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일신문사는 경주시(시장 주낙영)와 함께 '신라 왕의길 영상투어 - 새로운 신라를 연 문무대왕'을 총 2부로 제작, 매일신문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개했다.
삼국 통일을 완수하고 통일국가 수성의 기반을 마련한 문무왕의 자취를 찾아 떠난 이번 영상 여행은 극작가 겸 배우 지안과 대구답사마당 이승호 원장이 함께 했다.

◆'태종무열왕릉' 왕권의 정당성을 부여하다
경주에서 문무왕의 자취를 찾을 수 있는 또 다른 곳은 서악동 고분군이다.
서악동고분군에는 통일신라 석비를 대표하는 중요한 문화유산인 국보 제25호 '태종무열왕릉비'가 있다. 석비의 형식이나 비액(碑額)의 새김이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것으로, 이후 이를 본보기로 우리나라 석비의 형식이 전개됐기 때문이다. 이러한 형식은 고려 초까지 우리나라 석비의 전형으로 여겨져 주요한 전통이 됐다.
삼국통일 직후인 이 시기 석비는 귀부(龜趺)와 이수(螭首)를 갖추었다. 귀부는 비석을 받치는 거북 모양 받침돌이고, 이수는 용이 조각된 비석 덮개돌이다. 이후 '귀부-비신(碑身)-이수'를 갖춘 석비가 전형적 양식으로 정착된다.
당대 만들어진 비석을 통해 피장자가 확실하게 인정되는 신라왕의 무덤이기도 한 무열왕릉을 중심으로 일련의 무덤이 조성돼 있다. 그 반대쪽으로는 김양의 묘와 김인문(혹은 김유신)의 묘가 있다. 무열왕릉의 배장묘(陪葬墓)로 추정되는 김양과 김인문의 묘는 현재 도로로 인해 단절된 모습이지만, 본래 하나의 능역으로 조성됐다고 한다.
무열왕릉 뒷쪽 4기의 무덤 주인공은 무열왕의 선대 조상인 법흥왕, 진흥왕, 진지왕, 문흥대왕(무열왕이 즉위하던 해 아버지 용춘을 문흥대왕으로 추봉)일 것으로 학계는 추정한다. 개별 무덤의 주인공이 누구인지에 대해선 이견이 있으나 이들 4명이 이곳 무덤의 주인이란 것에 대해선 대체로 동의하는 분위기다.
사실 서악동 고분군에 무열왕릉을 더한 5기의 무덤은 중국의 묘제와 관련이 있다. 중국 『예기』(禮記) 왕제편(王制篇)의 천자 7묘, 제후 5묘에 대한 규정을 따른 것으로, 유교이념에 의거한 정치・문화개혁을 위해 무열왕이 처음 기획했다. 무열왕은 당과의 관계를 위해 스스로 제후국을 자처하며 5묘제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의 아들 문무왕이 지금의 자리에 아버지 무열왕의 무덤을 쓰면서 완성됐다. 이 시기 5묘제 도입은 '새로운 왕실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조치'로 이해할 수 있다.
주보돈 교수는 "진골 출신 왕위계승의 당성을 보여주면서 새로운 시대가 출범한다는 것을 알리려는 문무왕의 선언적 의미가 담겨 있다"고 말했다.

◆나라를 지키는 큰 용이 되다 '문무대왕릉'
문무왕이라고 하면 대부분 감은사와 수중릉인 문무대왕릉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구전으로 전해져오던 문무대왕릉은 1967년 사적으로 지정됐다.
문무왕은 당의 침략을 물리치고 삼국통일을 이룩한 5년 뒤인 681년(문무왕 21) 7월 1일 56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681년 문무왕이 세상을 떠나자 그의 아들 신문왕은 선왕의 유언에 따라 동해의 큰 바위에 장사를 지냈다. 감포 앞바다에서 200m 가량 떨어진 사적 158호 대왕암에서 장사를 지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바위로 둘러싸인 대왕암 중앙에는 남북으로 길게 넓은 돌이 놓여 있는데, 돌 밑에 문무왕의 유골이 봉안됐다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신문왕이 문무왕을 위해 지었다는 감은사 터는 대왕암에서 2km 가량 떨어져 있다.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대왕암이 바라보이는 곳에는 이견대가 있다.
『삼국유사』 만파식적조 주(註)에 인용한 '감은사 사중기(寺中記)'에는 감은사 창건에 관한 기록이 담겨 있다. 문무왕이 왜병을 진압하기 위해 이 절을 처음 지었으나 완성하지 못하고 죽어 바다의 용이 됐다. 그 아들 신문왕이 682년(신문왕 2)에 절을 완성했다. 금당 섬돌 아래에 동쪽을 향해 구멍 하나를 뚫어 두었는데 용(문무왕)이 들어와 돌아다니게 하려고 마련한 것이다. 왕의 유언으로 유골을 보관한 곳을 대왕암이라고 하고 절의 이름은 감은사로 했다. 뒤에 용이 모습을 드러낸 곳을 이견대라고 했다는 내용이다.
문무왕은 평소 지의법사에게 "짐은 죽은 뒤에 나라를 지키는 큰 용이 되어 불법을 받들고 나라를 수호하는 것이 소원"이라며 죽은 뒤에 호국대룡(護國大龍)이 될 것을 늘 염원했다고 한다. 경주시 문무대왕면 봉길리 앞바다에서 죽어서도 나라를 지키겠다는 문무왕의 뜨거운 나라 사랑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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