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문학상 수상 故 이순자 씨 유고집 '실버 취준기 분투기' 빛 본다

입력 2022-01-10 10:20:10 수정 2022-01-10 19: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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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문 2021 시니어문학상 수상…휴머니스트에서 4월 중 산문집·시집으로 각각 발간 예정
힘든 삶, 글쓰기 희망 놓지 않는 작가…62-65세까지 겪은 취업 경험담 기록
홈피서 인기 조회수 16만8천회 넘겨…생전 쓴 산문, 시 묶어 4월 출간 예정

故 이순자 씨의 생전 모습. 매일신문 DB
故 이순자 씨의 생전 모습. 매일신문 DB

매일신문 시니어문학상 당선을 알리며 매일신문이 이순자 씨와 나눈 대화
'제7회 매일시니어문학상' 시상식이 2021년 7월 21일 대구 대백프라자에서 열려 수상자들과 심사위원, 내빈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실버 취준생 분투기'를 기억하십니까."

지난해 11월 소셜미디어에서 이목을 끈 단편소설 길이의 논픽션 작품이다. 지난해 7월 매일신문 창간기념일에 맞춰 열린 '매일시니어문학상' 논픽션 부문 수상작이기도 하다. 작가는 늦은 나이에 문예창작학과 학도가 됐던 이순자 씨였다.

원고지 130매 분량의 짧지 않은 글이었음에도 독자들의 반향은 뜨거웠다. 예순을 넘긴 나이에 청소부, 요양보호사, 어린이집 보조교사 등 4년간 여러 일터를 전전해야 했던 노인 일자리의 현실을 잘 보여줬다는 평이 주를 이뤘다.

그런데 작가인 이순자 씨가 지난해 7월 시니어문학상을 수상한 뒤 한 달 만인 8월 30일 운명을 달리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녹록지 않은 현실에서 꺾이지 않으며 희망을 놓지 않은 작가의 삶, 그리고 세상을 향한 따뜻한 시선에 감동한 독자들의 추모가 이어졌다. 유고집을 내고 싶다는 출판사들의 문의도 잇따랐다.

이후 그의 산문집과 시집이 나오게 됐다는 소식이다. 이에 맞춰 그간의 이야기들을 정리해봤다. 고(故) 이순자 씨의 영면을 빕니다.

◆'2021년 11월 16일' 무슨 일이?

이 작품이 소셜미디어에서 떠들썩하다는 걸 안 건 지난해 11월 16일이었다. 작품을 책으로 내고 싶다는 출판사의 연락 때문이었다. 시니어문학상 수상작품의 저작권은 매일신문에 있었다.

소셜미디어에서 부는 미풍인 줄 알았다. 매일시니어문학상이 2021년까지 7회째 진행되던 행사였지만 출판사에서 따로 연락이 오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런데 다음 날이 되자 심상치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또 다른 출판사에서 연락이 온 것이었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대형출판사였다. 그때부터 독자들의 문의전화까지 쏟아졌다. 내용은 한결 같았다.

"이순자 씨의 생사를 확인해 달라."

수상작품을 다시 살폈다. 수상작 원문에 1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하나같이 "심금을 울린다"는 내용이었다. 매일신문 디지털국에 확인하니 조회수가 평소의 1천 배를 넘었다. 이날 검색어 순위 1위가 '이순자'였을 정도였다.

제31회 대한민국장애인 문학상 미술대전 수상작 전시회 안내 포스터. 이순자 씨의 이름이 가운데 보인다.
매일신문 시니어문학상 당선을 알리며 매일신문이 이순자 씨와 나눈 대화

기억을 더듬었다. 이 씨는 어릴 때부터 있은 청각장애로 줄곧 메신저로 대화를 주고받은 기억이 났다. 그제야 그에게 메신저로 연락했다. 두어 시간이 지나도 답이 없었다. 전화를 걸었다. 없는 번호라는 안내음만 나왔다.

그리고 한참 후, 이 씨 메신저로 답이 왔다. 자신은 딸이라고 했다. 어머니는 8월 30일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고 했다. 갑작스레 돌아가시면서 어머니를 기억하시는 이들을 위해 카카오톡은 남겨두고 답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런 와중에 매일신문에서 연락이 와 감사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딸은 당시 상황을 전해줬다.

