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여행(김훈/ 생각의 나무/ 2019)
"한국문학에 벼락처럼 쏟아진 축복". '칼의 노래', '현의 노래'를 쓴 작가 김훈이 받고 있는 문단의 평이다. 수려하고 간결한 그의 문체는 사물을 어떤 시각으로 보는지 작가가 바라보는 시선을 독자가 그대로 느끼게 한다.
꽃에 대한 찬사는 누구라도 한 번쯤은 노래했을 것이다. 수도 없이 많은 꽃 묘사가 있다. 그러나 내가 '꽃 피는 해안선'에서 만난 김훈의 묘사는 초입부터 황홀하게 몰입시킨다. 동백과 매화, 산수유와 목련에 대한 글을 읽으면 그 꽃들이 상상되고 저절로 탄성이 터진다.
'찻잔 속의 낙원'에서는 화개 골짜기 차밭에서 찻잎을 따고 덖음질을 하고 있다는 착각 속에 빠지게 한다. 작가의 섬세한 표현이 눈에 선하게 그 광경을 그려내기 때문이다. 이렇게 글을 읽으면 글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것, 김훈의 글이 가지는 위대한 힘이다. 책에서 차향(茶香)이 난다. 책, 참 향기롭다.
"몸이 글을 밀고 나가는 느낌이어서 연필로만 쓴다"고 말하는 작가는 자료 준비에 5년여 공을 들였고, 3개월여 동안 책상에 앉아서 썼다고 한다. 조사 하나도 전하는 의미가 달라서 어떤 것을 쓸 것인가에 고통이 수반되었기 때문에, 책을 덮고 나면 단어가 지긋지긋해져서 다시는 돌아볼 것 같지 않아도 다시 돌아와 책상 앞에 앉게 된다고 한다.
에세이를 쓰기 위해 풍륜(風輪)으로 전국을 돌아 그곳에서 느껴지는 감정을 그대로 지면 위에 그려낸 작가의 글에서 자전거 바퀴 도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러기에 이런 주옥같은 글을 쓸 수 있는 것이고 그 감동이 온전한 온기로 우리에게 전달되는 것이 아닐까. '자전거 여행' 책장은 덮었지만 책 속에 돌산은 여전히 앉아있고 동백의 목은 꺾이고 있을 것이다.
차밭의 새벽이슬은 찻잎을 더욱 향기롭게 할 것이며, 가마 속의 푸른 불꽃은 여전히 고요할 것이다. 김훈은 '가마 속의 고요한 불'에서 말한다. 도예가는 가마에 불을 붙일 때 '그릇을 굽는다'고 하지 않고 '가마를 익힌다'고 표현한다고. 책을 다 읽고 난 후, 그저 무념무상으로 고요해지는 이 현상도 그렇게 익어가는 과정이라고 믿고 싶다.
열정이 아득해져 가는 나는 푸른 불꽃 같은 고요를 작가로부터 전해 받는다. 세상에 지친 독자들에게 김훈의 자전거에 한번 올라 보라고 손목을 끌고 싶다. 갈피갈피 묘사의 신세계가 펼쳐져 삶을 새롭게 해줄 테니까.
백무연 학이사독서아카데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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