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면 세월이 빨리 간다고 한다. 하루하루는 시간이 더디게 흐르는데 어느 순간 돌아보면 일주일이, 한 달이 훌쩍 흘러간 경험을 누구나 한다. 곰곰이 생각에 잠겨 색다른 경험을 떠올려야 비로소 점심은 누구와 함께 먹었고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기억이 나는 경우도 많다. 물론 기억이 까맣게 사라지는 경우도 있다.
매사에 호기심이 가득한 과학자들은 이 문제도 가만두지 않았다. 여러 과학자들이 해답을 내놓았는데, 가장 그럴듯하게 들리는 답은 미국 캔자스대와 미주리대 공동 연구팀의 가설이다. 나이가 들수록 세월이 빨리 가는, 즉 시간에 가속도가 붙는 이유는 별개의 경험이 뭉쳐 하나의 덩어리로 인식되는 일이 나이가 들수록 많아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초등학생(또는 국민학생) 시절 운동회나 소풍뿐 아니라 사소한 일상까지 또렷하게 기억에 남아 있는 이유는 그 일들이 모두 새로운 경험이어서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신선한 자극이 들어왔기 때문에 우리 뇌는 차곡차곡 생생하게 기억 저장소에 챙겨둔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일들이 반복되니 기억에 담아둘 일들도 많고, 그만큼 시간을 쪼개서 기억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 비슷한 일들이 계속 이어진다. 출퇴근, 업무, 휴식, 잠 등 그다지 놀랍거나 자극적이지 않은 일상이 반복된다. 분명히 조금씩 다른 일들이 벌어지지만 우리 뇌는 비슷한 일상이 되풀이된다고 여겨서 그저 한 덩어리로 뭉쳐 버린다. 연구팀에 따르면 심지어 1년 또는 10년 단위로 덩어리가 생기기도 한다. 이렇게 기억을 단순화해 버린 탓에 시간이 금방 흘러간 것처럼 느낀다는 것이다.
비슷한 설명이지만 세월은 시간을 느끼는 사람의 나이와 비례하기 때문이라는 가설도 있다. 10세 아이에게 1년은 자기 인생의 '10분의 1'이나 되기에 상당히 긴 시간이지만, 70세 노인에게 1년은 인생의 '70분의 1'밖에 안 돼 짧게 느껴진다는 논리다.
2021년은 어떻게 기억될까. 막상 떠올리려고 애쓰면 잠시 머뭇거리게 된다. 개인의 기억 이야기는 접어두고 나랏일을 되새겨 보자. 올해는 코로나19 사태가 2년째 이어진 가운데 일상 회복 움직임이 본격화했다. 백신만 맞으면 코로나19와의 전쟁에서 승리할 줄 알았던 인류는 변이 바이러스의 위력에 다시 무력해졌다. 바이러스 공포가 언제 물러날지 모르는 암울한 시간들이 이어지면서 사회적 갈등은 차츰 깊어지고 있다.
침체된 경제를 회복시키기 위해 막대한 자금이 시중에 풀렸고 자산 가치는 크게 올랐다. 코스피는 사상 처음 3천 고지를 넘겼다. 가을을 넘어서면서 부동산 상승세가 주춤하고 있지만 집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대통령 선거를 두 달 남짓 남겨 두었는데, 여야 대선 후보가 검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수사 대상에 오르는 초유의 사태도 벌어졌다. 1979년 12·12 사태의 주역이던 노태우·전두환 전 대통령이 한 달 간격으로 세상을 떠났다. 벌써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지만 도쿄에서 올림픽도 열렸다.
역사적 사실들을 열거하면 기억 저장소 서랍이 하나둘 열리면서 일상의 추억들이 떠올라야 하는데 올해는 그렇지 못하다. 코로나19 탓에 기억은 2021년 한 덩어리로 뭉쳐지고 말았다. 1월 달력을 펼친 때가 엊그제 같은데 363일이 지났다.
앞서 시간 가속도를 연구했던 이들은 이렇게 조언했다. "시간이 조금 더 천천히 가기를 바란다면 매 순간 조금 더 가치를 부여하고 다양한 경험을 하려는 시도가 필요하다." 부디 새해에는 가치를 부여할 만한 의미 있는 경험들이 풍성해지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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