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규의 행복학교] 타지 않을 정도로, 얼지 않을 정도로

입력 2022-01-21 12:30:00

최경규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 시선이 멈춘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도 아니고, 재미있는 사극 드라마도 아니다. 평범한 사람이 사회에서 벗어나 혼자 산 속에서 살아가는 다큐멘터리식 프로그램이다. 방송을 처음 보던 날, 시청자들이 과연 많을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현재까지 10년간 진행되는 장수프로그램으로 시청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이 프로그램의 출연자들을 보면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자연으로 회귀(回歸)를 꿈꾸는 인간의 모습, 그 이면에는 사람들과의 이별(離別)이 있다. 허나 인간에게는 본능적으로 항상성(恒常性)이 있어 어지간한 일이 아니고서는 원래대로 돌아가려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즉 살고 있는 도시를 이유 없이 떠나려 하지 않고, 즐겨가는 여행지를 앞으로도 갈 것이라는 예측을 충분히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항상성의 트랙에서 벗어날 만큼의 큰 충격을 받지 않고서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는 산속으로 들어갈 만한 용기는 좀처럼 내기 어려운 법이다.

그들의 못다 한 이야기들은 일렁이는 눈망울에서 읽을 수 있다.

사람들이 싫어서... ...

사람들로부터 받은 상처로 몸에 병이 와서... ...

모두 자연인 대학 출신인 것 마냥, 내가 읽은 그들의 대답은 동일하다.

인간(人間), 사람과 사람이 기대고, 서로가 듣고 말한다는 한문의 참뜻과는 달리, 요즘 사람들은 기댈 어깨나 마음을 좀처럼 내지 않고, 남의 이야기를 귀담아들으려 하지도 않는다. 가속화해서 빠르게 변화되는 사회, 경쟁구도, 양극화와 불균형이 심화될수록 사람들은 함께하고자 하는 여유도 점점 줄어든다. 그러기에 어쩌면 사람이지만 사회생활 속에서 희노애락의 감정 표현 없이 생존을 위한 가면을 쓴 메타버스 속 아바타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나 요즘과 같은 코로나 시대, 대면할 기회는 줄어들고, 무미건조한 이메일이나 SNS로 대신하는 오늘, 따스한 인간관계를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Text로 전하는 글에는 감정이 없다. 다만 그 글을 읽는 당신 마음의 감정에 따라 그 글이 좋게도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무례한 글로도 해석될 수 있다.

사람 간의 관계가 힘든 일은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다. 이직하는 직장인들에게 물어본 설문조사에서 매년 바뀌지 않는 부동의 1위는 바로 인간관계가 힘들어서였다. 또한 이혼과 청소년 일탈의 문제에서도 인간관계, 즉 가정에서의 관계대립이 바로 가장 큰 문제점으로 대두되고 있다.

◆건전한 인간관계,건강한 거리두기

인간관계가 힘들어지는 시기는 언제일까? 상대를 내 마음에 맞추려고 할 때부터이다. 이때부터 점차 인간관계는 힘들어진다. 내가 생각하는 프레임에 상대가 들어오면 내 기대치에 충족하므로 인간관계는 별문제가 없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상대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줄어들거나 아주 가까운 사이가 되어 상대를 존중하기보다는 내 마음에 맞추어주길 바라는 욕심은 커지게 된다.

에리히프롬의 '사랑의 기술'이라는 저서에는 "나는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이바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 자기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성장하고 발달하기 바란다"는 대목이 있다.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이 있다면 나의 이기적인 태도를 내세우기 보다 상대방이 성장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그가 잘 성장할 수 있도록 지켜봐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처럼 사랑이나 인간관계는 소유나 욕심, 일방적인 희생이나 고통을 감당하기 보다 서로의 건전한 방식을 통해 성장하고 발달하는 것이야말로 관계를 오래 지속될 수 있다고 본다.

내 마음의 프레임이 부드러워지지 않고는 상대에 대한 마음이 지옥일 수밖에 없다. 사랑할수록 외로워진다는 말에 한 번 정도 공감을 해 본 이라면 더욱더 이해할 것이다. 사랑할수록, 누군가와 더 가까워질수록 그와의 보내는 시간은 많아지고 자신을 더 잘 알 거라는 착각을 하게 된다. 그러는 사이 내 마음 같지 않은 그를 볼 때 진정한 사랑보다는 소유나 욕심이라는 감정에 무게중심이 기울 때 스스로 마음을 지옥으로 만드는 것이다. 한 쪽 마음이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면서 관계 또한 삐그덕대고 틀어지기 시작한다.

사랑하는 사람, 가족 간의 관계가 힘든 사람들의 특징은 하나같이 혼자만의 독심술을 부린다는 것이다. 상대의 마음을 혼자만의 해석으로 판단해버리고 그 판단은 서로에게 오해를 낳는다. 또한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자기 자신의 생각 보다 상대의 시선 위에서 자신을 맞추어 버린다. 자신을 사랑하기 보다는 사랑하는 이가, 가족이 좋아하는 것에 모든 것을 맞추고 자신을 희생시키기 시작한다. 그러한 시간이 지속될수록 자존감은 떨어지고 내 마음 같다 생각했던 상대방의 조그마한 변화에도 크고 작은 상처로 힘들어한다.

마음이 편해지기 위해, 건전한 인간관계를 위한 한 가지 솔루션이 있다. 바로 건강한 거리두기이다. 코로나로 인해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듯이 우리 마음에도 타인과 감정의 거리는 적당히 두어야 한다.

◆ 사람을 대할 때는 불을 대하듯 하라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가 쓴 고슴도치 이야기가 생각이 난다. 두 고슴도치는 너무 사랑하였으나 안을수록 길고 뾰족한 가시가 찔러 서로에게 상처를 냈다. 그렇다고 떨어져 있으면 온기를 나눌 수 없어 추위에 떨어야했다. 그러던 그들이 생각한 방법으로 적정한 거리를 두고 너무 얼어 죽지 않을 정도의 거리를 두며 체온을 유지하고 사랑을 했다는 이야기이다. 서로를 존중하고 자신의 자존감을 유지하는 적절한 거리감은 우리 인간관계에서 필수적이다. 적절한 거리감이란 어떤 것일까?

그리스의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사람을 대할 때는 불을 대하듯 하라

다가갈 때는 타지 않을 정도로,

멀어질 때는 얼지 않을 정도로'

라는 말을 남겼다.

적당함이란 거리는 존중과 예의로 바꿔 표현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적당함이라는 것이 상처 받지 않기 위한 방어기제가 아니라 존중과 예의로 해석할 수 있다면 성숙한 인간관계로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산속으로 돌아간 자연인은 산과 자연에서 얻는 자유와 평화가 있다. 하지만 상처받지 않기 위해, 상처주지 않기 위해 두려워 혼자만의 생활을 택한 것에 고슴도치와 같이 얼어 죽을 정도의 외로움도 견뎌내야 한다는 사실도 부인할 수 없다. 세상에 내 마음 같은 사람이 없다는 법칙을 깨닫는 순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을 가질 때 인간관계가 어제보다 오늘은 더 행복하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될 것이다.

최경규

최경규 행복학교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