌드라의 삶을 복원하고 마음 깊숙한 곳까지 꿰뚫어 봄으로써 샌드라와 독자 사이에 인간적 유대 관계를 맺어준다. 또한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취약성을 들키고 싶어하지 않지만, 취약성을 드러냄으로써 연민넘치는 관계를 만들어 갈 수 있다고 말한다.
호주의 논픽션 작가인 지은이는 4년 동안 샌드라를 따라 20여 곳의 현장을 방문하며 그녀의 삶에 대한 기록을 이 책에 담았다. 이 작품으로 2018년 빅토리아 문학상, 오스트레일리아 출판사업상, 도비 문학상 등 각종 문학상을 휩쓸었다. 462쪽, 2만3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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