"매일시니어문학상 논픽션 부문 수상작이 되면서 매우 기뻐하셨다. 이전에 심장이 좋지 않아 수술을 받았었는데 2차 수술을 앞두고 시상식에 꼭 다녀오고 싶다 하셨다. 특히 천주교 신자(세례명 로사)로 천주교대구교구에서 발행하는 매일신문 주최 문학상을 수상하게 돼 더욱 참석 의지를 보이셨다." (실제 이 씨의 납골당에는 등단의 계기가 된 솟대문학상 상패와 매일시니어문학상 수상 상패 두 개가 가족사진과 함께 들어가 있다.)

기자에게도 선명한 기억이 있다. 시상식이 있던 지난해 7월 21일 시상식장에서 만난 이 씨에겐 어떤 불편함도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모자를 쓴 채 단아했고 나이대보다 훨씬 젊어 보여 '실버 취준생 분투기'의 내용이 본인 이야기가 맞나 싶을 정도였다.

◆'실버 취준생 분투기'는?

"이 글은 내가 62세부터 65세까지 겪은 취업 분투기다"로 시작해 "이제 시작이다. 정진하리라 죽는 날까지. 이른 결심을 축하받고 싶다"로 끝맺은 '2021 시니어문학상 논픽션 부문 수상작 '실버 취준생 분투기'는 이순자 씨가 청소부, 요양보호사, 어린이집 보조교사 등 4년간 여러 일자리를 경험한 기록이다.

평생 하고 싶던 문학 공부를 하기 위해 문예창작학과에 입학했지만 호구지책이 먼저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일자리 전선에서 물러나자 기초수급자가 되었고, 그랬기에 본격적으로 글에만 몰두할 수 있었다. 그가 원룸 다리미판 위에 노트북을 펼쳐놓고 쓴 글은 대한민국을 탄식하게 만들었다.

조선일보, 한겨레 등 국내 유수의 언론이 진영 논리 없이 그의 글을 다뤘다. 이들이 매일신문 시니어문학상 논픽션 부문 수상작임을 알리면서 매일신문 홈페이지를 통해 '실버 취준생 분투기'를 읽은 이들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누적조회수는 16만8천회를 넘겼다. 매일신문 시니어문학상 논픽션 부문 수상작들의 누적조회수 평균이 3천회 정도라는 걸 감안하면 50배 이상 많은 수치다.

제31회 대한민국장애인 문학상 미술대전 수상작 전시회 안내 포스터. 이순자 씨의 이름이 가운데 보인다.

◆유고집으로 빛 보는 이순자 씨의 시집과 산문집

'실버 취준생 분투기'는 산문집의 한 작품으로 실린다. 이순자 씨의 유족과 출판사 휴머니스트는 최근 출간 계약을 맺고 이순자 씨의 유고집을 내기로 합의했다. 4월 출간 예정이다.

유고집은 산문집과 시집으로 나뉘어 독자를 만난다. 산문집에는 '실버 취준생 분투기'를 비롯해 그가 생전에 쓴 30편 안팎의 산문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

출간 계약을 한 휴머니스트 측은 "'실버 취준생 분투기'로 주목받긴 했지만 삶을 바라보는 시각과 태도가 녹아든 글들이 많다. 산문집의 방향도 자연인 이순자에 초점을 둘 예정"이라고 밝혔다.

시집도 함께 빛을 본다. 만학도로 문예창작학과 공부를 시작했던 만큼 그가 남긴 글에는 60편에 가까운 시(詩)도 있었다.

유족 측은 "진심어린 추모가 담긴 많은 댓글을 보면서 어머니의 글과 삶이 이 시대 사람들에게 새로운 통찰을 던지며 위로와 희망을 전한다는 것을 깊이 느꼈기 때문"이라며 "일흔의 나이에 작가로서의 꿈을 꾸는 것에 열렬한 응원을 보내주시는 모습에서 어렵사리 출간을 결심하게 되었다"고 전했다. 청각장애로 소통에 대한 깊은 갈망이 있던 故 이순자 씨가 진정 원했던 소통이 이루어지는 걸 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편 휴머니스트 측은 시집과 관련해 "작가의 시에서 삶과 마주하는 작가만의 따뜻한 시선을 느낄 수 있었으며 그 문학적 성취 또한 가치가 있다고 보았다. 시집과 산문집 모두 출판의 의의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