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론새평] 선관위의 바로서기

입력 2022-02-02 12:38:26 수정 2022-02-02 15:45:44

남영찬 법무법인 클라스 대표변호사

남영찬 법무법인 클라스 대표변호사
남영찬 법무법인 클라스 대표변호사

조해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상임위원을 둘러싼 사태는 극적이다. 하이라이트는 설립 60년 선관위 역사상 처음으로 전체 구성원이 조 상임위원의 사퇴를 요구한 점이다. 헌법기관 전체 구성원들이 대통령 인사에 반기를 든 것이다.

조 위원은 '조해주 사태'를 '일부 야당과 언론의 정치적 비난 공격'으로 치부하면서, 선관위가 짊어져야 할 편향성 시비와 후배들의 아픔과 호소를 외면할 수 없다는 사퇴의 변을 남기고 물러났다. 사태의 본질을 외면한 비겁한 퇴장이다. 청와대는 선거의 임박성과 청문회 소란 우려로 처음 사의를 반려했으나 '일신상의 이유'로 재차 사의를 표명함에 따라 이를 수용했다고 발표했다. 사태의 본질을 가린 연막이다.

'조해주 사태'의 본질은 명확하다. 선관위의 헌법기관성을 수호하기 위한 내부 항거이다. 선거관리위원회는 이승만 정권의 3·15 부정선거로 촉발된 4·19혁명으로 쟁취한 헌법기관이다. 정치사적 경험과 국민의 규범 의식에 비춰 헌법기관으로 격상하는 것이 선거관리의 헌법적 책무를 가장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는 국민의 결단이었다.

헌법은 옮음과 기본의 이념하에서 부단한 실행을 요하는 행위 계획이다. 그래서 대통령은 취임 시에 헌법을 수호할 것을 선서한다. '공정'은 헌법이 선거와 국민투표와 관련해 규정한 가치이자 기본 원칙이다. 대통령의 선거 캠프에서 특보로 일한 인사를 중앙선관위 위원으로 임명한 것 자체가 헌법 정신에 어긋났다. 사태 이후 중앙선관위원장의 발표처럼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친 위원을 위원회에서 상임위원으로 호선하는 관례는 선관위의 독립성을 위해 존중'되어야 마땅하다.

조 상임위원 취임 이후 공정성과 중립성에 반하는 일들이 다반사로 일어났다. 그 상징적인 예가 전직 시장들의 성추행 사건으로 실시된 지난해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와 관련된 결정이다. 선관위는 '보궐선거 왜 하죠?' '내로남불' 같은 표어를 금지했다. 그 문구들이 특정 정당을 쉽게 유추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특정 정당의 지지를 유도하는 것임이 명백한 '일(1)합시다' 캠페인은 허용했다. 누가 보더라도 상식과 공정에 반한다. 금지와 허용의 구분이 내로남불이다. 아무리 능란한 법 기술자라도 합리적 기준을 설명할 수 없어 보인다. G11 국가의 헌법기관에서 일어난 현실이라고 믿기 어렵다.

이런 행태가 쌓여 헌법기관임을 자부심으로 여기는 선관위 구성원들의 공분과 위기 의식을 불러일으켰고, '조해주 사태'로 임계점을 넘어섰다. 선관위 내부 통신망의 글들이 이를 증명한다. '선관위가 과연 헌법기관으로 존재하는 건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수십 년 쌓아온 선관위 공정성을 훼손했다' '국민 신뢰 잃으면 개헌 때 행안부 선거관리과와 지자체로 찢어질 것'이라는 글 등이 그것이다. 정확한 진단이다.

사실, 선거관리 기관은 해당 국가의 정치‧문화적 산물이다. 연방 내무부장관이 임명하는 독일 연방 선거관리위원장은 연방 통계청장이 겸임한다. 통계청 직원들과 물적 시설을 활용해 선거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 효율적이라 하여 굳어진 관행이다. 연방 선거관리위원장이 국민 중에서 위촉한 위원들로 구성된 연방 선거관리위원회는 정부 기구가 아닌 사적 자치단체이다. 그래도 독일의 선거관리는 누구의 지시도 받지 않고, 법과 원칙에 충실하다. 선거관리위원회의 활동은 공개회의에서 결정되고 일반에 공개하는 관계로 국민의 감시하에 있다.

선관위 전체 구성원의 사퇴 요구는 선거에 관한 헌법상의 옳음과 기본을 지키려는 결기였다. 그 뜻이 바로 서느냐는 한 달 남짓 후로 다가온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보궐선거의 공정성 확보에 달려 있다. 다시는 선관위의 헌법기관성을 훼손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러면 사태의 파장이 어디로 튈지 모른다. 정치에 오염된 선거관리위원회의 구성과 운영을 성숙한 국민에게 돌려주어야 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