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언론 "베이징 동계올림픽, 중국의 힘과 우월함 과시하는 장 될 것"

입력 2022-02-04 18:43:09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4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4일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에 참석하기 위해 중국 베이징 공항에 도착해 비행기에서 내리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한 후 함께 올림픽 개회식에 참석할 예정이다. 연합뉴스

14년 전 2008 베이징 하계올림픽이 전 세계에 중국을 주요국으로 인정받기 위한 행사였다면,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은 전 세계에 중국의 힘과 우월성을 과시하기 위한 행사라는 분석이 나왔다.

3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 동계올림픽의 숨은 주제' 제하의 기사를 통해 베이징에서 열린 두 차례 올림픽을 비교했다.

매체는 중국 경제가 꽃을 피우고 세계 각국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했던 2008년 베이징에서 하계 올림픽이 열리자 미국을 비롯한 서방 각국은 박수를 보내면서 중국이 자유주의적 세계 질서로 나아갈 기회가 되길 기대했다.

우리나라가 1988년 하계 올림픽 개최권을 따낸 뒤 정치 체계가 달라진 것처럼 중국도 올림픽을 계기로 더 자유화된 정치 체계를 갖게 되리라 전망했다는 것이다. 당시에도 티베트 등지에서 중국이 인권탄압을 자행했다는 의혹을 거론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국제사회는 미심쩍어하면서도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이는 중국을 믿어줬다.

하지만, 14년이 지난 지금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중국이 달라질 것이라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WSJ은 지적했다. 당장 인권 문제와 관련해 중국은 과거와 달리 국제사회의 거센 비난에도 어떠한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다. 국제인권단체들은 중국 당국이 신장(新疆) 위구르 자치구와 티베트, 홍콩, 몽골 등지에서 상상하기 힘든 수준의 인권 침해를 저지르고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신장 지역에선 무슬림계 소수민족을 수용소에 감금한 채 강제노동을 시키는 '인종학살'(genocide) 수준의 박해가 진행된다는 의혹이 제기되지만, 중국은 이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강제수용소가 아니라 테러리즘과 극단주의에 대응하는 데 필요한 직업교육 시설인 '재교육 수용소'에 입소시켜 교육을 진행했을 뿐이란 이야기다.

대만과의 관계도 달라졌다. 2008년 대만은 중국과 관계 개선을 위해 친중 총통을 선출할 만큼 양안 간의 관계가 좋았지만, 지금은 중국이 대만으로 매일같이 전투기를 출동시킬 만큼 관계가 요동치고 있다.

'전랑(戰狼·늑대전사) 외교'로 불리는 강압적이고 주변국을 존중하지 않는 외교 행태로 상당수 국가와 관계가 악화했고, 초강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을 경계하는 미국과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 행정부 시절 관세 폭탄을 주고받으며 무역전쟁을 벌였다.

그런 상황에서 자국내 인권탄압 의혹에 대한 대응마저 음모론으로 치부하는 행태를 보인 탓에 2022 베이징 동계 올림픽은 미국의 비롯한 여러 국가가 외교적 보이콧을 선언하면서 개막 전부터 논란으로 얼룩졌다.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일인 4일 일본 도쿄의 중국 대사관 인근에서 시위대가 이번 동계올림픽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일인 4일 일본 도쿄의 중국 대사관 인근에서 시위대가 이번 동계올림픽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중국 경제는 2008년 베이징 하계 올림픽 개최 당시의 세배 규모로 성장했다. 중국은 막강한 내수시장을 중심으로 세계 최대의 자동차 시장, '안타' 등 토종 스포츠 브랜드가 나이키, 아디다스와 경쟁할 만큼 외형적 성장뿐 아니라 내실도 함께 발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중국 우주비행사들이 지구 궤도 위에서 2022 베이징 동계 올림픽을 시청할 수 있을 정도로 우주 과학도 발전했고, 중국 국민의 생활 수준 역시 크게 향상됐다.

그러나, 2008년 중국과 당당히 손잡았던 다국적 기업들은 올해 대회에선 최대한 눈에 띄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2008 베이징 하계 올림픽 당시 세계 성화 봉송 행사를 주관했던 코카콜라는 2022 베이징 동계 올림픽에선 마케팅 장소를 중국 내부로 제한했다. 제임스 퀸시 코카콜라 CEO는 개막식에도 불참하기로 했다. 중국의 인권탄압 의혹을 규탄하는 세계 각국 정부와 인권단체들의 비판을 의식한 행보다.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 개막일인 4일 성화 봉송 주자로 나선 토마스 바흐(오른쪽) 국제올림픽위원회(OC) 위원장이 중국 베이징의 올림픽 공원에서 성화를 넘겨받고 있다. 베이징동계올림픽은 이날 개막해 오는 20일까지 열릴 예정이다. 연합뉴스

중국이 여는 이번 올림픽은 2008년 과는 비교할 수 없다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워싱턴 소재 컨설팅 기업 '중국전략그룹'(CSG)의 크리스토퍼 존슨 대표는 "이번 올림픽은 새 시대의 올림픽이 될 것"이라며 중국의 메시지는 "'우리는 여기 있으니 (세계가) 익숙해져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프랑스 엠리옹 경영대학원의 스포츠 전문가인 사이먼 채드윅도 이번 대회에서 중국의 목표는 "그저 스스로 만족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에 힘과 위신, 우월성을 보여주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중국의 올림픽 관련 투자는 2008년과 비교해 대폭 줄었다. 중국은 2008 베이징 하계올림픽 당시 400억 달러(약 48조원) 이상을 투자했으나, 올해 올림픽의 공식 예산은 19억 달러(약 2조3천억원)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이미 초강대국 지위에 올라섰기에 대규모 스포츠 행사 개최를 통해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는 데 대한 관심이 줄어든 결과로 해석했다.

WSJ은 14년 전과 같은 것이 있다면 이번 올림픽 개막식의 연출자가 2008년 베이징 하계올림픽 개막식 연출을 맡았던 중국 영화감독인 장이머우라는 점 정도라고 꼬집었다.

장 감독은 이번 개막식에서 시진핑 중국 주석이 자주 사용하는 말인 '인류 공동체'를 표현할 계획이다. 그는 중국 국영 언론 인터뷰에서 "세계에서 중국이 갖는 위상과 이미지가 (2008년과) 완전히 달라졌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