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사·총독부 박물관·만선사·남만주철도회사 등 분석
일본은 메이지 유신으로 동아시아에서 가장 빨리 서구식 근대화를 추진했다. 유신을 전후해 많은 사상가가 출현했는데, 그중 요시다 쇼인(吉田松陰·1830∼1859)이라는 인물이 있다.
요시다는 나라를 지키려면 없던 것을 차지해 늘려야 한다고 했다. 제국주의자처럼 영토 확장 필요성을 강조했다. 홋카이도와 오키나와는 물론 한반도, 만주 북쪽, 대만, 필리핀까지 지배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공교롭게도 그의 주장은 한 세기 뒤쯤 현실이 됐다. 일제는 대한제국으로부터 국권을 빼앗은 뒤 거침없이 침략에 나섰다.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이라는 그럴듯한 구호도 제시했다. 서양에 대응해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가 일본을 중심으로 공존해 나가자는 개념이었다.
당시 일본 학계는 자국의 야욕을 뒷받침하는 다양한 이론과 학문 틀을 만들어냈다. 해방 이후 우리나라 역사학자들은 그러한 '식민사학'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인식했다. 하지만 식민사학의 그림자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온다.
사회평론아카데미가 펴낸 '일제 식민사학 비판 총서'는 일제의 동양 제패 이데올로기를 생산한 주요 조직을 분석하기 위해 기획됐다. 필진에는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를 포함해 7명이 참여했다. 전체 8권 중 앞쪽 4권이 최근 먼저 발간됐다.
대표 저자인 이 교수는 19∼20세기 동아시아사를 성찰하려면 두 가지 고정관념을 깨뜨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이 메이지 유신으로 근대화에 성공한 유일한 동아시아 국가라는 신화와 일제 침략 행위는 국제정세 변화에 따른 부득이한 조치였다는 믿음이다.
그는 "메이지 지도자들은 자유민주주의로 일본을 발전시키려고 '유신'을 한 것이 아니라 아시아를 독점하기 위한 무력 양성을 목표로 삼았다"고 비판한다.
이 교수는 1권 '일본제국의 동양사 개발과 천황제 파시즘'에서 근대 일본인들의 이 같은 비뚤어진 세계관을 고찰하고, 지금도 흔히 쓰이는 용어인 '동양사'가 생겨나는 과정을 추적한다.
그는 동양사 개념을 주창한 인물로 나카 미치요(那河通世)를 지목한다. 나카가 1894년 외국사를 동양사와 서양사로 나누어 가르치자고 제안했고, 일본 정부가 1897년 이를 공식적으로 수용했다고 설명한다.
이어 1902년 일본사, 동양사, 서양사 교과서가 학생들에게 배포됐는데, 한국사가 동양사가 아닌 일본사에 포함됐다고 짚는다. 이 교수는 이러한 구성이 요시다 쇼인의 저서에 담긴 조선관을 연상시킨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동양사에서는 만주와 몽골 역사를 적극적으로 다뤘다"며 "유목민족의 역사를 돋보이게 하려는 것보다 일제가 중국 본토를 지배할 역사적 근거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고 꼬집는다.
원나라나 청나라처럼 중국 본토에 들어가 무력으로 한족을 제압한 유목민족의 사례를 부각해 일본도 힘의 우위를 내세워 중국 본토를 장악할 수 있다는 논리를 만들어내고자 했다는 것이 이 교수 생각이다.
'동양사'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개념이 '만선사'(滿鮮史)다. 만주와 조선을 아우르는 용어인 '만선'도 일본이 대륙을 침략하면서 고안했다.
정상우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3권 '만선사, 그 형성과 지속'에서 만선사의 체계화를 시도한 일본 학자 이나바 이와키치(稻葉岩吉)를 중심으로 만선사 전개 과정을 살펴본다.
그는 이나바가 구축한 학문 흐름을 소개한 뒤 만선이 일본의 타자로 설정됐다고 논한다. 일본과 만선이라는 대립 구도가 형성되면서 일본의 위상은 높아졌으나, 조선은 대륙의 절대적 영향을 받는 반도 국가로 전락했다고 지적한다.
이어 만선사의 진정한 목적은 섬나라 일본의 역사를 대륙 세력 역학관계에 참여시켜 국위를 떨친 일본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었다고 결론짓는다.
2권 '조선총독부 박물관과 식민주의', 4권 '제국 일본의 동아시아 공간 재편과 만철조사부'는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을 지낸 오영찬 이화여대 교수, 박준형 서울시립대 교수가 각각 집필했다. 5∼8권은 다음 달 출간 예정이다.
각권 288∼392쪽, 2만5천∼2만7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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