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졌잘싸' 이재명, 책임론보다는 역할론 거세

입력 2022-03-13 07:22:47

패배 책임 떠안고 정치권과 거리두던 과거 후보들과 다른 분위기
훗날 도모 위해 8월 전대 당권도전 관측도…'문재인 모델' 따르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선대위 해단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선대위 해단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선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나왔다 고배를 마신 이재명 전 경기지사를 두고 정치활동을 조기 재개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고개를 들고 있다. 당 안팎에서도 역대 '패장'들과 달리 책임론보다는 역할론이 더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과거 낙선한 후보들은 패배의 책임을 떠안고 한동안 정치권과 거리를 두는 것이 관례였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1992년 대선 패배 후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영국으로 떠났고, 정동영 전 의원도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에서 잇따라 고배를 마신 뒤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문재인 대통령의 경우 2012년 대선에서 진 이후 정치 현안에 대한 발언을 한동안 삼가는 모습을 보였다.

이 전 지사 역시 "모든 책임은 부족한 후보에게 있다"며 자세를 낮추고 있다.

그러나 주변에서는 그를 '호출'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모습이다. 이런 배경에는 무엇보다도 '졌지만 잘 싸웠다'는 시각이 깔려 있다. 높은 정권교체론 속에서도 역대 민주당 후보 중 가장 많은 1천614만여표를 얻어 역대 최소(0.73%포인트) 격차로 석패한 것 자체가 정치적 역량을 증명한 것이라는 평가다.

석달 뒤 치러지는 전국단위 선거인 지방선거를 앞둔 위기감도 반영됐다.

대선 결과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지방선거에서 자칫 '풀뿌리 권력'까지 무더기로 국민의힘에 내준다면 민주당으로선 암울한 시기가 길어질 수도 있다.

이런 위기를 극복할 리더십이 좀처럼 눈에 띄지 않자 이 전 지사의 정치력에 주목하는 것이다.

이 전 지사 측은 아직은 패배의 책임을 지고 사과와 감사의 뜻을 표하는 게 우선이라며 재등판 가능성에 거리를 두는 모습이다.

다만 주변에서는 당내에서 절박한 요청이 이어진다면 느슨한 형태로라도 정치 행보를 재개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 전 지사로서도 현실 정치와 완전히 단절하는 것이 유리하지 않다는 분석도 있다.

훗날을 도모하려면 국회의원 경험이 없어 당내 기반이 취약하다는 약점을 극복하는 것이 과제로 꼽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역할론에 화답하는 차원에서 지방선거 지원을 한 뒤에 8월 전당대회에서 당권 도전에 나서는 정치적 경로도 거론된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이 2012년 대선 패배 이후 걸어간 길과 비슷하다. 문 대통령은 2015년 전당대회에서 대표로 선출돼 당 장악력을 다시 다진 뒤 대권 재수에 성공했다.

이 전 지사와 가까운 한 의원은 13일 "자칫 내부 분란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당의 요청이 있지 않다면 이 전 지사가 먼저 나서기는 어렵다"면서도 "이 전 지사가 지방선거 국면에서 전면에 선다면 지지자들의 좌절을 새롭게 조직화하고 경기도 등에서 불리한 구도를 바꿔볼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