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습니다] 이동군(군월드 대표)의 아버지 고 이재형 씨

입력 2022-01-27 13:30:00 수정 2022-01-27 18:01:15

저희 삼남매 데리고 도랑에서 미꾸라지 잡아 손수 매운탕 끓여주셨지요

이동군 군월드 대표의 어린시절 가족 사진. 사진 윗줄 오른쪽이 이 대표의 아버지 고 이재형 씨, 사진 아랫줄 왼쪽 첫 번째가 이 대표. 이동군 대표 제공.
이동군 군월드 대표의 어린시절 가족 사진. 사진 윗줄 오른쪽이 이 대표의 아버지 고 이재형 씨, 사진 아랫줄 왼쪽 첫 번째가 이 대표. 이동군 대표 제공.

"저는 32년생, 올해 아흔입니다. 제 나이 마흔이 넘어 찾아온 늦둥이 막내가 걱정됩니다.
밥은 잘 챙겨먹고 다니는지, 화목한 가정생활 하고 있는지….

저는 일제 강점기를 지나, 십대 후반에 입대해 주한 미군부대에서 군복무를 했습니다. 베트남 전쟁, 격동의 산업화 과정을 겪으며 고향 대구에서 보냈습니다.

늦게 찾아온 막둥이는 손자를 보는 것처럼 그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어느 부모라도 자식 생각하는 마음은 한결같겠지요. 동군아, 눈앞에 안 보인다고 사라진 게 아니다. 네가 힘들 때마다 너를 업고 그 강을 함께 건너고 있다는 사실 잊지 말고 건강 잘 챙기거라."

아버지, 떠나신 지 3년이 다 돼 갑니다. 저희 삼남매를 기르시느라 고생만 하다 가신 것 같아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이 큽니다. 저와 세대 차가 남에도 불구하고 친구처럼 편했던 것은 함께 나눈 추억이 뇌리 속에 강하게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하교를 하고 집에 돌아오니 천사처럼 하얗고 귀여운 토끼가 있었습니다. 그날부터 저는 고사리손 같은 손으로 토끼풀을 찾아 토끼 먹이를 주고 길렀습니다. 때론 토끼풀 사이 행운의 네잎크로버를 찾는 날이면, 조심스레 책 사이에 꽂아 잘 말리곤 했습니다.

어느 날 하교 후 청천벽력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토끼 몇 마리가 죽어 있었습니다. 기르면서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토끼 새끼들이 너무 귀여워 자주 만진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어미 토끼가 스트레스를 받아 새끼들을 물어 죽인 것이었습니다.

마을 뒷산 토끼 무덤을 만들어 묻어주고 오는 길,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어느 날엔가 집에 토끼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대신 염소가 멀뚱멀뚱 저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어린 저는 새끼 토끼들을 잃은 슬픔보다 염소를 만난 기쁨에 도취됐습니다.

"토끼를 판 돈으로 염소를 데려왔다 잘 길러 보거라." 토끼를 팔아 염소를 사 오신 아버지의 경제교육은 말 그대로 산교육이었습니다.

구슬똥을 싸는 염소들이 신기했습니다. 되새김질하며 풀 뜯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신기해서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누님의 고등학교 졸업식이 다가올 무렵이었습니다. 그 시절 고등학교 졸업식에는 양장을 입고 오는 게 유행이자 트랜드였습니다. 저는 염소를 장에 판 돈으로 필요한 물건을 사고, 누님에게는 양장을 선물 했습니다. 누님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아직도 눈앞에 선합니다.

아버지는 늘 내 무덤이 파헤쳐지는 대구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손주 녀석들이 맘껏 뛰놀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 미래지향적인 곳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품고 계셨습니다. 때로 나라 지도자들이나 리더들이 잘못을 할 경우 질책하기보다 그들의 사연을 먼저 헤아리고 "믿고 존중해야 함께 잘 살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삼남매를 데리고 도랑에서 미꾸라지를 잡아 손수 매운탕을 끓여주시던 손, 강가에서 목욕을 했던 추억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시대가 변해 체험하기 어려운 것을 공유하고자 했던 아버지의 선견지명이었던 것입니다.

그 시절 아버지와 함께한 체험은 훗날 저와 10년, 20년 이상 연배 차이가 나는 분들과 만나도 스스럼없이 교류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중요한 자산이 됐습니다.

아버지는 집안 김장날이면 두손 두팔 걷어 부치고, 장보기부터 "이런 건 힘 좋은 남자들이 나서야 한다"고 교육하셨습니다.

며느리가 될 사람에게 손수 밥상을 차려주신 아버지. 저는 아버지의 끝없는 사랑에 몸 둘 바를 몰랐습니다. 날씨가 추워지는 계절이면 아버지의 소고기국이 떠오릅니다. 제가 먹은 음식 중에 가장 맛있었던 음식이 아버지가 손수 끓여주신 소고기국입니다. 그 깊은 맛이 우러나는 소고기국을 찾고 싶어 유명한 식당 여러 곳을 서성였습니다만 아버지의 손맛이 나는 소고기국은 세상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경상도 특유의 무뚝뚝함 속에 묻어나온 부정(父情)을 이 글을 쓰면서 다시금 느껴봅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도 함께 인사를 올렸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아버지, 생전 한 번도 드리지 못한 말로 인사를 올립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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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문이 유명을 달리하신 지역 사회의 가족들을 위한 추모관 [그립습니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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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 053-251-1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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