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축제 그림 그리다 15년 만에 고향 대구에서 작업
주민 참여율 높아…선진 문화도시로서 기초가 탄탄해
갑작스런 거리두기 강화에 취소된 작품 많아 '아쉬움'
"주민 참여는 좋은 축제의 기본 자산입니다. 5천 명이 넘는 이들이 만들어낸 축제는 전국적으로도 드물어요."
레이저, 형광돌, 미러볼, 네온사인 등이 내는 온갖 빛이 각자의 임무인 양 수성못을 밝히고 있다. 수성못 둘레 2km가 빛에 점령당했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그리고 그 사이를 흥미롭게 지켜보며 지나는 시민들이 있다. 자신이 만든 거라며 자랑하는 아이들의 소리가 섞인다.
10일부터였다. 시민들이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수성못은 빛의 옷을 입고 있다. '미러볼 유니버스', '시간 터널', '빛의 여정' 등의 작품으로 또 한 번 '사진맛집'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올해로 3회째를 맞은 수성빛예술제의 큰 그림을 그린 조형제 총감독을 23일 수성못에서 만났다. 그가 기획한 전시물과 주민들이 합력해 만들어낸 작품들은 다음달 8일까지 시민들과 만난다.
조 감독은 수성못을 다시 만난 게 35년 만이라고 기억했다. 청구고를 졸업한 뒤 경북대 경영학과에 들어갔던 1986년이다. 그가 대학 신입생 때로 수성호텔만 법이산 중턱에 있던 시절이다. 대구에서 축제 무대에 관여한 것도 15년 만이었다. 2002년 대구유니버시아드 시민위원회 문화국장 활동이 끝이었다. 이후 '하이서울페스티벌'과 '궁중문화축전' 등 대형 축제행사의 연출, 총감독으로 활동을 이어왔다. 올해도 '세계문화유산축전'의 만장굴 행사를 담당했다. 15년 만의 소회는 한 마디로 '변화'였다.
"대구는 정말 많이 바뀌었습니다. 무엇보다 시민의식이 다릅니다. 선진 문화시민입니다. 예술가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장이 마련돼 있습니다. 네트워크도 활발합니다. 시스템이 만들어졌다는 얘기지요. 그리고 총감독에게 전권을 주고 자율성을 주는 지자체가 많지 않습니다. 책임을 다할 수 있는 분위기죠."

그는 실경미디어퍼포먼스 전문가다. 자연을 무대로 삼아 첨단 기술을 활용한 예술작품을 선보인다. 물을 최대한 활용한다. '궁중문화축전'이 열린 경복궁 경회루에서도 그랬다. 수상무대, 수상객석 등을 만들었다. 수성빛예술제 개막공연 때 수성못에 거북선 모양의 배를 띄운 건 그래서 자연스러웠다.
미디어를 활용한 융복합콘텐츠를 지향하는 그는 수성못에서 바람의 강도를 매일 잰다고 했다. 랜드마크라 할 수 있는 '미러볼 유니버스'가 물에 뜬 채로 고정돼 있기 때문이었다. 강할 때는 초속 18m의 바람(소형 태풍급 풍속)이 분다고 했다. 그는 "어떤 형태로든 수성못에서 축제를 이어간다면 자연 조건을 활용하는 방안을 고심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번 축제에서 시민들의 관심을 가장 많이 끈 곳은 '빛의 여정' 100m 구간이다. 수성못 서편 수성랜드 쪽이다. 시민들의 발길이 멈춰 바글거린다. 형광돌에 시선이 붙잡힌다. 창작 욕구가 곧 솟아나는지 저마다의 모양을 만들고는 사진으로 추억을 담아간다.
소수이긴 하지만 주워가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자체 발광 물질이 아니라는 게 함정이다. UV 조명이 없으면 무소용. 지난해 창경궁에서 열린 궁중문화축전에서도 활용했던 소재다. 조 감독은 "주워가는 걸 감안하고 있다. 서울보다 대구가 분실 분량이 적다"고 했다.

그러나 축제는 수성못 주변 식당가들과 함께 위드코로나 철회의 직격탄을 맞았다. 식사 후 차 한 잔, 술 한 잔 이후 밤산책을 겸해 즐길 수 있도록 기획한 굵직한 전시물들이 대거 퇴장당한 것이다. 상화동산 가까이 설치됐던 이머시브 씨어터, 파이어가든은 제대로 선을 보이지도 못했다. 드론쇼 역시 엄중한 방역의 벽 앞에 날개를 접었다. 조 감독은 "코로나로 축제를 못할지 모른다는 생각도 했었는데 시민들이 힐링 장소로 찾아와 기꺼이 즐기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따뜻해진다"고 했다.
그는 빛을 주제로 삼을 것이라면 더 어두운, 제3의 장소를 물색해보는 게 나을 거라는 조언도 내놨다. 그는 "어두울수록 빛은 강해진다. 별은 가로등을 못 이긴다. 별이 잘 보이는 곳을 떠올리면 알맞다. 맑은 공기 속에서 오로지 빛만이 보일 때 시민들이 느끼는 공감각은 차원이 다른 것"이라고 했다. 그의 말을 종합하자면 경남 통영의 '디피랑'이 떠올랐다. 수성구에서는 진밭골, 월드컵경기장 뒤편 청수사 가는 길, 망월지 등을 고려해볼 만하다고 했다.
특히 수성못은 이미 내용물이 다 들어찬 그릇이기에 이곳에서 뭔가를 만들어내려면 수성못의 물을 활용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했다. 과거 대구의 폭염을 활용한 폭염페스티벌로 대구 폭염이 하나의 브랜드가 됐듯 수성못과 물을 브랜드로 만들 수 있는 축제를 시도해보자는 취지로 해석됐다.
"성실한 고민으로 축제를 기획하면 되리라 봅니다. 역량도 충분합니다. 수성구민들의 문화적 소양과 수준은 매우 높습니다. 유명 대중가수를 안 불러도 콘텐츠를 잘 만들면 시민들은 몰려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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