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필 철학박사
"철학자는 영혼을 치유하는 의사다."
고대 철학자 에피쿠로스의 말이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겼을 때, 철학이 과연 치유할 수 있을까. 치유는커녕 오히려 마음을 더 복잡하게 만들지 않는가. 시와 음악이 훨씬 더 위안을 주는 게 아닌가.
철학은 어려운 학문이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마치 소설책처럼 읽을 수는 없다. 난 철학이 어렵다고 하는 학생들에게 철학은 쉬운 걸 괜스레 어렵게 쓴 것이 아니라, 원래 어려운 학문이라고 말하곤 했다.
지금 몇시인지는 시계가 답하지만, '시간'이 무엇인지는 답할 수 없다. 마음이 어떤 상태에 있을 때 자유로운지는 심리학이 답하지만, '자유'란 무엇인가는 답하지 못한다. 철학이 답을 구해야 할 어려운 문제다.
심각한 우울증에 빠진 사람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항우울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과연 정신적 문제가 다 치료될 수 있을까. 치통과 같은 육체의 아픔(illness)은 약을 먹으면 치료된다.
정신적 질병은 약물만으로 고칠 수 없다. 정신적 질병은 dis-ease다. ease, 즉 마음의 안정감을 잃은 상태다. 인생관이 비뚤어진 사람이나 과도하게 정치적으로 편향된 사람을 약물로 치유할 수는 없다. 마음의 안정감을 잃은 사람에게는 철학으로 치유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우연히 읽은 플라톤의 대화편이 인생관을 전적으로 바꿀 수 있다.
우울하거나 삶이 힘든 사람에게 두 권의 책을 권하고 싶다. 하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이다. 둘째 아들 이름을 제목으로 단 책에서, 아들에게 행복한 삶이 어떤 것인지를 말하고 있다. 부와 권력과 명예를 최고 좋은 것으로 여기지 말고 덕스럽게 사는 것이 행복이라고 가르친다.
다른 하나는 근대 철학자 스피노자의 '에티카'다. 이 책은 욕망의 본성을 알고 그 욕망에서 벗어나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것인지를 안내하고 있다. 이 책은 읽기 쉽지 않다. 하지만 쉬운 것만 읽으려 한다면, 소설책을 읽는 게 훨씬 좋다. 때론 어려워도 읽지 않을 수 없는 책들이 있다. 어렵다고 다 즐겁지 않은 것은 아니다. 어렵기에 깊이 생각하는 즐거움을 준다.
철학(philosophy)이 즐거움(entertainment)을 주는 필로테인먼트(philotainment)가 되고, 철학자도 엔터테이너가 되면 더 많은 즐거움과 위안을 줄 수 있다.
내가 대학 다닐 때 교수님 강의가 생각난다. 요즘은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그 때는 교수가 담배를 피면서 강의를 했다. 한 모금 길게 내뿜는다. 한참 침묵이 흐르다가 한마디 하곤 다시 담배를 입으로 가져간다. 그리고 한참 후 느리게 다시 말을 잇는다.
지금 생각하면, 그 교수님의 재미없고 느린 강의는 철학의 초심자인 학생들을 배려한 것이다. 어려운 철학을 천천히 생각하면서 따라오라고. 철학이 안내하는 사색의 숲에서 나의 영혼이 위로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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