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필 전 문경시 행정복지국장
도통 잠을 잘 잘 수가 없다. 깊은 잠을 자지 못하고 서너 번 깬다. 뭔지 모를 불안감에 가슴이 두근거리고, 딱히 연락 올 곳도 없는데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못한다.
책을 펼쳐 들어도 몇 장 넘기지 못하고 흥미를 잃는다. 즐겨 보던 영화나 드라마도 심드렁하다. 내 나이, 올해로 예순하나다.
몇 년 전부터 아내에게도 변화가 찾아왔다. 갑자기 열이 오른다며 샤워를 하고 난 뒤에도 땀을 줄줄 흘린다. 작은 일에도 화를 내고 감정 기복이 심해졌다.
바야흐로 중년이다. 더 이상 젊지 않다는 것이다. 미국 정신의학회는 중년을 50~64세 안팎의 나이대로 간주했다. 정신적으로 힘든 시기라고도 많이들 얘기한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에 대한 중간평가 단계이기 때문이다. 왜 잠을 못 자고 불안해하고 있을까. 벌어 놓은 재산이 없다. 자식이 셋인데 결혼을 하나도 시키지 못했다.
전에는 머리숱도 많고 피부 탄력도 좋았는데, 거울 속 내 모습이 낯설게 느껴진다. 인생은 이렇게 끝나는 걸까.
얼마 전, 정년퇴직 후 14년간 서예와 그림에 매진하여 본인의 작품으로 늦깎이 수상을 하신 분을 신문에서 보았다.
은퇴 무렵 읽게 된 '어느 95세 어른의 수기'에 큰 자극을 받았다고 했다. 퇴직 후 인생을 허투루 살다 95세 생일을 맞이한 어떤 어른이 뒤늦게 후회의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였다.
'10년 후 105세가 되어 다시 후회하지 않기 위해 외국어 공부를 시작했다'는 그 어른의 말에 자신도 붓을 들었다며, 인정 욕구도 좋지만 모든 일에는 자기만족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부산에 사는 매제(妹弟)가 있다. 여동생과 성당에 다니는데 어느 날 피아노를 배워서 성당에서 멋지게 연주를 한번 해보겠다는 간절한 바람이 일어나더란다.
대기업에 다니고 있는데 피아노는 평생 배워 본 적이 없었단다. 피아노 선생님을 찾아가 2년을 연습하더니 얼마 전 신부님과 신도들 앞에서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연주하는 동영상을 보내왔다.
연미복을 폼나게 차려입고, 마지막 엔딩 때 멋지게 손가락을 들어 올렸는데 나도 모르게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매제 나이 쉰다섯이다.
갱년기의 갱(更) 자에는 '다시 시작한다'는 뜻이 있다는 것을 곱씹어 본다. 더 이상 젊지 않다는 것. 나이가 드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인정할 때 중년은 또 다른 기회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무언가를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여성회관, 평생교육원 등 주위에 배울 곳은 얼마든지 있다. 실천에 옮기는 게 중요하다.
몇 달 뒤면 이제 정년퇴직이다. 10년 전, 문경시 청소년상담센터 김윤정 박사가 '카우치에 누워서'라는 책을 선물해 주었다. 난해해서 보다가 덮어 놨다가를 몇 번을 반복했다.
사람들에게 변화하라고 강요만 할 수는 없다는 게 책 내용인데 처음으로 심리학을 접하는 계기가 되었다.
현재 심리상담사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공부를 하고 있다. 상당히 어렵지만 도전할 가치가 있다고 본다. 스위스의 심리학자 카를 융은 "중년 이후가 되어야만 자기실현을 할 수 있다"는 말을 남겼다. 이제 다시 나만의 인생을 설계해 볼 시간이 된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대사가 하나 있다. 영화 '은교'에 나오는 배우 박해일이 한 말이다. "너희 젊음이 너희 노력으로 얻은 상(賞)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중년(中年), 다시 인생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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