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동네책방] <57·끝> 문경 점촌의 초미니 복합문화공간 ‘책숲서점’

입력 2022-03-07 10:16:38 수정 2022-03-07 20:08:25

옛 점촌시내 외곽의 동네책방… '초미니 복합문화공간'이라 불러
바느질 명상, 어반스케치, 그림책 동아리, 시낭독 필사 모임 등
"물 한 종지 역할… 여기 왔던 이가 다른 곳에서도 나눌 거라는 믿음"

문경 점촌의 동네책방인
문경 점촌의 동네책방인 '책숲서점' 내부. 김태진 기자

문경시 흥덕동, 옛 점촌시내 외곽의 동네책방 책숲서점은 올해 1월 1일 문을 열었다. 그런데 중고신인, 그러니까 신장개업에 가깝다. 2020년 7월부터 지난해 말까지 열린책방 '여행'이란 이름의 작은 도서관 형태로 운영해온 터였다. 책을 판매하는 기능이 더해져 새로 문을 연 곳이 책숲서점이다.

제주에서 33년간의 직장생활을 마치고 어린 시절 추억이 남아있는 점촌으로 향했던 박영희 씨는 흥덕동 주민들과 문화로 일구는 여러 모의작당을 한창 진행 중이다. 떡볶이 소스를 만들던 곳이 책방으로 바뀌고 책 냄새가 폴폴 나기 시작하더니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 벌써 20명 정도가 함께 한다.

여러가지 프로그램으로 이들은 모인다. 바느질 명상, 몰입독서인 '엉책'(엉덩이로 책 읽기), 어반스케치 준비 단계, 그림책 동아리, 시낭독 필사 모임까지. 이들은 이곳을 '초미니 복합문화공간'이라 불렀다. '책숲서점'이라는 이름은 점촌시내에 있던 '국제서림'에서 따왔다. 1970년 전후쯤 그가 처음으로 자비로 책을, 펄벅의 '어머니'를 샀던 곳이다.

문경 점촌의 동네책방인
문경 점촌의 동네책방인 '책숲서점' 내부. 김태진 기자

그림을 빼놓고 이곳을 설명하기 어렵다. '구름빵'의 저자, 백희나 작가의 그림책이 최신작부터 무더기로 보여 특이하다 싶었더니 더욱 특이했던 건 그림을 직접 그리는 책들이 많다는 거였다. '어반스케치 핸드북', '캘리그라피로 만나는 시 한 줄', '우리 그림책 작가를 만나다', '카페에서 즐기는 행복한 스케치놀이', '그림 여행을 권함' 등등.

특히 어반스케치는 이 책방의 정체성처럼 보였다. 도심을 그린다는 뜻의 어반스케치는 가벼운 수채화에 가까웠는데 작가들이 취재수첩을 들고 다니며 그때그때 떠오르는 것을 메모하는 것처럼, 화가들은 휴대용 팔레트와 붓을 갖고 다녔다. 화장품케이스처럼 생긴 팔레트는 스마트폰보다 작은 크기였다. 그러니 밥을 먹으러 가서도 인스타그램에 올리려고 반찬을 사진으로 찍듯 5분만에 반찬들을 그려내기 일쑤다.

박 씨는 "어반스케치는 대상과의 교감이 핵심이다. 그래서 현장에서 바로 그려내야 한다. 아침 산책을 하다가도 메모하듯 스케치하고 바로 색칠한다"고 했다.

기록화가 되는 경우도 더러 있다. 그림으로 그린 뒤 얼마 후 건물이 헐리는 경우가 적잖기 때문이다. 이런 풍경들은 귀하게 여겨져 그가 그린 어반스케치가 그림엽서로 제작되기도 했다.

문경 점촌의 동네책방인
문경 점촌의 동네책방인 '책숲서점'. 김태진 기자

박 씨는 도서판매대금의 10%를 동네어린이에게 책 선물 용도로 쓰겠다고 포부를 밝혀뒀다. 철저히 지역과 함께 하는 느낌이 강했는데 실제로 박 씨는 "책을 판다는 느낌이 아니라 내가 좋은 걸 권하는 거"라고 했다. 덕업상권의 실현자처럼 보였다.

"제가 하고 있는 건 물 한 종지 역할이거든요. 여기에 왔던 이가 다른 곳에서도 또 물 한 종지로 나눌 거라는 믿음인 거죠. 진심은 통한다고 믿어요."

오후 1시에 문을 열고 5시에 닫는다. 화·수요일 휴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