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헤라자드 사서의 별별책] <7> 어려운 책에 ‘함께’ 도전한다는 것은

입력 2022-02-25 18:30:00 수정 2022-02-26 07:11:35

달성군립도서관 사서 이운형

마이클 샌델 지음 / 와이즈베리 펴냄
마이클 샌델 지음 / 와이즈베리 펴냄

"선생님, 이 책 저희끼리 읽으니까 이해가 잘 안 되고 어려워서 진도가 잘 안 나가요. 좀 도와주세요."

지난해 9월 독서동아리 회원들이 도움을 요청했다. 들은 적은 많았으나 읽은 적은 없었던 '정의란 무엇인가'였다. 독서가 취미이고, 독서동아리 담당자라는 책임도 있었기에 요청을 호기롭게 수락했다. 물론 '이런, 아뿔싸, 어떡하지'란 후회와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몇 페이지 지나지 않아 눈에 들어온 이름들은 학창 시절 내내 나를 괴롭히다시피 했던 석학들이었다.

제러미 벤담, 존 스튜어트 밀, 장 자크 루소, 임마누엘 칸트, 존 롤스, 아리스토텔레스까지. 섣불리 읽다간 지레 겁먹고 포기하기 딱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롱초롱하게 독서동아리 담당자를 바라보던 회원들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마음을 고쳐먹었다. 단기레이스가 아니니 시간나는 대로 틈틈이 요약하고 정리하는 게 정석이라는 판단에 이르렀다.

고3 시절이 재현됐다. 시험에 나올 예상문제 되짚듯 퇴근해 집에서도 꼼꼼하게 메모하며 읽어나갔다. 세 차례에 걸쳐 내용을 정리한 뒤 요약본까지 만들었다. 확실하지 않은 내용, 어려운 개념어 등은 검색을 통해 다시 한 번 찾았다.

독서 모임 당일에는 함께 읽으면서 이해되지 않던 부분, 서로에게 깊게 와 닿았던 부분을 나눴다. 내가 찾고 요약한 게 전부가 아니었다. 책에 대한 이해는 더욱 깊어졌다. 집단 지성의 힘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은 여러가지 딜레마와 그 해결책을 각기 다른 편에 선 철학자와 사상가들의 논리를 제시하며 어떤 것이 더 옳은 방향인지 생각해보라고 끊임없이 조언한다.

우리는 열심히 어려운 책들에 계속 도전했고, 그때마다 책이 던지는 지식의 강펀치에 맞아 비틀거렸다. 하지만 어쩌랴. 책 읽는 자의 숙명인 것을. 필사도 해보고, 낭독도 해보고, 어떻게든 책을 이해해 보려고 좌충우돌하며 '함께 읽기'를 계속해 나갔다.

이후로도 '아비투스'(도리스 메르틴), '6도의 멸종'(마크 라이너스), '메타버스'(김상균) 등에 도전했다. 돌아보면 흥미롭게 읽은 책보다 어렵게 읽은 책이 더 기억에 남는다.

혼자 읽는 독서와 달리 함께 한 권의 책을 읽다 보면 혼자 읽을 때와 다른 부분이 보인다. 함께 책을 읽는 건 어려운 책을 끝까지 완독하게 해주는 힘을 가지고 있다. 혼자 읽으면 쉽게 덮어버릴지도 모르는 책에도 서슴없이 도전할 수 있는 까닭이다.

도서관이 책을 대출하고 반납하는 역할만 하는 건 아니다. 도서관을 만들어가는 것은 사서와 이용자, 사람 그 자체다. 책을 통해 사람을 만나고, 사람을 통해 책의 세계에 한 걸음 더 깊게 들어갈 수 있다.

이운형 달성군립도서관 사서
이운형 달성군립도서관 사서

이운형 달성군립도서관 사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