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칼럼] 대통령 국민중임제의 종언

입력 2022-03-24 12:38:48 수정 2022-03-24 18:19:44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

1987년 민주화 이후 헌법상으로 대통령 임기는 5년 단임제다. 그럼에도 국민은 같은 정당 또는 집권 세력의 대통령 후보를 연이어 뽑아 주었다. 그 결과 노태우∙김영삼, 김대중∙노무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으로 이어지면서 보수∙진보가 10년을 주기로 집권했다. 즉 우리나라 대통령제는 헌법상으로는 5년 단임제이지만, 국민은 같은 정당이나 진영의 대통령 중임제를 자리 잡게 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20대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의 당선은 민주당 입장에서 보면 국민중임제에서 연임에 실패한 것이다.

실패 원인은 명확하다. 선거 후 승자에게서 승리 요인을, 패자에게서 패인을 찾고 있지만, 이번 대선의 결과는 문재인 정부의 국정 실패다. 한길리서치의 대선 직후 3월 12~14일 조사에서 이번 대선 총평을 물은 결과, 국민은 '윤석열 후보의 정책이나 선거 전략이 앞서서 이겼다'는 6.7%, 상대인 '이재명 후보의 정책이나 선거 전략 실패로 이겼다'는 14.6%에 불과했다. 반면 '국민의 정권교체 열망으로 윤석열 후보가 이겼다'는 평가가 48.7%로 두 후보 승패 요인을 합한 수치의 두 배보다 많았다. 즉 국민들은 윤석열∙이재명 두 후보보다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심판으로 투표한 측면이 크다. 이는 대선 패배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의 책임을 묻는 질문에서 더 명확히 드러난다. 대선 패배에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의 책임에 대한 질문에서 '책임이 있다'가 72.8%로 '책임이 없다'는 평가 24.6%보다 3배 정도가 더 많았다.

대체로 대선과 총선의 성격을 규정할 때 총선은 대통령 임기 중·후반에 치러질 경우 정권 심판론이었으며, 대선은 미래에 대한 선거였다. 그러나 이번 대선은 달랐다. 미래 국정에 대한 비전이나 공약보다는 과거 회귀 성격의 정권 심판이 선거 기간 내 일관되었으며, 그에 따라 정권 심판에 찬성하는 진영을 중심으로 한 후보 단일화와 세대 연대로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치열한 양자 대결 구도를 보였다.

문제는 그러는 가운데 이번 대선에도 미래에 대한 비전이나 공약에 대한 논의는 부족했다. 오히려 이번 대선 내내 정권교체 논쟁과 후보 연대 등 정략만 있었고, 그 연장선상에서 상대 후보에 대한 자질이나 도덕적 공격에 집중했다. 그러다 보니 후보들의 국정 비전에 대한 검증이 제대로 안 되었고, 공약 중에서 옥석이 가려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정책적 완성도와 국민적 공감대도 확보하지 못했다.

역대 대선도 마찬가지다. 일단 선거에서 승리하면 공약 중에서도 폐기하거나 수정, 우선순위를 조정해야 할 공약도 국민이 추인한 것으로 간주하여 새 정부의 정책으로 바뀌며, 국민과의 약속이라는 명분으로 밀어붙였다. 물론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에 앞서 인수위원회가 있지만 인수위원회도 대선 승리의 낙관적인 분위기일 수밖에 없으니 당선인 의중이나 집권 세력의 정체성 차원에서 결정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국민 공감도가 낮고 정권의 정체성에 맞춰진 공약을 신정부의 대표 정책으로 밀고 나가다 보니 각 정부의 발목을 잡았다. 과거 청산 과제가 많았던 YS나, IMF 직후 DJ 정부와는 달리 그 후 정부는 과거 청산 과제나 부채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그럼에도 이후 정권들은 과거 심판에 몰두한 대표 정책에 집착하였다. 노무현 정부의 기득권 청산과 행정수도 이전, 주한미군 철수,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과 냉혹한 신자유주의 경쟁 정책 강행, 박근혜 정부의 노인복지 공약 고수로 인한 미래 세대 소외,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등이 그렇다.

윤석열 당선인 측은 대통령 집무실 이전과 이명박 전 대통령 사면 등으로 출범도 하기 전에 신∙구 정부 간 대결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그러자 윤석열 당선인의 신정부 국정 수행에 대한 기대가 40%대라는 사상 초유의 여론조사도 발표되었다. 앞서 지적했듯이 국민의 후보 지지를 공약에 대한 추인으로 봐서는 안 된다. 그러기에 당선인의 공약이라 해도 정책적 검토와 국민의 여론을 반영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정권 심판으로 물러나는 전 대통령과 정권 심판에 힘입어 들어서는 새 대통령의 지지율이 같아질 수 있다. 국민이 왜 30년 동안 허용해 오던 국민중임제 관행을 거두어들였는지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국익 중심 정책과 국민의 민심에 기반하지 않은 정책을 밀고 나가면 정권 초 국민과 신정부와의 허니문을 기대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정권 말 국민중임 제도로 보여준 국민의 관용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