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큐레이터다] <4> 안혜정 대구문화예술회관 큐레이터

입력 2022-03-07 22:40:02 수정 2022-03-08 17:58:06

“전시는 작품 통한 작가와 관람객 간 소통
지역 작가들에게 실질적인 도움 주고싶어”

대구문화예술회관 소장작품전에 전시 중인 김종복 작가의
대구문화예술회관 소장작품전에 전시 중인 김종복 작가의 '설악산' 앞에서 안혜정 큐레이터가 웃어보이고 있다. 이연정 기자

코 끝을 스치는 찬바람 속 봄내음이 느껴지던 지난 4일,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안혜정 큐레이터를 만났다. 대구문화예술회관은 전시실만 13개로, 전국 문화예술회관 중 전시관 규모가 가장 크다. 안 큐레이터는 "전시는 작품을 통해 작가와 관람객이 소통하는 것"이라며 "작가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전시 준비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큐레이터를 언제부터 꿈꿨고, 지금 자리에 오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나.

-초등학교 4학년 때 미술을 시작해서 어쩌면 미술 전공이 당연한 것처럼 학창시절을 보냈고, 자연스럽게 미술대학에 진학했다. 학창시절엔 실용적인 학문이 좋아서 디자인을 전공했는데, 컴퓨터로 작업하는 일이 많다보니 몸도 지치고 점차 흥미를 잃게 됐다.

대학 졸업 후 진로에 대해 고민하던 중, 우연히 미술관에서 인턴으로 전시해설을 하는 업무를 하게 되면서 학예사의 꿈을 가지게 됐다. 상업갤러리에도 잠시 근무를 하다, 경남의 한 미술관 공무직 직원으로 채용돼 미술관의 다양한 업무를 경험해볼 수 있었다.

학예사가 되겠다는 목표로 대학원에 진학해 미술사를 공부했고, 문화예술교육사 자격도 취득했다. 일과 공부를 병행해야 했기에 학예사의 꿈을 이루기까지 7, 8년 정도 적잖은 시간이 걸린 것 같다. 힘든 시간이었지만, 지금은 값진 추억이다.

▶전시 기획 시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이 있다면.

-작가를 선정해서 조명하는 전시와 주제를 정해서 작가를 섭외하는 전시는 중점을 두는 부분에 차이가 있다.

작가를 조명하는 전시의 경우 작가와 작업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실제 작업을 해본 경험이 없다보니 가능하면 많은 대화를 통해 작가의 작업을 이해해보려 하고, 함께 전시를 준비해나감에 있어서 작가의 예술세계를 최대한 존중해 그에 대한 지원을 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또한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작품을 모아 전시를 할 경우, 주제와 작가 작업의 연결성이 가장 중요하다. 억지로 끼워맞추게 되면 주제 전달이 잘 되지 않기 때문이다.

공통적으로는 관람객이 전시를 어떻게 느끼고 받아들일지를 미리 상상해보고, 공간 속에서 작품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면서도 내용의 방향성을 잃지 않도록 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기억에 남는 전시를 꼽자면.

-문화예술회관은 기획전시 앞뒤로 빽빽하게 대관 일정이 잡혀있는 경우가 많아서 전시 설치가 가능한 기간이 3, 4일 정도다. 1~3주의 기간이 소요되는 일반적인 미술관에 비해 많이 짧은 편이다.

2019년 가정의 달 기념전 '미술관 속 집 이야기'를 준비할 때의 일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당시 전시 작품 중에 빔프로젝터 4대를 서로 연결해서 '프로젝션 맵핑' 작업을 해야 하는 작품이 있었다. 전시 전에 빔을 서로 연결하려니 몇일 만으로는 시간이 충분치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대관 중이었던 단체 관계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전시장에 새벽내내 빔프로젝터를 설치했다. 자칫하면 전시를 제때 못할 뻔한 상황이었는데, 무사히 전시를 열었고 관람객들도 즐겁게 감상할 수 있었다. 지금도 협조해주신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든다.

▶문화예술회관 전시실은 지역에서 규모가 큰 편이다. 넓은 공간을 채우는 것에 대한 고민도 클 듯하다.

-문화예술회관 전시실의 재미있는 점은 ▷6각형인 공간 ▷1~5, 6~10전시실이 서로 연결돼있는 것 ▷전시실마다 커다란 기둥들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 이러한 부분은 작품을 전시하는데 장점이 되기도 하지만 단점도 된다.

공간을 채우는 것은 작가 수나 작품 양을 조절하면 되지만, 기둥 등이 있는 공간의 특성상 자연스럽게 전시의 흐름을 이끌어가며 디스플레이하는 부분에 있어 고민이 많다.

▶큐레이터로서, 혹은 개인으로서 현재의 고민은.

- 큐레이터 5년차로 접어들면서 이제 좀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각이 생긴 것 같다. 그간 전시를 만들어내는 데에만 급급했던 게 아닐까 하는 반성도 든다.

개인적으로는 육아, 일 두 가지를 병행하면서 체력적으로도 힘든 부분이 있긴 하다. 하지만 지역 미술에 대한 오랜 역사와 지역 미술인들의 긍지가 담겨 있는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즐겁고 보람된 일을 할 수 있다는 점이 늘 감사하고 행복하다.

요즘의 고민은 코로나 이후 관람객 수가 많이 줄어든 상황이라 어떻게 하면 열심히 만든 좋은 전시를 좀 더 많은 사람이 찾아와 감상할 수 있을지다.

'구슬도 꿰어야 보배'라고, 좋은 전시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시를 만드는 사람들, 특히 작가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문화예술회관 미술관을 좀 더 활성화하는 방안도 모색하고 싶다.

▶앞으로의 목표 또는 계획은.

-문화예술회관은 관람객의 연령대가 높은 편이다. 어르신들이 많이 와서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것도 좋지만 이에 더해 젊은 관람객들도 많이 왔으면 하는 욕심이다. 앞으로 젊은 관람층을 만족시킬 수 있는 전시를 기획해보고 싶다.

또한 지역 원로 작가, 중년 작가, 청년 작가 등 작가 시리즈 전시도 좀 더 작가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할 수 있는 한 내 자리에서 힘껏 노력해보고 싶다. 수년 내 계획 중인 미술관 리모델링에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정말 멋지게 탈바꿈시키는데 힘을 보태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