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수정 지음/ 문학동네 펴냄
201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소설 부문 당선자인 위수정 작가가 첫 소설집 '은의 세계'를 냈다. 표제작 '은의 세계'가 맨 앞 작품으로 고개를 내민다. 현대문학상과 김유정문학상 후보작에 이름을 올린 '풍경과 사랑', 중편소설 '무덤이 조금씩' 등 총 여덟 편의 작품이 실렸다.
그에게 '등단작가' 작위를 내린 '무덤이 조금씩'에 우선 무게감이 실린다. 작품은 영국 런던의 하이게이트 공동묘지에 간 커플, 인영과 진욱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한 연극배우의 무덤 앞에서 잠이 든 두 사람은 누군가에게 피사체로 노출된다. 커플을 인상적으로 보고 사진을 찍은 사람은 현지인 헨리. 잠든 두 사람은 자신의 사진 전시에 잘 어울리는 모델이었던 것이다.
다만 전시 제목이 '죽음은 조금씩 움직인다'였던 건 인영과 진욱도 몰랐다. 위 수술 직후 떠난 여행에서 후유증에 시달리는 진욱, 그에게 지쳐 다소 쇠약해 보였을 인영은 헨리의 눈에 죽음을 향해 가는 사람들처럼 보였던 것이다.
중편소설인 '무덤이 조금씩'은 인영과 진욱을 헨리의 집으로 데려간다. 그리고는 인영, 진욱, 헨리의 파트너인 조슈아의 시선을 나눠 담으며 소설을 펼쳐간다. 동일한 상황을 세 사람이 어떻게 인식하는지 묘사된다. 예상했겠지만 이들은 완전히 다른 기억의 파편을 갖고 있다.
헨리의 집에서 식사를 하게 된 커플은 조슈아의 눈에 아주 어색해 보인다. 커플끼리도 굳이 영어로 대화한다거나, 화장실에 간다면서 침실에 올라간다거나, 갑자기 알아듣지 못할 한국어를 내뱉는 것들은 조슈아에겐 기이한 행동으로 비친다.

표제작 '은의 세계'에서도 등장인물들은 주거니 받거니 다소 괴상한 행동들을 이어간다.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자연스러운 행동은 지켜보는 이의 눈에 비정상으로 보인다.
엘리베이터에 함께 갇힌 우연을 인연으로 이은 하나와 지환 부부는 명은을 청소 도우미로 고용한다. 명은은 하나의 사촌동생이다. 팬데믹으로 생활이 어려워진 명은의 형편과 자신들의 필요가 겹쳐 내린 결정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명은의 행동은 정상의 범주에서 조금씩 벗어난다. 컵라면이 먹고 싶어 몰래 먹다가 고객의 집에서 해고된다든지, 베란다 창문 아래로 고개를 내밀어 한참 동안 땅을 바라보는 행동은 어색하다 못해 위험해 보인다.

나머지 작품에서도 등장인물들은 대체로 자연스럽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각자의 욕망을 발산하는 데 거침이 없다. 거리낌 없이 말하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작품 '안개는 두 명'에서 포착된 '거짓말 게임'은 말하려는 욕구가 분출되는 무대가 된다. 진실 게임과 비슷하지만 거짓말만 해야 되는 게임이다. "거짓말이야"라고 하면 쿨하게 넘어가게 되는 경연장이다. 그렇기에 스스럼없이 진실을 말해도 상관없어진다. "언제가 가장 좋았어"라고 물을 때 "네가 내 생일을 잊었을 때"라며 가장 섭섭했던 순간을 답해도 되는 것이다.
거리낌 없는 행동은 '합법적 자유의 근원적 성찰'로 연결된다. 연초를 집단으로 말아 피우는 장면이 반복돼 나오는 'Take me somewhere nice', 어떤 알약을 삼킨 뒤 다른 감각을 끌어오는 '음악의 도움 없이'에서는 "내 몸은 내가 알아서"라는 환청이 들리는 듯하다.
최은미 소설가는 표사에서 "위수정의 소설들은 알 듯하면서 영영 모를 것도 같은 인물들의 미묘한 직설을 통해 마음의 난리들을 곳곳에 부려놓는다"고 했다. 332쪽, 1만4천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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