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지음/ 이영준 엮음/ 민음사 펴냄
시란 무엇일까. 시를 논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문학을 사랑하는 독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품어봤을 법한, 그러나 끝내 답하지 못한 채 멀어져버린 질문들이다.
시인들의 시인, 문인들의 문인으로 손꼽히는 김수영 시인의 산문집 '시여, 침을 뱉어라'를 읽다보면 마음 한쪽에 밀어뒀던 오래된 질문들과 재회할 수 있다.
우리에게 김 시인은 '폭포', '풀',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 등의 시로 익숙한, 한국 현대 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작법으로 모더니즘 시의 뿌리가 된 시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시여, 침을 뱉어라'는 김 시인이 쓴 시론과 문학론에 해당하는 산문을 이영준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학장이 엮은 책이다. 25년 만에 400권을 돌파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의 바로 그 400호다.
이번 산문집은 '시의 뉴 프론티어', '시인의 정신은 미지' 등 다수의 시론을 비롯해 '더니티의 문제', '현대성에의 도피' 등 8편의 시작노트와 월평 등을 담았다. 김 시인이 문학과 예술에 대해 지녔던 태도를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생생한 현장이다.
지금까지도 수많은 시인이 시를 쓰거나 시를 논할 때 정초석으로 삼는 글이 김 시인의 시론 '시여, 침을 뱉어라'다. '시여, 침을 뱉어라'에서 김 시인은 그가 처한 혼돈의 시대를 마주하는 방식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김 시인이 살았던 시대는 일본어와 한국어, 영어가 혼재하는 가운데 형성된 전례없는 혼돈의 시대. 그는 혼란을 '자유와 사랑의 동의어'로 정의한다. 문화의 세계에서 혼란의 향수가 싹트고 있음을 중요하게 여기며 그 근원을 빚어내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시의 임무라는 것.
그는 혼란이 새로움을 품고 있는 역동과 에너지임을 깨닫고, 과감하고 전위적인 작법을 보여준 현대 시인이었다. 그의 산문에서는 모더니즘 시의 뿌리가 된 탁월한 독창성을 볼 수 있는 한편, 그의 밀도 높은 사유와 날카로운 현실 감각을 엿볼 수 있다.
책의 가장 첫 글인 '시여, 침을 뱉어라' 시론에서 한국 시사(詩史)의 중요한 경구가 된 '온몸의 시학' 역시 혼란의 가운데에 자신을 잡아준 것이 시였음을 말한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무한대의 혼돈에 접근하고자 모험을 강행했던 김 시인의 정신이 지금 이 순간에도 작용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다시 말해 오늘날 여전히 혼란 속에 사는 우리 역시, 우리를 잡아주는 것이 김수영의 시임을 알게 한다.
"시작(詩作)은 머리로 하는 것도 아니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몸으로 하는 것이다.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중략) 이 말은 곧 온몸으로 온몸을 밀고 나가는 것이 된다. 그런데 시의 사변에서 볼 때, 이러한 온몸에 의한 온몸의 이행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것이 바로 시의 형식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용준 시인은 추천사를 통해 이렇게 말한다. "그는 시는 시인들로 하여금 시에 대해 질문하는 것을 넘어서 시를 쓰고 싶게 만든다. 그의 산문은 사람들로 하여금 시를 읽는 것을 넘어서 세상 모든 것들 안에 시가 숨어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300쪽, 1만4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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