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 문재인 정부 5년의 사이불학(思而不學)

입력 2022-04-04 19:58:59

조두진 논설위원
조두진 논설위원

훌륭한 농부는 부지런할 뿐만 아니라 때를 살필 줄 안다. 봄은 멀었는데, 마음만 급해 엄동설한에 모종을 내다 심으면 다 죽고 만다. 재산 손실, 시간 낭비, 노동력 낭비다. 개인이 그랬다면 당사자의 피해에 그치지만, 국가 지도자가 그랬다면 피해는 천문학적일 것이다. 문재인 정부 5년이 그랬다.

문 정부의 많은 정책 잘못은 '이념'에 사로잡혀 '시기'를 외면한 무모함에서 비롯됐다. 대표적 예가 '소득주도성장'이다. 주 52시간제, 최저임금 급격 인상, 비정규직 정규직화 추진 등이 모두 소득주도성장에 해당한다. 진보 일각에서 추진하는 '기본소득' 역시 소득주도성장의 한 부분으로 볼 수 있다.

'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은 부가가치 향상과 무관하게 임금을 더 많이 주면 경제활성화로 이어진다는 논리다. 일각에서 추진하는 '기본소득'은 근로 유무와 관계없이 정기적으로 일정액을 주어 효과를 견인하자는 것이다.

'소득주도성장'을 우파적 시각에서 보자면, 돈이 많이 생기면 구매력이 커지고, 기업의 생산 활동이 활발해져 고용이 늘어나고 삶의 질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좌파적 시각에서 보자면 복지 차원의 사회안전망이다. 나쁠 건 없다. 문제는 시기, 즉 환경적 조건이다.

'소득주도성장'이 현실에서 효력을 발휘하는 때는 다음 같은 경우일 것이다. 첫째는 과잉 생산과 기업 도산, 대량 실업으로 발생한 '1929년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미국이 시행한 '뉴딜정책' 같은 경우다. 둘째는 인공지능과 로봇의 발달로 생산성이 매우 높아지고, 인공지능 로봇이 사람의 일자리를 대체해 '기술적 실업'이 대량으로 발생하는 경우다. 위 두 예는 대량 실업으로 구매력이 감소해 생산이 위축되는 상황을 타파하기 위한 것이다.

세 번째는 미국 알래스카의 예다. 알래스카 주정부는 알래스카의 천연자원이 공유 자산이라는 인식 아래 천연자원 판매 수익금을 알래스카 주민들에게 배당한다. 일을 안 해도 수익이 발생하는 경우다. 문 정부 출범 당시나 지금이나 우리나라는 위 세 가지 중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문 정부의 '소주성'으로 재정 부담을 이기지 못한 자영업자·소상공인들이 줄줄이 폐점하거나 도산했다. 문 정부 임기 안에 주 40시간 이상 일자리가 200만 개 사라졌다. 일자리를 잃거나 더 나쁜 일자리로 옮겨 가는 바람에 소득 하위 20%의 근로소득은 30% 이상 줄었다. 빈부 간 소득 격차는 최대로 벌어졌다. 문 정부는 잘못된 정책을 수정하는 대신 5년간 총 120조 원의 고용 창출 예산을 퍼부었다. 그렇게 만든 일자리가 거리 청소, 풀 뽑기, 교통 지킴이, 노인 자율방범대 같은 거였다. 그런 단기 일자리 400만 개를 만들어 놓고 "고용이 회복됐다"고 말했다.

'소득주도성장'을 예로 들었지만 탈원전, 대북 정책, 부동산 정책 등이 모두 '자기 생각'에 빠져 '시점'을 외면한 데서 기인했다. 훗날 탈원전 시대가 오고, 남북 평화가 정착하고, 기본소득형 소득주도성장 시대가 오더라도 "봐라, 우리 옳았다"며 우쭐대지 마라. 봄이 익어 꽃이 피었다고, 한겨울에 모종 심은 잘못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남북 평화 좋은 거, 임금 높으면 좋은 거, 기본소득 사람다운 거 모르는 사람 아무도 없다. 원전 없이도 전력 수급과 탄소제로 달성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나. 국민들과 선진 각국은 아직 때가 아니라는데 문 정부만 고집을 피웠다. 자기 생각에 빠져 상황을 살피지 않았고, 실업, 가계 빚 폭증, 국고 낭비로 이어졌다.(思而不學則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