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악몽 2년] 이벤트 업체 대표가 대리운전, 퀵 기사로…"내 삶도 다시 찾고 싶다" 희망 품어
일용직 노동자로 일상은…
◆새벽에는 막노동, 저녁에는 술집에서 일하는 동철 씨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대학을 포기하고 20년 동안 자영업자로 살아온 권동철(38·가명) 씨. 경북 북부권에는 마땅한 일자리가 없다보니 주변사람들은 일찌감치 자신의 가게를 운영하는 동철 씨를 부러워했다.
그런 그에게 지난 2년은 되돌리고 싶지 않은 시간이었다.
안동시내 중심가에 호프집을 경영하고 있는 그는 코로나19 이전까지만 해도 새벽 3, 4시까지 자리를 꽉 채울 정도로 장사가 잘됐다. 밀려드는 손님을 받기 위해 직원들도 4, 5명은 상시로 근무했다.
하지만 지난 2년 동안 매출은 10분의 1로 줄어들었다. 보통 호프집은 저녁 식사를 하거나 두 번째 술자리부터 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오후 8시부터 손님이 몰려 새벽까지 손님이 이어진다.
그런데 정부의 방역조치가 강화될 때마다 가게를 열지 못하거나 손님이 들어오자마자 내보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장사는 되지 않아도 월급과 월세, 각종 유지비는 발생했기에 그는 모아둔 적금을 깨고 대출을 받아 가게 유지에 온힘을 기울였으나 지금은 막다른 골목에 서 있다고 한다.
동철 씨는 "고등학교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하고 있으니 20년이 넘은 것 같다"며 "장사를 하면서 어려움도 많았지만 지금처럼 가게 문을 못 열게 했던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시간이나 기회가 없어 더 답답하다"고 했다.
그는 최근 수년에서 십여년 함께한 직원들을 떠나보냈다. 월급이 밀리고 서로에게 본의 아니게 아쉬운 감정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동철 씨는 직원들이 조금만 참고 같이 어려움을 겪어줬으면 하는 마음이었고 직원들은 당장 자신들이 어렵기 때문에 불만이 생겼던 것이었다. 직원들 중 가정이 있는 사람도 있었고 학비를 충당하는 사람도 있는 걸 잘 알았지만….
그는 "좋은날 다시 보자고 말하며 직원들을 내보냈고 미안한 마음에 조금 더 돈을 보태줬다"며 "그렇게 내 월급의 일부를 떼어 내어 주니 나는 집에 고개를 들고 들어가지 못했다"고 말했다.
동철 씨는 다시 일어설 기회를 만들기 위해 새벽 인력시장을 나가게 됐다. 잠을 줄이고 조금이라도 돈을 벌어 가게와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인력시장에서 일자리를 구하기는 쉽지 않았다. 적잖은 나이, 부족한 경험이 '선택'을 방해했고, 동철 씨는 그 선택을 받고자 외국인들과 경쟁한다.
지난 9일 새벽 동철 씨는 운 좋게 한 초등학교 리모델링 공사 현장으로 출근하게 됐다. 그는 인력회사에 줄 수수료를 주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발걸음이 가벼웠다. 이곳에서 그는 철거된 폐자재 등 폐기물을 밖으로 끄집어내고 그걸 마대에 담는 일했다. 요령이 없고 서툴렀던 그는 날카로운 자재에 다치기가 일쑤였지만 내색하지 않고 일했다. 일이 끊어질까봐서 였다.
그는 "코로나 초기 착한 임대료, 재난지원금 등 그래도 우리에게 희망적이고 기댈 곳이 있을 것이라 믿었지만 현실은 너무 처참했다"며 "2년 동안 하루도 쉬지 못해 가족에게 너무 미안하지만 앞으로 이 생활이 얼마나 더 갈지 답답하고 눈물만 난다"고 했다.
◆김 대표에서 김 기사된 김태식 씨
김태식(39·가명) 씨는 지난해 여름 직장을 잃었다. 행사와 이벤트를 주로 하던 그의 회사가 경영난에 결국 휴업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인해 공공기관의 각종 행사가 끊기고 난 뒤 그는 결혼식, 비대면 교육프로그램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 난국을 헤쳐 나가려고 했지만 길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전세를 월세로 돌리고 대출을 늘려 직원들 월급을 챙겼고 그렇게 몇 달 버티다가 그 사정을 알게 된 직원들이 그에게 휴업을 권유했다.
태식 씨는 동종업계에 사람들이 일을 따내면 그 일을 도와주고 일정한 보수를 받고 있다. 일이 많을 때도 있지만 일주일에 한두 건 혹은 한 건도 없을 때면 그저 막막하기만 하다.
그는 몇 달 전부터 대리운전 기사로도 일하고 있다. 대학을 졸업한 뒤 이벤트업계 밥만 10년 넘게 먹어 경북에서는 그를 알아보는 사람이 많다.
태식 씨는 "코로나 때문에 시작한 대리운전이지만, 마스크를 늘 쓰고 있어 알아보는 사람이 없어 마음은 편하다"며 "종종 아는 분이 타면 왜 이걸 하냐는 질문에 당황해서 이런 말, 저런 말 횡설수설하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덜 배고파서 그랬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대리운전 시장도 상당히 어려워졌다고 한다. 이미 시장 자체가 포화상태고 정부의 방역단계가 높아지면서 한 기사가 하루에 1, 2건 콜 받기가 어렵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세 번째 직업인 퀵 서비스를 최근 시작했다. 주로 경북도청이 있는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배달 업무를 하고 있는데 새벽까지 일이 있어서 받는 돈이 쏠쏠하다고 한다. 아파트가 밀집돼 있어서 찾기도 쉽고 동선도 짧아 하루에 많은 건을 해낼 수 있다고 좋다.
그는 "'김대표'가 '김기사'로 살고 있지만 언젠가는 다시 김 대표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하루하루 열심히 살고 있다"며 "일상으로의 복귀가 이뤄지고 내 삶도 다시 찾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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